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이루는 길 (25)

7-7(2).

by 산바람

7-7(2). 선생님 말씀이 맞는지 몰라요. 나는 어떤 것을 떠올리고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바로 지금은 생각하는 순간 지나가버려요. 어쩌면 우리는 시간에 밀려서 살아가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우리는 시간의 틈새에 사는지도 몰라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유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에요. 남도 나처럼 마음대로 하다가 나에게 해를 입힐 수 있잖아요. 그러면 차라리 자유는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요.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있어야 한다면 그 자유는 무엇일까요? 며칠 동안 풀리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엮어보았어요.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났어요.

사람은 ‘하고자 하고’, ‘되고자 하고’, ‘답고자 하는’ 뜻을 내요. 사람이 세상에 대해 스스로 하고자 하고, 되고자 하고, 답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예요. 사람은 살리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살 수 있도록 알아주고, 보아주고, 도와주며 살아야 해요. 이런 뜻을 스스로 내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자유예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뜻을 내어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유 아닐까요? 아니면, 자유는 선택일 수 있어요. 올바른 것을 하고자 선택할 자유면서 올바르지 못한 것을 하지 않고자 선택하지 않을 자유 말예요.


한편, 자유라는 이름으로 미워하고 전쟁을 하잖아요. 정말 자유를 위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전쟁을 해도 되는 걸까요?

또 며칠이 흘러갔어요. ‘뜻’이라는 말이 마음에 여전히 걸렸어요. ‘뜻’이 무엇이기에 뜻을 내는 것은 자유로운 것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물어보았어요.

“선생님, ‘뜻’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선생님은 뜬금없다는 듯 되물으셨어요.

“왜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요?”

“저는 자유라는 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이 나는데, ‘뜻’을 내는 사람이나 개가 자유롭다고 해서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어요.”

“참 좋은 물음이네요. 그러면 다음 국어 시간에 모두와 말해 보도록 하지요.”

나는 친구들의 국어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친구들도 알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디어 국어시간이 되었어요. 선생님은 늘 그렇듯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들춰내는 일부터 하셨어요. 나는 이 방법이 참 마음에 들어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와 같거나 비슷한 경우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도 들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뭔가가 돌아가는 것같이 느껴져요. ‘머리를 굴리다’, ‘머리가 돌아가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봐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은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볼 수 없었던 그 바탕 뜻을 풀어준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낱말 뜻요. 낱말에 들어 있는 뜻이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요.”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마음에만 있는 어떤 것이요.”

“‘뜻’은 ‘뜨다’에서 온 말이에요. ‘뜨다’, ‘뜯다’, ‘떠오르다’에서처럼 어떤 것으로부터 뜯어서 떼어내는 것이지요. 배가 고플 때 먹을 것을 보면 먹지요. 그 때 그렇게 하는 것은 절로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배고픈 일에서부터 ‘배고프다’, ‘뭔가 먹고 싶다’, ‘먹을 것이 있네’, ‘먹자’처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먹는 일’에서 하나하나를 뜯어내어 느낌과 앎을 갖는 것이지.”

“그럼 ‘말’인가요?”

“그래요. 사람의 경우 뜻은 말로 나타낼 수 있어요. 하지만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 아기나 동물들은 말이 아니어도 그 느낌과 앎을 가질 수 있지요. 배고픔, 아픔을 느끼고 아는 것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지 요.”

“식물이나 돌멩이는 그런 느낌이나 앎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요. 식물 가운데 신경을 가진 것도 있지만 식물 전체를 볼 때 느낌이나 앎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돌멩이나 책상 따위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요.”

“그럼 뜻을 가진 것이 자유라고 할 때, 배가 고픈 상태에서 어떤 것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먹을지 먹지 말아야 할지를 따로 떼어서 느끼고 안다는 것인가요?”

“그렇지요. 바로 그런 것과 비슷해요. 식물은 물이 필요하다는 느낌 없이 물이 있으면 빨아들이고 필요 없으면 빨아들이지 않아요. 개들은 ‘배고프다- 먹는다’가 바로 이어지지 않아요. 저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 지, 새끼에게 주어야 하는지 아닌지를 이미 겪었던 것과 앞으로의 벌어질 일들을 함께 엮어서 먹든지 먹지 않든지 하지요. 사람의 경우는 개보다 더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어느 한 가지를 택하게 되지요. 식물이나 돌멩이는 겪었던 일이나 앞으로 올 어떤 것을 상상해 내지 못해요. 떠 올릴 수 없으니까요.”

“그럼 떠올린다는 말은 이미 지나간 것을 기억하는 것이겠네요.”

“맞아요. 지나간 것을 기억하는 것을 떠올린다고 하잖아요. 기억은 ‘긷다’에서 온 말이에요. ‘물을 긷는다’는 물을 떠내는 거잖아요. ‘생각을 긷는다’는 것은 지나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물처럼 길어올려 기억하는 것이 지요.”

“그럼 앞으로 닥칠 어떤 것을 떠올리는 것도 떠올리는 것이네요.”

“그렇지요.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생각 속에서 떠올리는 것이지요. 우리 반 친구들이 ‘떠올리다’와 ‘뜻’을 참 멋지게 알아내는군요.”


‘뜻’은 한 덩어리로 된 것에서 더 작은 덩어리로 뜯어낸 것으로 사람의 경우 소리에 담아 말로써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뜻’을 ‘말’에 담아내는 것이지요. ‘아! 그러면 ‘말’을 담아내는 것은 ‘글자’인 거네요.’ 지나간 것을 떠올리는 것, 앞으로 올 것들을 생각 속에서 떠올려보는 것,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보는 것(물론 이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겠지만). 이 모든 것이 떠올리는 것이고 떠올리는 것은 뜯어서 하나하나를 말에 담게 되는 것이지요. 뜯어서 떠올린 낱말 하나하나는 ‘뜻’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을 깊이 파고들어가서 어마어마한 보물을 캐내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철학이 아닐까요? 도덕책에 소크라테스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때, 선생님은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이고 철학이 무엇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우리말로 하면 묻고 따지고 풀기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여기에 깨치고 익혀서 배우는 일까지 하는 거니까 우리가 더 철학을 잘 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참 멋지지 않나요. 사람의 뜻에 모든 것이 달려있어요. 물론 오직 사람의 뜻으로만 된다는 것은 아니지요.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내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그런 뜻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을 더 또렷하게 알고 싶어졌어요. 내가 자유를 누린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면 자유를 누리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하거나 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가지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경우에 자유라고 말하고,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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