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이루는 길 (19)

6-5(2). 6-6. 6-7. 6-8.

by 산바람

6-5(2).

선생님께서는 짧게 쉬었다 다시 말을 이었어요. 아마 길게 이야기하려는 걸 거예요.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안중근의사처럼 자신과 가족이 힘든 것을 참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힘을 쓰시고 이루었어요. 세종대왕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태어날 모든 백성을 위해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었어 요. 이순신장군도 이 땅에 살아가는 백성을 위해서 갖가지 어려움을 뚫고 나라를 지켜내셨어요. 안중근의사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게 해를 당하고 있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바쳤어요. 이런 분들은 아무런 되갚음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남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가신 분들이에요. 마더 테레사는 자신에게 쉽고 좋은 삶을 버리고 살기 힘든 다른 나라에 찾아가서 죽을 때까지 어려움을 함께 하는 힘을 나누고 보태고 보살피면서 살았어요. 유네스코,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유엔난민기수, 월드비전, 굿피플, 굿네이버스 따위의 기구들이 하는 일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은 모두들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에요. 그러나 사람만을 위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동물, 식물, 자연에 대해서는 널리하지 않아요.”

마음먹었던 대로 선생님의 풀이는 무척 길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말들이어서 알아듣는 데는 힘들지는 않았어요. 나는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무엇이 부족한지 흐릿하게 알 수 있었어요. 동물이나 식물이 없다면 우리가 살 수 없잖아요. 또 흙, 물, 바람, 해가 없으면 모든 목숨들이 살 수 없잖아요.

“넷째, 것까지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것까지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들의 기쁨과 즐거움과 모든 것들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지요. 것까지는 저, 저들끼리, 남까지, 것까지를 아우르는 셈이니까 저나 저들끼리는 고루하고, 남까지는 두루하고, 것까지는 널리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사람이도록 무엇이든 내어 주는 자연이 있어요. 사람이 살아갈 때는 동물과 식물의 목숨을 앗아서 살아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을 알아주며 살아야 해요. 동물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식물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순간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위해 애쓰신 제인 구달이 머리를 스쳤어요. 아니나 달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제인 구달, 앨고어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 기후프로젝트, 세계자연기금,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 한국녹색회, 한국환경협회 따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는 분들이에요. 사람만을 위하게 되면 동물, 식물, 자연을 함부로 대하게 되어 공기, 물, 흙 따위들이 허물어지고 망가져요. 세상의 모든 것들까지 널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해요. 우리는 모두 한 쪽이고 모두로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잖아요.”

저뿐인 저밖에 모르는 사람에서, 저들끼리의 사람에서, 남까지의 사람에서, 것까지의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은 마치 저마다 따로 하는 나에서부터 점점 우주만큼 모두와 함께 하는 나로 커나가는 것 같아요. 내가 점점 큰 사람으로 되는 것 같아요. 내가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어요!

세상에는 온갖 것이 나요. 사람은 온갖 것이 난 것인 줄 알고, 낼 줄 알며 나고 냄을 아울러서 그것이 그것답게 되는 것을 도울 줄 알아요. 사람은 알아주고 보아주며 도우며 살아가요. 사람은 갖가지 것들을 느끼고 알고 이루면서 살아가요. 사람이 느끼고 알고 이루면서 살아가는 목적은 누군가를 위해서예요. 그 누군가는 저만, 저들끼리, 남까지, 것까지의 단계가 있어요. 사람은 누군가가 살도록 알아주고 보아주고 도우면서 살아가요. 사람이 누군가를 살리는 것은 나에서 비롯하는 것이에요. 알아주고 봐주고 도와주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큰 사람으로 자라고 이루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어요. 이 모든 것을 오직 나로부터 해야 함을 알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사람이에요. 나는 사람이니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야 돼요.

6-6. 나는 얼마나 큰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하!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큰사람이 되는 거예요. 어떨 때는 나뿐이지만 어떨 때는 저들끼리, 어떨 때는 남까지, 어떨 때는 것까지 나를 크게 할 수 있어요. 나도 엄마의 모과나무처럼 남들을 위해 것들을 위해 살도록 애쓸 거예요.

크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크다는 말은 그 끝이 있을까요? 크다/작다, 많다/적다, 길다/짧다와 같은 말들은 서로 견주는 말이라는 것은 알아요. ‘--보다’ 크다, 작다, ‘--보다’ 많다, 적다, ‘--보다’ 길다, 짧다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를 ‘크다’, ‘작다’, ‘길다’, ‘짧다’ 라고 할 수 있는 지예요. 큰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커야 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마음을 다졌어요. ‘크다는 것은 그 끝이 있을까? 없을까? 크다는 말은 그 끝이 없을 거야. 우리가 우주가 크다는 말을 하지만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잖아. 그런 것처럼 큰 사람이라고 할 때 사람이 클 수 있는 가능성도 그 끝이 없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크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의 크기는 끝이 없는 거겠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저만, 저들끼리, 남까지, 것까지’라는 것은 내가 크나 큰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 때는 그런가보다 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 뜻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게 되었어요. 나는 지금보다 더 큰사람이 되도록 애쓸 거예요. 사람들, 동물들, 식물들, 사물들, 자연 모두가 잘 어울려 다함께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할 거예요. 어려서 할아버지께서 말씀 하시던 큰사람이 이런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말예요. 나는 너무나 기뻤어요. 키가 큰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큰 사람이 바로 큰사람이었어요!

6-7. 나와 우리는 어떻게 이어질까요

어느 날, 나는 별난 것을 찾아냈어요. 동화책에 나오는 인물이 친구에게 ‘여기가 나의 집이야. 어서 들어와.’ 라고 하는 부분을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나라면 “여기가 우리 집이야. 어서 들어와.” 라고 했을 거예요. 나의 집? 우리 집? 어느 것이 맞을까요? 영어말을 우리말로 바꾸거나 옮길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일까요? 만약 번역을 잘못하였다면 누가 바로잡아야 할까요? 또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생겼네요.

나는 우리 학교가 참 마음에 들어요. 학교 뜰에는 노란 국화가 한창이에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넓고 반듯한 운동장이 있어서 무엇보다도 좋아요. 차가 다니는 쪽에는 담장 대신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어요. 뒷문이 있는 쪽에는 텃밭이 있는데 늦가을에 우리 밀을 심었어요. 오월이 되면 추수를 한다고 해요. 작년에는 밀을 심었는데 집에 올 때 밀밭에 가면 바람을 볼 수 있어요. 작은 밀밭이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내 동생만큼 자란 밀이 일렁거릴 때면 초록 바람에 초록 물이 들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의 작은 공원과 마주한 철로 된 울타리에 온통 줄장미가 심어져 있어요. 지금은 장미를 보려면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하지만요. 이런 학교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외할머니네 집보다 더 넓을지도 몰라요. 어, 그런데 내가 나의 학교라고 하지 않고 우리 학교라고 했네요. 제대로 말한 것 같아요.

집에 와서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나른해서 턱을 괴고 눈을 잠시 감았어요. 나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러면서 꿈을 꾸었어요.

나는 꿈속에서 자주 날아다녀요. 환한 햇빛이 비치는 숲 위를 날아다니다가 내 하얀 날개도 봤다니까요. 어머니께서는 색이 있는 꿈을 꾸는 것은 내가 상상력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셔요. 어쨌든 기분이 좋은 말이에요.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면 꿈속에서 잠들기 전에 생각했던 것을 이어서 꿈을 꿀 때도 있어요. 참, 내가 꾼 꿈 이야기 들어볼래요.

나는 지금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빵을 먹고 있는데 동생이 나타나서 빼앗아 먹으려고 하기에 빵을 조금 떼어 주었어요. 그러자 동생이 “내 엄마가 준 것인데 왜 이렇게 조금만 줘!”라고 하면서 내 것을 빼앗아 달아났어요. 그래서 나도 지지 않고 “내 엄마가 나 먹으라고 준 빵인데 왜 빼앗아!”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아주 키가 커져서 나와 동생 앞에 나타났어요. 나는 “내 엄마야.”라며 한 쪽 손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러자 동생도 “내 엄마야.”하면서 다른 한 쪽 손을 잡으려고 했어요. 키가 너무 커서 엄마의 얼굴은 또렷이 볼 수는 없었어요. 엄마가 우리를 잡아서 올리는가 싶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유리병처럼 부서져버렸어요. 너무나 깜짝 놀라서 깨어났어요.

벌떡 일어나 앉아서 가만히 꿈을 되새겨보았어요. 병처럼 부서져버린 엄마가 마음에 걸렸어요. 어머니께서 빵과 우유를 먹으라고 부르시는 소리에 잠이 확 깼어요. 나는 맛있게 먹고 나서 동생과 잠시 놀아주다 숙제를 하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어요. 나는 엄마, 동생, 빵, 우유, 책상, 의자, 집, 우리 가족, 내 친구들, 우리 선생님, 우리 마을 사람들, 우리나라, 세상 사람들, 동물들, 식물들, 바람, 물, 땅, 지구, 달, 해, 별, …. 이 모든 것들과 떨어져서 살 수 없지요. 나는 우리 가족, 우리 배움방, 우리 배움터,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우리나라, 우리 지구, 우리 은하계와 끊임없이 이어져 함께 어울려 있어요.

나의 엄마, 나의 가족, 나의 학교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임자가 엄마를, 가족을, 학교를 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갖는다는 뜻이에요. ‘이것은 내 연필이다’라는 말에서처럼 내 연필은 내 것이고 오롯이 나의 바람을 위해 마음대로 해도 되도 된다는 뜻을 품고 있잖아요. 우리말에서 나의 연필은 오직 내가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연필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나 나의 엄마는 오직 나만의 엄마도 아니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말로 할 때는 내가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우에만 나의 엄마라고 해야 해요. 나의 엄마, 나의 가족, 나의 학교라는 말은 나만 드러나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이어짐이 없어 보여요.

6-8. 저마다 따로 하는 나는 어떤 나일까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내가 알고 싶어 하던 바로 그것을 말씀해 주셨어요.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떠올려보았어요.

나는 두 개의 나가 있대요.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내가 두 개일 수가 있겠어요.

“나는 저마다 따로 하는 나, 모두로서 함께 하는 나로 이루어져 있어요. 아니 그렇다고 나가 두 개라는 것은 아니에요.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쓰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두 개가 될 수는 없어요.”

선생님의 말씀은 그러니까 ‘저마다 따로 하면서 모두와 함께 하는 나’라고 말씀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 것도 같았어요. 선생님께서는 ‘∼하면서’라고 하는 말을 아주 힘주어서 말씀 하셨어요.

“예컨대 ‘음악을 듣는 나’와 ‘숙제를 하는 나’는 두 개의 나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서 숙제를 하는 나’라고 하면 같은 곳과 때에서 내가 하는 것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마다 따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두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나는 ‘저마다 따로 한다’는 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고 싶었어요. 선생님께서는 내 마음을 아셨는지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어요.

“저마다 따로 하는 나를 저라고 말하지요. 해는 해이고, 설악산은 설악산이고, 한강은 한강이고, 바람은 바람이고, 소나무는 소나무이고, 고양이는 고양이이고, 나는 나이고, 동생은 동생이고, 연필은 연필이고, …. 이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르게 제 나름으로 따로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엉켜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여 말할 수 없을 거예요. 빛은 빛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바람은 바람이고 땅은 땅이고 나무는 나무이지요. 저마다 따로 하는 나를 드러내서 말할 때 저라고 말하지요.”

“내가 말한 것 말고 또 따로 하는 것이 있을까요?”

“숨 쉬기요.”

“먹기요.”

“자기요.”

“느끼기요.”

“생각하기요.”

“움직이기요.”

친구들은 신이 나서 이런 저런 것들을 말하였어요. 하기는 친구들이 말한 것들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오직 내가 하는 것이지요.

“아까 나를 드러내서 말할 때 저라고 했었지요. 또 저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높이고 나를 낮춰서 말할 때도 쓰여요. 이 누리의 모든 것은 저마다 따로 해요. 우리가 이 누리의 온갖 것들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저마다 따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잠시 온갖 것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뭐가 뭔지 모를 어떤 것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생각할 수 없었어요.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셨어요.

“아주 어린 아기들은 온갖 것들이 나누어져서 보이지 않아요. 마치 눈이 나쁜 사람이 흐릿하게 뒤엉켜 뭐가 뭔지 모르게 보이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엄마도 알아보기 힘들어요. 그러다가 이름을 알게 되면서 낱낱으로 따로 떨어져 보이게 된다고 해요.”

“그럼 선생님, 우리가 풀이라고 알고 있다가 뿌리, 줄기, 잎, 꽃처럼 이름을 알면 그것들을 낱낱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인가요?”

“아주 좋은 보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는 것만큼 보이고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가 무엇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나는 여긴다는 말을 희미하게 알아들었다.

“뿌리, 줄기, 잎, 꽃을 싸잡아 식물이라고 이름을 부르지요. 그런데 잎은 앞면에 그물맥이 있고 매끈하고 엽록소가 있고 뒷면에는 기공세포가 있고 따위들을 싸잡아 잎이라고 부르지요. 그물맥, 엽록소, 기공세포 따위는 저마다 따로 하는 것이고, 잎, 줄기, 뿌리, 꽃도 저마다 따로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들은 잎으로 함께 하고 식물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반은 모두 함께 하는데 샛별이, 현빈이처럼 저마다 따로 한다는 것인가요?”

“그렇지요. 참 좋은 보기예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저마다 따로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이름 붙은 것은 모두 저마다 따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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