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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임자의 바탕은 무엇일까요?
임자라는 말은 사람인 나를 으뜸으로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절로 임자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임자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 애를 써야 할까요? 임자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쓰는 말일까요? 임자이려면 어떻게 구실해야 할까요? 제가 임자라는 것을 알지 못할 때와 알고 난 다음 뭔가 달라질까요? 임자가 되기 위해 어떤 바탕이 있을까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우리 바탕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에요.
언젠가 체육 활동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얘들아, 하늘 좀 봐.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가을 하늘이야. 너무나 가을다운 하늘색이네….”라고 말씀 하시기에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았지요.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색 참으로 하늘색 그대로였어요. 그 후로 나는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지금은 나도 몰래 하늘을 우러르는 버릇이 들었어요.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았지요. 하얗고 탐스러운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어요. 나는 붉은 벽돌로 된 담장에 기대어 구름을 쳐다보았어요. 뭉게구름은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았어요. 이쪽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이 이리 저리 둥글게 모습을 바꾸고, 저쪽에서는 쓱쓱 비질을 한 것처럼 쓸리며 모습이 바뀌었어요. 내가 고개가 아파서 고개를 숙였어요. 언젠가 배운 공기의 움직임이 바람이라는 것이 떠올랐어요. 바람을 공기의 움직임리라고 하니까 썰렁했어요. ‘바람’이라고 하면 떠올랐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먼지같이 사그라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과학에는 맛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름의 모습이 바뀐 까닭은 바람 때문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있는 곳에서는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저 높은 하늘에는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누군가 나처럼 저 구름을 바라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은 어쩌면 시를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노래를 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 저마다이지만 서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문득 났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낮에 본 구름과 바람을 이야기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대견스럽다는 듯 바라보시면서 흐뭇하게 웃으셨어요. 아빠와 엄마도 재미있다는 듯 내 말에 귀를 기울였어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함께 한단다. 너는 너 이고 나는 나이지만 너와 나는 서로 함께 하고 있지. 지금, 너 없는 나도 없고 나 없는 너도 없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본 구름이 지금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식구들을 이어주고 있는 셈이지.”
나는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함께 하는 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하게 다가왔어요. 목숨을 타고 난 것이든 아니든 모든 것은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엮이면서 함께 해요. 오직 저뿐인 것이 있을까요? 오직 모두와 엮여 한 덩이인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저마다 따로’인 거예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서로 이어져 있고 ‘모두와 함께’ 해요.
잠잘 무렵 동생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엄마와 아빠는 동생을 데리고 응급실로 갔어요. 큰일이 아니니 먼저 자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할아버지와 나는 잘 수 없었어요. 아픈 것은 동생인데 온 식구가 저마다 하던 일과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함께 한 셈이지요.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마음을 놓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우리 모두는 저마다 살아가는 임자란다. 내가 임자인 것은 다른 모든 것 들이 받쳐주기 때문이란다. 아까 저녁을 먹으면서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함께 하는 것이란다. 내가 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이 나를 임자이도록 해준 덕분이란다. 너 역시 다른 것을 임자로서 해 주어야 하고. 너무 어려우냐?”
“할아버지, 알 듯도 한데 또렷하게는 모르겠어요.”
“네 동생이 아프니까 우리 식구가 모두 마음을 쓰며 함께 하잖니. 그것은 바로 동생이 임자이도록 하는 거야. 동생이 이 누리를 살아가는 임자로서 구실하도록 우리가 돕는 거지. 지금 나는 너를 임자로서 구실하도록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고. 너는 내가 할아버지로 구실하도록 이야기를 들 어주는 것이고. 또 너는 엄마와 아빠가 엄마와 아빠라는 임자로 구실을 하 도록 돕고 있는 거지. 잠들어야 하지만 걱정하며 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기다리고 있잖니.”
“할아버지, 그러면 이 누리의 모든 것은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함께 하는 것처럼, 저도 저이면서 다른 것들과 함께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바로 그렇지. 네가 너이면서 다른 것들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임 자로서 구실한다는 것이지. 모든 임자들은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함 께 하는 바탕을 지닌단다.”
할아버지께서는 내 등을 가만히 토닥거려 주셨어요. 내가 잠을 자지 않고 동생을 기다리는 것이 모두와 함께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것은 나도 모르게 절로 그렇게 하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아빠는 잠든 동생을 품에 안고 들어오셨어요. 엄마는 여태 안 자고 기다렸느냐며 걱정을 하셨어요. 아마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거나 공부 시간에 꾸벅꾸벅 졸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날, 늦잠도 자지 않았고 졸지도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낮잠을 잤어요.
내가 있는 것은 나는 것과 내는 것만으로 있을 수 있을까요? 나는 엄마가 낳아주셨어요. 나는 엄마가 낳아야만 나일 수 있어요. 나는 낳아졌기 때문에 난 것이에요. 사람은 아기를 낳고, 고양이는 새끼를 낳아야 태어난 것이 되지요. 난 것은 모두 난데가 있어야 해요. 나는 스스로 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낳아야만 난 것이 돼요. 나는 나인 것이에요. 풀이나 나무는 낳는다고 말하지 않아요. 씨에서 싹이 돋아나야 해요. 싹이 돋는 것은 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낳는다는 것은 사람이나 새끼를 낳는 것만이 아니에요. 훌륭한 일꾼도 낳고, 행복도 낳고, 슬픔도 낳고, 결과도 낳아요. 사람들은 새끼를 낳는 것처럼 일꾼도 행복도 슬픔도 결과도 낳는다고 여기나 봐요. 사람들의 생각이 재미있어요. 내가 나이기 위해서 엄마와 나만 있으면 될까요? 아빠도 있어야 하고, 엄마와 아빠를 낳아주신 모든 분들이 있어야 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사람만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니에요. 바람, 구름, 물, 해, 땅, 나무, 동물들 모두모두 있어야 해요. 그래야 사람이 살 수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기 위해 자연이 내주어야 해요. 바람, 구름, 물, 해, 당, 나무 따위들이 내가 낳아지도록 모든 것을 내 주었잖아요.
내가 나기 위해서는 자연이 먼저 내야 하고 엄마가 나를 낳아야 해요. 내가 땀을 일부러 낼 수 있는 것처럼 자연도 나를 일부러 낸 것일까요? 나는 튼튼해지기 위해 일부러 줄넘기를 하고 땀을 내잖아요. 자연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하여 나를 냈을까요? 어쩌면 자연은 절로 그러는 것일 거예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나는 일부러 줄넘기를 하지 않기도 해요. 그러나 자연은 일부러 무엇인가를 하지 않지는 않아요. 또 일부러 무엇인가를 하지도 않아요. 나는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자연이 나를 내주고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셔야 해요. 나는 모든 것과 이어져있어요. 내가 아주 커다란 자연의 한 쪽이 된 느낌이에요. 아주 든든하고 모든 것이 참 고마워요. 비가 이렇게 고마운 줄 알았으니까 밖에 나가 놀지 못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아야겠어요.
6. 나는 철이 들었어요
여름 방학이 되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찾아뵈었어요. 나는 외할아버지께서 옥수수 따는 것을 도와드렸어요. 옥수수에서 나는 비릿한 풀냄새가 왠지 싫지 않았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나이가 드니까 외할애비도 도와주고…. 허허허! 제법 철이 들었구나!”라며 나를 북돋아 주셨어요. 나는 신이 나서 “외할아버지, 다른 일도 시켜주세요. 제가 다 도와 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였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허허, 벌써 그렇게 자랐구먼. 철이 들 때도 되었네.”라고 하셨어요.
“옛날 어른들은 10살이면 철이 든다고 하셨지. 요즘은 하나나 둘만 낳으니 철이 들 사이가 없어. 그래도 우리 외손녀는 철이 빨리 들었구먼. 잘 키웠어, 잘 키웠네!”
라며 칭찬을 하셨어요. 나는 할아버지께서 엄마와 아빠까지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철이 든다, 철이 난다라고 말하는데 철이 들고 철이 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아는 철은 쇠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인데 쇠붙이는 아닐 거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들었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났구나? 대체 무슨 뜻일까요?
옥수수가 삶아지고 있는 동안 나는 사전에서 ‘철’을 찾아보았어요. 같은 말로 ‘계절’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이 되었다는 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어요.
어머니께서는 할머니께서 챙겨주신 옥수수를 찐 다음 식혀서 냉동실에 두었다 겨울에 꺼내어 데워서 먹을 정도로 옥수수를 참 좋아하셔요. 어머니께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서 “역시 제철에 나는 것을 먹어야 제 맛이지.”라고 하셨어요. 겨울에 먹는 옥수수보다 방금 따서 쪄낸 옥수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달라요. 구수한 옥수수 냄새를 벌름거리다가 ‘철’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어요.
“엄마, 철이 든다는 것이 뭐예요?”
“어머, 생뚱맞게 철이라니? 아, 제철이라는 말 때문이니? 옥수수는 어느 때 먹는 것이 제일 맛있을까?”
“먹고 싶을 때요.”
“호호호, 그래 그 말도 맞네! 어느 계절에 먹어야 제일 맛있겠니?”
“여름이요.”
“그래. 철이라는 것은 봄철, 여름철처럼 계절을 나타내는 말이잖니. 철이 드는 것은 철이 되면 이라는 말이기도 해. 여름철이 되면 여름이라는 철이 들면 옥수수가 맛나게 여물지. 그러니까 맛이 듬뿍 담긴 여름철에 옥수수를 먹는 것이 제일 맛있는 거야.”
“그럼, 철이 난다는 말은요?”
“철이 난다는 것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지. 힘든 일을 하면 땀이 나는 것처럼 자라면서 그에 맞게 절로 이루고 이룰 줄 알 때 철이 든다, 철이 난다 라고 말하지. 철이 들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철딱서니 없이 굴면 철없다고 꾸중하잖니.”
“나이가 들어 때와 곳에 알맞게 하지 않으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래. 철이 들면 철이 나기 시작하지. 자라면서 저도 모르게 철이 들게 되지.”
“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서 배어든 철이 나도 모르게 나나 봐요. 물감도 천에 배어들어야 그 색이 드러나잖아요.”
“그래. 그렇구나!”
내가 철이 들었다는 것은 절로 철이 나는 것에서 알 수 있어요. 지금까지 나이를 먹으면서 겪은 모든 것들로부터 나에게 철이 배어들고 내가 나답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에요. 참 뿌듯해요.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물었어요.
“봄은 왜 봄이라고 말할까요?”
“따뜻해서요.”
“꽃이 많이 피어나고 벌과 나비도 날아다니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서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 하셨어요.
“맞아요. 날씨가 풀려서 살기도 좋고 여기 저기 볼 것이 많아서 봄이라고 해요. 봄은 ‘보다-봄’이 되었지요.”
“다음에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물어볼까요?”
“여름이에요.”
“더우니까…요.”
“아, 꽃이 핀 자리에 열매가 달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요?”
“봄에 여러 가지 꽃을 봤잖아요. 그러면 열매가 달리고 열매와 여름은 비슷해서요.”
친구들이 손뼉을 쳐 주었어요.
“관찰을 잘했군요. 여름은 ‘열다-열음-여름’이 되었어요. 자, 이번에는 가을로 가 볼까요?”
“추워서요.”
“가을은 추운 것이 아니라, 서늘하지 않나요?
기쁨이의 말에 서연이가 머쓱해졌어요. 저는 이럴 때 서연이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요. 나중에 기쁨이가 서연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서연이라면 서운할 것 같아요. 다들 내 마음과 같은지 잠시 말이 없었어요. 선생님은 다시 물으셨어요.
“가을은 서늘해지지요. 그러나 갑자기 추워져서 서리가 내리거나 우박이 떨어지는 날도 있어요. 가을에는 농부님들이 무엇을 하지요?”
“추수요.”
“추수를 우리말로 하면 무엇일까요?”
“추수가 거둬들이는 것인가요?”
“그래요. 가을에 거두어들인다고 해서 가을걷이라고 하지요. 옛날에는 가을을 ‘가슬’이라고 했어요. ‘가슬-가을’이라고 말이 바뀐 거예요. 마지막으로 겨울은 왜 겨울이라고 했을까요?”
“추우니까…. 춥다 라는 말과 겨울은 비슷하지 않나요?”
지후가 말하자, 눈치 빠른 샛별이가 말했어요.
“추우니까 옛날에는 먹을 것도 없고 겨우겨우 살아야 하니까 겨울이라고 말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손뼉을 쳤어요. 선생님도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라워했어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겨울은 ‘겨다’라는 말에 뿌리를 둔 말이에요. ‘겨우’는 ‘계시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에요. ‘계시다’는 ‘지내다’라는 말이잖아요. 겨울은 추우니까 겨우겨우 지내는 것이지요.”
나는 겨우겨우 살아내서 겨울인 것 같아요. 나는 추운 겨우살이가 너무나 싫어하거든요. 나는 여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말은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고 엄청나요.
나는 잠자리에 누웠는데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알아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뜻을 떠올랐어요. 마치 시인이 시가 떠오르듯이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봄은 ‘보다’에 뿌리를 둔 말이래요.
봄이 되면 풀과 나무에서 싹이 나와 잎도 꽃도 보이잖아요.
볼 것이 많은 봄이에요.
여름은 ‘열다’에 뿌리를 둔 말이래요.
여름이 되면 풀과 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자라잖아요.
여름에는 나무와 풀들에 열매가 달려요.
가을은 ‘가슬’에 뿌리를 둔 말로 ‘가을걷이’를 말한대요.
가을에는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들이잖아요.
가을에는 가을걷이를 하느라 바쁘고 뿌듯해요.
겨울은 ‘겨다’에 뿌리를 둔 말로 ‘계시다’라는 말이래요.
‘계시다’는 자리를 차지하고 머물다라는 말이에요.
겨울은 식물도 동물들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겨울에는 추위가 다 가도록 한 자리에 머물면서 쉬어야 해요.
7. 나는 두루 사이가 좋아요
나는 모든 것들과 쪽을 이루면서 살아가요. 내가 행복하게 잘 살려면 이쪽과 저쪽의 사이가 좋아야 하잖아요. 사이가 좋으려면 서로가 마음이 사무쳐야 해요. 내가 동생에게 아무리 잘 해주려고 해도 동생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사이가 좋아지기 힘들 거예요. 내가 친구들에게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려고 해도 친구의 마음이 닫혀있거나 어긋나 있을 때는 사이가 좋아지기 어려울 거예요.
잔잔한 물에 손가락을 담그면 동그라미 모양의 물결이 퍼져나가요. 그 떨림이 퍼져나가 벽에 닿으면 울림으로 되돌아와요.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그 마음이 떨리고 울려서 함께 해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울로 떨리는 것은 사무침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사무침’ 이 말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먹먹해지고 또렷이 새겨졌어요. 그러는 가운데 이 마음이 저 마음을 알아주게 되는 것이지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게 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을 함께 겪으면서 봐주게 되잖아요. 더 나아가 어떤 일이 되도록 도와주기도 하잖아요. 이쪽과 저쪽의 사이가 좋게 되려면 떨림과 울림이 잘 이루어지도록 알아내고 알아차리고 알아주고 알아 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내가 사이좋은 사이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애를 쓰는 것은 아깝지 않아요. 사이가 나쁘면 마음도 몸도 힘들기만 하잖아요.
동생과 친구들이 내 마음과 같지 않더라도 부드럽게 내 마음을 나타내야겠어요. 동생과 친구들이 짜증스럽게 굴더라도 내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봐주어야겠어요. 동생이 있어서 집에서 행복하고, 친구가 있어서 배움터에서 즐거운걸요. 나와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봐주고 또 돕는 것이 사이좋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모두와 두루두루 사이좋게 어울리며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