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이루는 길 (18)

6-3. 6-4. 6-5(1)

by 산바람

6-3. 나이는 어떻게 먹을까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무엇인가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기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제가 보기에 아기는 먹보이고 울보이고 잠꾸러기이고 떼꾸러기예요. 내 동생도 오죽했으면 별명이 꾸기였겠어요. 아마 외사촌동생도 그럴 거예요. 지금은 동생이 제 심부름도 해 줘요. 참 많이 자랐어요.

음식을 먹으면 내 몸에 영양분이 몸에 배어 들어차고 몸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지요. 나이를 먹으면서 철이 드는 것이고, 철이 들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차게 되고, 힘이 차게 되면 무엇인가 뜻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어 가는 거예요.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되어가는 데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거예요. 욕을 먹는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아요. 몸이 자라는 것만으로는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닐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차고 나이가 들어요. 단풍이 곱게 물들 듯이 나는 나를 어떻게 물들여야 할까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살면서 느끼고 아는 힘이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몸으로도 느끼고 아는 힘이 자랄 수 있어요. 색이나 냄새나 소리 따위를 환하고 똑똑하게 느끼고 아는 힘을 키울 수 있어요. 그러나 몸으로 느끼고 아는 힘만으로는 환하고 똑똑하게 느끼고 알 수는 없어요. 사람들은 말에 담은 생각으로 느끼고 아는 힘을 키울 수 있어요. 누리의 온갖 것들과 마주하면서 느끼고 알게 된 것을 무엇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여긴 것을 말에 담아내는 것이지요. 말에 담아낸 느낌과 앎은 슬기가 되어 모두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키울 수 있어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우거나 얼울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도 저만 알거나 저들끼리만 아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어린 사람이에요.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린아이인 채로 있는 것이지요. 몸은 아이인데 마음씀씀이가 어른스러운 경우 ‘어른스럽다’라고 말하지요. 비록 아이지만 저나 저들끼리를 넘어 남까지 것까지 두루하고 고루하게 얼우는 경우 잘한다고 힘을 북돋는 말이에요.

어른은 ‘얼우다’라는 말에서 온 말이에요. 어른은 어느 한 쪽이 되어 이쪽과 저쪽을 얼우거나 얼울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린이는 제대로 얼우지 못하거나 아직 얼울 수 없는 사람이에요. 아기가 울면 얼러 주는데 어를 수 있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지요. 어른은 저를 넘어 저들끼리를 넘어 남까지 것까지 얼우는 사람이에요. 크게 얼우는 사람이 큰어른인 거예요.


6-4. 사람다운 사람이란 무엇일까요


아무리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내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아무 것이나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돌도 될 수 없고, 나무도 될 수 없고, 동물도 될 수 없어요.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사람이 되어야 해요. 맞아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해요.

책에서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은 아무리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짐승 같은 사람이 돼요. 짐승 같은 사람보다 못한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해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은 버러지 같은 사람이에요. 버러지는 벌레를 말하는 것이에요. 버러지 같은 사람만도 못한 사람은 버러지만도 못한 사람이에요. 버러지만도 못한 사람은 쓰레기같은 사람이에요. 쓰레기 같은 사람만도 못한 사람은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이에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알지만 사람 같게도 살아가고 쓰레기만도 못하게 살아가기도 해요. 그런데 쓰레기만도 못한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그런 줄 알까요? 그럼 어떻게 사람 같은지, 짐승 같은지, 벌레 같은지를 매김을 할까요?

나는 할아버지께 선생님께서 해 주신 이야기를 말씀 드렸어요. 할아버지께서는 껄껄껄 웃으시더니 말씀 하셨어요.

“우리 물음이가 선생님을 좋아할만 하구나! 그런 귀한 말씀을 늘 해주시니 말이야. 암 그렇고말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모진 사람일수록 짐승만도 못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할아버지, 모진 게 뭐예요?”

“음. 모질다는 것은 모서리가 뭔지 알지?”

“예. 책상 모서리 같은 것이요.”

“그래. 두 손바닥을 모아서 앞으로 쭉 뻗어보렴. 끝이 모서리처럼 뾰족한 채로 앞으로 죽 질러나간다고 생각해보렴. 어찌 되겠니?”

“뭔가를 둘로 가른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로 그것이야. 모는 모서리처럼 뾰족한 것인데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쭉 나가는 것을 질러간다고 하지. 모질다는 것은 모를 만들어 앞으로 죽 간다는 뜻이야. 둘레를 살피지 않고 제 욕심껏 제 갈 길만 가면 다른 사람들, 다른 것들을 가르게 되지. 가르기만 해. 허물고 헤치게도 되지. 남이야 어찌 되었든 제 욕심만 채우는 사람들을 모질다고 하잖니.”

“아, 모진 사람은 모서리처럼 뾰족해서 남을 찌르듯이 남을 헤칠 수도 있는 거네요. 그럼 모진 사람 말고 어떤 사람이 있어요?”

“그야, 어진 사람이지. 팔을 벌려 봐. 그리고 쭉 질러간다고 생각해 봐.”

“내 팔 안에 다 차요.”

“옳거니. 그래. 네 어미가 어디 갔다 오면 두 팔을 벌리면 너희들이 달려 들잖아. 어진 사람은 모든 것을 품에 안아서 다독여주지. 마음이 어진 사람은 사람도, 동물도, 나무도, 바람도 모두 어울려 사이좋게 하지. 우리 질 문이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예. 할아버지. 저도 모진 사람은 싫어요.”


6-5(1). 사람됨의 갈래는 어떻게 나눌까요?


그러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어요. 가족, 친척, 학교, 우리나라, 다른 나라,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위해 살아가요. 나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어요. 선생님의 말씀하신 사람됨의 네 갈래를 되새겨 볼게요. 어쩌면 큰 사람이 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모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하지요. 점점 큰사람으로 되면서 사람이 되어가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되어가야 하는지 말해 볼게요. 여러분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선생님께서 길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또 마음에 새길 것은 공책에 간추려서 써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첫째, 오직 저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저밖에 모르고 오직 저만의 기쁨이나 즐거움 그리고 저만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가지요. 그래서 물건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다른 사람들도 제 뜻대로 함부로 하려고 해요. 여러분은 나쁘다 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알고 있나요?”

물론 우리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없지요. 나는 고개를 돌려 빙 둘러 보았지만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어요. 나는 슬며시 손을 올렸어요.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거든요.

“저밖에 모르는 사람은 저의 밖을 모르니까 오로지 나뿐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오로지 나뿐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해요. 나쁜 사람이 저의 밖을 헤아려주는 것을 본 적 있나요? 그런 사람들은 친구들도 제 밑에 두고 물건처럼 대하고 다루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나는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선생님은 손뼉을 쳐 주었어요. 그 때 대찬이가 손을 들었어요.

“선생님, 그렇다고 저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가요?”

“우리 대찬이, 정말 좋은 물음이구나. 그래요. 모두 나쁜 것이 아니지요. 예컨대 아기들은 오직 저만을 위해서 살아야 해요. 오직 저를 위해서 먹고, 자고, 떼를 쓰잖아요. 아기들은 엄마 입 속에 들은 사탕도 제가 먹어야 만족하잖아요. 엄마도 사탕을 먹고 싶어 한다거나 엄마의 바쁜 사정을 알아주고 봐주어서 배가 고파도 참고, 싸고 싶어도 참고, 졸려도 참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아기들이 자랄 수 있겠어요.”

그러고 보니 먹고, 싸고, 자고, 쉬고 하는 것들은 모두 저를 위해서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나는 저뿐인 단계를 넘어서야 우리로서의 나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 저뿐인 단계를 넘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는 저뿐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되자 뭔지 모르게 뿌듯했어요.

“둘째, 저들끼리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저들끼리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저들끼리만의 기쁨이나 즐거움 그리고 저들기리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지요. 비록 저를 넘어서 저들끼리만의 우리로 나아가기는 했지만, 오직 저들끼리만 하기 때문에 저들끼리는 고루하지만 저들끼리가 아닌 남에 대해서는 두루하지 못해요.”

나는 우리반에서 저들끼리만 뭉쳐서 이야기 나누고 웃고 다니는 아이들이 떠올랐어요. 다른 친구들이 거기에 끼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저들끼리는 사이가 좋겠지만 남들은 참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어요. 뒤에서 나를 함부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할 때도 있어요. 우리 반에 그런 끼리끼리가 많으면 어떻게 될까요? 끼리끼리 다투게 된다면 큰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렇지만 저들끼리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닐 거예요.

“여러분, 아까의 경우처럼 저들끼리만을 위해서 산다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에요. 우리 집, 우리 반,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우리나라처럼 이런 것들도 크기가 모두 다르지만 저들끼리예요. 우리는 저들끼리 살아가요. 그러나 저들끼리만을 위한다고 남을 함부로 힘들게 하고 허무는 일을 한다면 그건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자, 얼굴이 빨개졌어요. 나는 남을 따돌리지는 않지만 친한 친구들끼리 더 많이 다니거든요. 우리 가족도 따지고 보면 저들끼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잘못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마음이 놓였어요.

“선생님, 우리 가족, 친한 친구들끼리도 저들끼리이잖아요. 그럼 그것은 나쁜 것인가요?”

이번에도 대찬이가 물었어요. 대찬이는 가끔 자기 생각에 빠져서 다른 사람의 말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어요. 바로 앞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것을 묻고 있잖아요.

“아니에요. 우리 가족, 친한 친구들끼리 위하더라도 남의 가족, 다른 친구들에게 두루하면 되지요. 남은 몰라라 하거나 저들끼리만을 위해서 남을 도구처럼 써먹거나 종처럼 부리는 행동은 좋지 않다는 뜻이에요.”

역시 우리 선생님이에요. 짜증을 내지 않고 다시 찬찬히 풀어주셨어요.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생각하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어요.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이었어요.

“셋째, 남까지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남까지 위해서 사는 사람들 은 남까지의 기쁨이나 즐거움 그리고 남까지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지요. 남까지는 저, 저들끼리를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니까 저, 저들끼리, 남까지 고루하지만, 것에 대해서는 두루하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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