5-3./ 5-4
5-3. 몸과 마음에서는 어떤 것이 날까요
나는 짜놓은 표에서 나에게서 나의 몸에서 나는 것과 나의 마음에서 나는 것과 나의 몸과 마음에서 나는 것을 나누어 보았어요. 한 번 표 짜기에 맛을 들이니까 참 재미났어요. 어머니께서는 “네가 맛길이 들었구나!” 하시면서 기뻐하셨어요. 그러면서 말씀해 주셨어요.
“‘맛길’이란 맛의 길이지. 어떤 것에 익숙해져서 잘 하는 것을 ‘길이 들 었다, 길이 났다’라고 하잖아. 어떤 것에 맛을 알고 그 길에 빠져든 것을 말해.”
내가 몸과 마음에서 나는 것들을 나눠 본 것이에요.
5-4. 나는 임자예요
어느 날, 공상과학 영화를 보았어요. 집안일을 돕는 로봇이 사람이 하는 일뿐만 아니라 골칫거리, 느낌 따위마저도 대신해요. 처음에는 편했지만 사람들은 사람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마침내 과학자인 할아버지와 주인공 소년이 해결하기는 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은 점점 편한 것을 좋아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은 하기 싫어하잖아요. 4차 산업,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참 멋진 세상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태어나서 나의 살림살이를 살아야 하는데 로봇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니면 모든 것은 이어져 함께 해야 하니까 오직 내 마음대로는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까요? 우리 배움터에 욕을 자주 하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여러분은 귀하게 대해주는 친구가 좋지요.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하고 짓밟아서 저를 높이려고 하지 않나요. 그렇게 하는 것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욕을 쓰는 것이에요. 욕을 쓰면 그 사람이 힘들어지니까 제가 더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을 일컫는 여러 가지 말이 있어요.”
나는 욕은 쓰지 않지만 선생님이 하는 말에서 찔리는 곳이 있었어요. 선생님은 칠판에 쓰셨어요.
‘이것이, 이 물건이, 이 새끼가, 이 놈이, 이 사람이, 이 인간이, 이 댁이, 이 양반이, 이 선생이, 이 분이, 이 00님이.’
우리는 ‘새끼’라는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어요.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씀을 이어나갔어요.
“목숨이 없는 물건처럼 함부로 부르기도 하고, 짐승처럼 하찮게 부르기도 하고, 사람의 높낮이를 만들어 얕잡아 부르기도 하고, 같은 사람으로 부르기도 하고, 뭔가 좋은 뜻을 담은 말을 뒤에 붙여 높여서 부르기도 하지요. 이렇게 부르는 말 가운데 가장 높여주는 말이 뭘까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좋은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지요. 그래서 다같이 “임요.”라고 외쳤어요.
“맞아요. ‘임’이에요. ‘임’은 ‘이다’에서 온 말인데 머리에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 저마다를 부르는 말이에요. 그래서 임금님은 앞뒤에 ‘임’이라는 말이 붙어요. ‘임’이라는 말은 우리가 늘 빚을 지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모든 것 들에게도 붙여요. 예컨대 해, 달, 별, 바람, 구름, 비, 땅에게 ‘임’이라는 말을 붙여서 해님, 달님, 별님, 바람님, 구름님, 비님, 따님(땅님)이라고 하지요.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 사장, 선생 따위에 ‘임’이라는 말을 붙여서 아드님, 따님, 아버님, 어머님, 사장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사람이 임자인 것은 스스로 뜻을 내서 ‘임’의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스스로 임자임을 알고 임자를 붙여 말할 수 있으며 임자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고는 우리를 죽 둘러보셨어요. 나는 조금 어려웠어요. 그러나 ‘임’이라는 말이 나와 남을 높이는 말이라는 것은 또렷이 알 수 있었어요. 그 때 수호가 물었어요.
“선생님, 임자라는 말이 주인이라는 말과 같은 것인가요?”
“아! 맞아요. 우리는 주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요.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요?’라고 말할 때 그렇게 말하기도 해요. 주인은 한자인데 주(主)는 등불을 든 사람이에요. 인(人)은 사람이에요. 어두운 밤에 등불을 든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을 따라가야 해요.”
“그렇지요. 등불을 든 사람을 따라가야 안전하겠지요. 그래서 그런 주인은 섬김을 받아요. 다른 사람들이 주인을 높이 우러르고 섬기는 거지요. 모두가 주인이라면 모르지만 등불을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섬겨야 하고 누군가는 섬김을 받는 것이지요. 그러나 임자라고 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임자일 수 있는 것이지요. 임자로서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는 거지요.”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는 말씀을 이었어요.
“여러분은 사람을 짐승으로 얕잡아 부르는 말을 욕으로 쓰고 있잖아요. 이를 테면 ‘개새끼’처럼요.”
우리는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욕을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남자 친구들은 다시 킥킥 대고 웃었고, 여자 친구들도 수군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렸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친구들의 놀람을 미리 알기라도 하셨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이어나가셨어요. 그러자 친구들도 바로 귀담아 들었지요.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제가 높아지려고 남을 낮게 깔아버리려는 뜻이 있어요. 그런 말을 쓰지 않으면 제가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화낼 필요없어요. 맞설 필요도 없고요.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바로 자신이 약하고 힘없고 부족함을 나타난 것이니까요.”
선생님께서는 누구라고 꼭 집어서 말씀하시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야 할 것이니까요. 욕을 쓰는 사람의 마음, 욕을 들었을 때의 마음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알아야 하니까요.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이어서 하셨어요.
“우리는 욕을 왜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욕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속상해 하지도 말고 화를 내지도 말고 이렇게 말하세요. ‘음, 너는 사람을 개로 보는 이상한 눈을 가졌구나. 그리고 욕을 하는 것을 보니 네가 나만큼 되지 못한다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괜찮아, 너도 잘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해 보세요. 다른 배움터 친구들은 몰라도 우리 배움터 친구들은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지요. 그 친구가 욕이 아닌 말로 이야 기를 나눌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까지도 해야지요. 그게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지요.”
집에 돌아와서도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머릿속을 빙빙 도는 말이 있었어요. ‘사람은 스스로 임자임을 알고 임자라는 말을 할 수 있으며 임자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어요.’ 내가 궁금했던 것이 풀릴 듯도 해요.
나는 갖가지 절로 나는 임자로서 살아가요. 나는 지난번에 했던 ‘나다’와 ‘내다’라는 말과 임자를 서로 엮어서 생각해 보았어요. 나는 땀도 절로 나고, 생각도 절로 나고, 도와주려는 마음도 절로 나지요. 또 나는 갖가지 나의 뜻을 내는 임자로서 살아가요. 나는 눈물을 일부러 흘릴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낼 수도 있어요. 그래요. 나는 임자예요. 임자는 어떤 것을 아주 높여 부르는 말이에요. 나는 임자로서 몸과 마음에서 나는 것과 내는 것을 아우르고 어우를 수 있어요. 임자는 아우르고 어울러서 큰 힘을 지니고 부리고 이루고 누리고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어요.
나는 임자로서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세상에 있는 것, 없는 것 따위를 말에 담아 여기고 지어낼 수 있어요. 예컨대 우리가 연필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정말 연필일까요? ‘그 것’과 ‘내가 말하는 연필이라는 것’은 정말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을 연필이라고 여기는 것일까요?
또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눈에 보이는‘아름다움은 금강산이나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 작품 따위에서 알 수 있어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여기지 않아요. 사람들은 겉이 아름다운 것보다는 속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속이 아름다운 것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우리를 아름다움이 뭔지에 대해 캐묻도록 이끄셨어요.
“아름다움이 무엇일까요?”
“예쁜 것이요.”
“그럴까요? 아름다움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해 볼까요?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떠올리는지 살펴봅시다. 생각나는 것을 돌아가면서 큰 소리로 말해 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칠판에 써 볼게요.”
선생님께서는 칠판 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아름다움’이라고 썼어요. 우리는 차례로 떠오르는 말을 큰 소리로 불렀어요. 선생님께서는 부지런히 받아 쓰셨지요. 우리가 떠올린 말은 이런 것들이에요.
‘꽃, 자연, 노을, 도와주는 사람, 그림, 멋진 옷, 배려, 착한 마음, 어진 행동, 친절, 양보, 꿈을 이루는 것, 참됨, 알참, 노래, 효도, 사랑, 열심히 일하는 모습, 엄마, 우정, 보살핌, 어짊, 어울림, 하늘, 나무, 친구, 대한민국, 색깔, 예절, 바른 자세, 웃은 얼굴, 인사, 미소, 착한 행동, 봉사, 예쁘다, 곱다, 귀엽다, 멋지다’
우리가 부르는 말로 칠판이 가득 찰 즈음 선생님의 글씨는 점점 흐늘거려졌어요. 선생님의 ‘지렁이 글씨’예요. 그래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은 되지요.
“이 말들 가운데 잣대를 만들어 닮은 것과 차이 나는 것을 나눠 보세요. 발표할 때는 보기도 들어주세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꽃, 노을, 그림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려, 착한 마음, 참됨이 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해야 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착한 마음 갖기, 참됨, 알참, 웃는 얼굴이 있고, 함께 해야 하는 것으로는 봉사, 양보, 예절이 있어요.”
그 때 고운이가 손을 들며 질문을 하였어요.
“봉사, 양보, 예절도 혼자서 할 수 있지 않나요?”
“저는 봉사나 양보나 예절은 누군가가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참 좋은 질문과 답이군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은 도와주기, 친절 베풀기, 양보하기가 있 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꿈을 이루는 것, 어짊, 바른 자세가 있습니다.”
“자연에 있는 것과 사람이 만들어 낸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자연에 있는 것은 노을, 나무, 꽃이 있고,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은 그림, 예절, 봉사가 있습니다.”
친구들은 ‘--입니다.’라고 말할 때도 있고 ‘--예요.’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하든 말하지 않아요. 그냥 친구들의 말버릇이지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예요.’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같아요. ‘--습니다.’는 우리를 대접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너무 딱딱하게 들리거든요.
“기준도 여러 가지이고 보기도 잘 말했어요. 그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밑뜻을 알려줄게요. 여러분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아름을 만들어 보세요. 한 아름, 두 아름 할 때의 아름이지요.”
우리들은 선생님을 따라 둥글게 아름을 만들었어요.
“친구들의 아름과 내 아름을 보세요. 모두 같은가요?”
“아니요.”
“맞아요. 아름은 저마다 크기가 달라요. 팔의 길이가 저마다 다르니까 마땅히 그렇겠지요. ‘아름’은 사람마다 달라요. ‘아름’은 사람마다 지닌 성질이나 가능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뜻해요.”
“‘아름’하고 ‘다름’하고 비슷해요.”
“그렇군요. ‘름름’이네요.”
“그럼 ‘다움’의 뜻을 알아볼까요? ‘다 이루다-다 이룸-다움’이에요. 어떤 것의 성질이나 가능성을 다 이룬 상태를 말한다고 해요. 그러면 ‘아름’과 ‘다움’을 합쳐볼까요? 사람마다 아름이 다르듯이 성질이나 가능성이 달라요. 그러한 가능성이나 성질을 다 이룬 상태가 ‘아름다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아름답다’는 것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 여러분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바라요. 물론 선생님도 꾸준히 선 생님의 가능성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어요.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될 테지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름다움과 달라서 놀랐어요.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예쁘다, 곱다, 귀엽다, 멋지다’라는 말과 다른 뜻이라는 것은 알겠어요. 그러고 보니 예쁜 사람과 아름다운 사람은 뭔가 달라요. ‘예쁜 옷’과 ‘아름다운 옷’은 뭔가 달라요. 예쁜 옷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옷만 예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옷은 사람과 옷이 잘 어울리는 거예요.
나는 ‘아름다움’이나 ‘고마움’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는 없지만, ‘날개 달린 코끼리’처럼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이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어떻다고 여길 수 있어요. 나는 임자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마음대로 멋대로 생각할 수 있어요. ‘세모난 동그라미’, ‘뿔이 달린 고양이’, ‘아무도 없는 것에서 태어난 도깨비’ 따위를 상상해 보았어요. 그런데 ‘고양이들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났어요. 외할머니네 고양이가 ‘뿔 달린 사람인 나’를 꿈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은 겉만 예쁘면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오늘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다운 사람은 제 안도 제 밖도 좋게 잘 어울리는 거예요. 어쩌면 그게 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