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7-7(1).
7-6.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구실할 수 있을까요
살리면서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구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내가 사람답게 구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람답게 구실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알고 싶었어요. 나답게 살기 위해 더 많이 찾고 애쓸 거예요.
먼저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자라오면서 차려온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자연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부모님이 나를 낳으시고 내가 나인 것이 바로 나예요.
다음은 사람의 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사람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그저 사는 것이라면 백년 남짓 육지에서 있다가 가는 것일 뿐이에요.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람은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물음과도 이어지는 것이에요.
사람들에게 사람은 왜 사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 마음에 꼭 들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태어났으니까 살지라고 답하셨고, 아빠는 살아보면 알게 된다고 답하셨고, 엄마는 그냥 웃으셨지요.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에서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하였어요. 사랑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좋은 말이지만 왜 사랑이 답인지 또렷하게 나와 있지 않았어요.
며칠이 지났어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던 답답함을 깨우칠 수 있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말해 볼게요.
“사람은 살다라는 말에서 온 말이에요. 옛말에 사람은 ‘사라ᆞ감’이었어요."
선생님은 칠판에다 쓰면서 말씀하셨어요.
" ‘살다→살음→살암→사람’이라고 쓰셨어요. '얼다→얼음'이 되듯이 '살다→살음'이 되었고, '살음→살암'으로 소리가 바뀌었다가, 다시 '살암→사람'으로 소리가 바뀌었어요.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라고 해요. 풀도 살아있고 나무도 살아있고, 붕어도 살아있고, 고양이도 살아있어요. 모두가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해도 되는 것이지요. 우리와 같은 사람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대표하는 말이에요.”
우리가 쓰는 말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고 한다는 말을 책에서 보았기 때문에 쉽게 알아챌 수 있었어요. 어렸을 때 들어본 것도 같아요.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지요. 사람은 살림살이를 해요. 살림이란 말은 살리는 일을 말하고, 살이란 말은 살아가는 일을 말해요. 그러니까 살림살이는 사람이 살리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뜻해요. 사람이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의 알맹이는 살리면서 살아가는 일이에요.”
나는 살다, 사람, 살리다, 살림, 살이, 살림살이라는 말이 착착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은 말씀을 이었어요.
“사람이 살리는 일은 네 가지 크기의 잣대가 있어요. 저만을 살리며 살아가는 크기의 잣대, 저들끼리만 살리며 살아가는 크기의 잣대, 남까지 살리 며 살아가는 크기의 잣대, 것까지 살리며 살아가는 크기의 잣대예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이와 비슷한 말은 여러 번 들었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이런 잣대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찾는 답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어요. 따로따로 알고 있으면서 둘을 이을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고양이는 저와 저의 새끼만을 살리며 살아가요. 고양이가 저와 저의 새끼를 살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절로 그런 거예요. 고양이는 남까지 것까지를 살리는 마음을 가지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사람은 모든 것을 살리는 마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요. 사람은 절로 살아갈 수도 있어요. 사람은 저만을 위해 욕심을 채우며 살아갈 수도 있어요. 사람은 저들 가족끼리만 잘 살기 위해 욕심을 채우며 살아갈 수도 있어요. 사람은 오직 사람에 대해서만 나누고 베풀고 이바지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 알아주고 봐주고 도와주며 살아갈 수도 있어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다 살리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에 모든 살아있는 것을 대표해서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7-7(1). 사람만이 자유를 누려요
어느 날, 도덕 시간에 ‘자유’라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였어요. 우리 모둠에서 꺼낸 ‘자유’는 이랬어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내 시간을 쓰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다, 내가 만족하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자유는 사람답게 사는데 꼭 있어야 한다, 자유는 누리는 것이다, 자유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둠에서 생각 나누기가 끝나자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어요. 여느 때라면 모둠이 나와서 생각을 나눴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자유(自由)에서 自는 ‘스스로 자’, ‘절로 자’이고 由는 ‘말미암을 연’이에요. 사람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할 때, 자유는 ‘스스로 함’이라는 뜻이에요. 스스로라는 말은 절로라는 말과는 많이 달라요. 비는 그냥 내리지만 나무는 절로 자라나요. 비가 언제 내릴 지를 비 스스로 알고 하지 않아요. 나무도 언제 얼만큼 자랄지 스스로 알고 하지 않아요. '그냥'은 생명이 없는 것에서 어떤 까닭에 의해 무슨 일이 벌어질 때 하는 말이에요. ‘절로’라는 말은 생명이 있는 것에서 어떤 까닭에 의해 무슨 일이 벌어질 때 하는 말이에요. '절로'는 ‘저절로’가 줄어든 말인데 어떤 생각이나 뜻이 없을 때 ‘절로’ 또는 ‘저절로’, ‘속절없이’ 라고 말하기도 해요. '속절없이'라는 말은 속에 있는 까닭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돌멩이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그냥 굴러 떨어지고, 장미꽃은 절로 피어나요. 돌멩이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떨어질까를 생각하지 않고 배우지 않아요. 장미도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필지를 생각하지 않아요. 돌멩이나 장미는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는 일을 하지 않아요. 돌멩이나 장미는 생각하거나 배우는 것이 쓸모가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냥 또는 절도 그렇게 되니까요. 그래서 돌멩이나 장미에게는 ‘자유롭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자유에서 ‘스스로’ 라는 말은 임자의 뜻에 따라 어떤 일을 한다는 거예요. 개가 주인을 기다리거나 친구가 놀자고 하는 것은 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개는 주인이 언제 온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주인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들으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요. 어떤 주인에게는 꼬리를 치며 반갑다고 달려들지만 어떤 주인에게는 꼬리를 내리고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요. 이 개는 주인의 성질을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거 경험을 되살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어느 정도 알아요. 친구는 심심하면 함께 놀자고 하지요. 만약 다른 바쁜 일이 있으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 친구는 그 일은 해야만 하고 빨리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예전에 겪었던 일을 기억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그려보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개나 사람에게는 자유롭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
돌이나 식물은 자유롭다는 말을 쓰지 않지만 개나 사람은 자유롭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것은 그냥 하는지, 절로 하는지, 스스로 하는지에 다르다는 거잖아요. 사람이나 개는 뜻을 스스로 낼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를 바란다 따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이으셨어요.
“그러니까 자유라는 말은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면서 지금 무엇에게 무엇을 어찌할 지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지요.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인 현재를 바꿀 수 있어요. 돌멩 이나 나무는 스스로 지금을 바꿀 수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지금을 바꿀 수 있어요.”
지금을 바꿀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요?
“돌멩이는 과거가 없고 미래도 없어요. 돌멩이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아요. 오직 현재인 지금만 있지요. 사람은 마음으로 이미 깃들여 있는 것과 일어날 일을 미리 짐작한 것을 엮어서 현재에 무엇인가 할 수 있어요. 사람은 마음으로 과거와 미래를 함께 엮어 현재를 살아가요.”
참 어려운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자유는 오직 지나간 것에도 아직 올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인 것 같아요. 자유가 있다는 것은 뜻을 가진 사람이나 개와 같은 동물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람이나 개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요.
“돌이나 식물 따위는 과거의 온갖 것이 그대로 지금의 돌, 지금의 식물 모습으로만 드러나지만 어떤 뜻을 내어 바꿀 수 없어요. 동물은 돌이나 식물 따위보다는 나아요. 개들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에 펼쳐진 사태를 아우르고 어울러서 현재를 바꾸어요. 그러나 개들은 눈앞에 펼쳐진 사태가 없으면 기억을 쓰지 않아요. 또 아무리 훌륭한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개들에게 그것을 전해주지 못해요. 바다거북은 제가 왜 알을 낳아야 하는지, 어떤 곳에 알을 낳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알을 낳기 좋은지 몰라요. 다만 때가 되면 몸이 절로 그렇게 움직이고 제 때에 알맞은 곳에 알을 낳아요. 시간이 지나 어미 바다거북과 새끼 바다거북이 바다에서 만나더라도 제 새끼인지 제 어미인지 알 수 없어요.”
바다거북은 제가 알을 낳아야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대요. 만약 생각을 한다면 어미와 새끼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나는 바다거북들이 어미와 새끼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이 만나지 못해 늘 그리움을 가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테니까요.
“사람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면서 지금의 현재를 만들어가요.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함께 아우르고 어울러서 끊임없이 현재에 끼어들며 힘을 미치며 살아가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힘을 미치는 것이지요. 또 사람들은 말을 통해 공동의 슬기를 쌓고 이어주며 더 낫고 바른 것으로 만들어가요. 그래서 낱낱의 사람, 모두의 사람은 끊임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