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이루는 길 (26)

7-8. 7-9.

by 산바람

7-8. 나는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어요

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어느 날, 나에게 마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은 머리에 있을까요, 심장에 있을까요, 뇌 속에 있을까요, 아니면 나를 떠나서 있을까요? 서양 사람들은 마음을 머리나 뇌 속에 있다고 한대요. 중국 사람들은 마음이 심장 속에 있다고 했대요. 또 예전의 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벗어난 곳에 있다고 했대요. 대체 마음은 무엇이고 나와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요?


어느 날, 동생에게 ‘꽃도 아픈 것을 알까요?’라는 책을 읽어주고 있었어요. 책을 읽어주다 보니 참 생각거리들이 떠올랐어요. 나는 심심풀이로 동생에게 물어보았어요.


“꽃이 아픈 것을 알까?”

“응. 누나.”

“왜 그렇게 생각해?”

“왜냐면 꽃이 시들잖아. 꽃이 시드는 것은 아프다는 거잖아.”

“그렇구나! 그럼 시들지 않은 꽃은 아프지 않은 거네.”

“아니야. 시들지 않아도 꽃이 아파해.”

“어떻게 알아?”

“꽃을 꺾으면 아야 해서 피가 나.”

“응? 피가?”

“내가 봤어. 눈물 같은 피. 그래서 미안했어!”

“그럼 시들었겠네.”

“시들지 않았는데 피가 났어. 나도 피가 나면 아프잖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네.”


동생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동생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꽃이 아픈 것을 알까요? 동생의 마음은 곱지만 그것은 동생이 그렇게 여긴 것이잖아요.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동생과 낮에 주고받은 이야기를 했어요.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어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구나. 네 동생이 너를 닮아 가는가 보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좋은 거지.”

“그런데 꽃도 아픈 것을 알까요?”

나는 다시 그 물음을 던졌어요.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사람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몸만 있을 수도 없고 마음만 있을 수도 없지.”

“예. 할아버지, 그것은 저도 알아요.”

“개나 고양이들도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그러나 풀이나 나무는 몸은 있지만 마음은 없단다.”

“그럼 아프다는 것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기분이 좋을 때 새가 지저귀면 새가 노래를 한다고 하고, 기분이 슬플 때 새가 지저귀면 새가 운다고 하지. 꽃이 아프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그렇게 여기는 거란다. 실제로 풀이 시들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

“그게 아프다는 것이 아닐까요? 식물도 병이 들잖아요.”

“그래. 식물도 병이 들지. 그러나 동물이나 사람처럼 느낌이 있고 아프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야.”

“그럼, 느낌이나 아는 것은 어디에서 알게 되나요?”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거드셨어요.

“동물들의 몸은 느끼는 일을 한단다. 느낌으로 무엇이 어떠한지를 알게 된단다. 그것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하지. 동물도 사람도 모두 느끼는 마음으로 느낌에 대한 앎을 가진단다. 몸으로 느낀 것 가운데 어떤 것을 떼어내서 느낌과 앎을 가지게 되는 거지.”

“그럼, 사람과 동물이 같은가요?”

“허허. 아니란다. 사람은 그 느낌과 앎을 말에 담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단다. 생각하는 마음은 느낌으로부터 느끼고 알게 된 것을 말에 담아내지.”

“그럼 식물은 몸이 있어도 느낌과 앎이 없고 동물은 느낌과 앎이 있어도 말이 없으니까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람만이 말로써 생각을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래. 깔끔하게 간추렸구나.”

“그런데 아주 귀한 것은 느낌과 앎으로 떼어내어 뜻을 가지는 것이 임자이지. 임자는 뜻을 내어 살아간단다. 임자가 뜻을 내지 못하면 임자라고 할 수 없는 거지.”

“그럼, 임자와 마음은 같은 것인가요?”

“마음은 지각하는 마음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마음에 서 뜻을 내니까 마음 때문에 임자가 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럼 식물은 임자가 아니겠네요.”

“그렇지는 않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들에게 임자가 될 힘이 있다고 여기지.”

“그래서 ‘임’자를 붙여서 하느님, 별님, 달님 이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동생은 어느새 어머니의 무릎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어요. 나는 마음이 머리나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마음의 시작이 느낌이라면 그것은 몸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죽으면 마음도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지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식물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느낌은 없지만 생각은 있다고 하잖아요. 생각은 있는데 느낌이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몸의 느낌이 있었는데 느끼는 구실을 하는 곳이 망가진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머리로 생각한다고 할까요? 며칠이 지나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어요. 선생님께서 칠판에 ‘머리’라고 쓰고는 우리들에게 떠오르는 말을 해 보라고 했지요. 우리는 ‘검다, 생각, 뇌, 얼, 눈, 코, 귀, 입, 머리를 쓰다, 굴리다, 돌아가다, 돌리다, 아프다, 어지럽다, 똑똑하다, 멍청하다, 감는다, 젖는다, 말린다, 흔든다’라고 했지요. 선생님께서는 ‘굴리다, 돌리다’를 덧붙이셨어요.


“머리는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구실을 해요. 몸이 자라면서 머리가 자라고 머리가 자라면서 마음이 자라나요. 아기일 때 뇌가 자라고 말을 배우면서 느끼고 알아가면서 마음이 자라나잖아요. ‘머리’는 ‘멀다’, ‘멀리’, ‘멀찌감치’ 따위의 말과 이어져 있어요. 우리말에 ‘머리’라는 말의 구실이 있어요. 큰사람이 되도록 멀리까지 머리를 쓰는 거예요. 머리를 잘 써야 하는데 잘 굴려서 잘 돌아가게 써야 해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갸우뚱 해보는 친구가 눈에 띄었어요. 아마 머리를 정말 굴려본 것은 아닐까요? 나는 과학 전담 선생님께서 늘 하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머리가 장식품이냐? 아니 아니죠.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예요.” “머리를 굴려봐.”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알았어요. 오늘부터 머리를 잘 굴리고 잘 돌려서 큰 사람이 되도록 머리를 쓰도록 애 쓸 거예요.


7-9. 나는 나의 임자에요

나는 사람의 뜻에 맞게 살고 싶어요. 나는 자유로운 가운데 사람으로서의 가능성을 키워 사람다움을 이루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나는 오로지 임자여야 해요. 임자는 줏대이고 잣대예요.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올바른 잣대를 가질 수 있는 줏대 있는 내가 되어야 해요. 누가 시켜서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줏대 있는 임자로서 정신을 잘 차려야 해요.

왜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더 또렷하게 알겠어요. 흔들리지 않을 나로 깨어난 느낌이에요. 내가 이렇게 깨닫게 해 준 모든 것들에게 빚을 졌어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고모, 고부모, 외삼촌, 외숙모, 동생, 사촌 동생. 그리고 선생님들, 친구들, 지금 내가 살 수 있게 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졌어요. 내가 먹고 사는데 음식이 되어주고 약이 되어 준 동물들과 식물들에게 빚을 졌어요. 우리말을 만들고 다듬어준 겨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마더 테레사 이와 같은 분들께도 빚을 졌어요. 또 하늘, 해, 바람, 구름, 물, 땅 이 모든 것들에게 빚을 졌어요. 어떤 빚은 갚겠지만 어떤 빚은 갚을 수도 없어요. 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꼭 빚을 갚을 거예요. 그래요.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사는 목적과 까닭을 알고 스스로 길을 찾아 보람을 일구는 것일 거예요.


내가 지금 어떤 것에 성에 차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다른 것들을 핑계 삼거나 화를 부리거나 할까요, 아니면 애쓰기는 커녕 나의 허물을 보듬어 깨우치지 않거나 게으름을 피우게 될까요? 그렇겠지요. 내가 나를 또렷하게 모른다면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겠지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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