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쉼
오후의 볕이 참 좋다.
선선한 바람
여전히 잎은 초록을 머금고
하늘은 언제 저리 높아졌는지.
종일 들여다보던 글자들
손목 시큰거리도록 눌러대던 자판기
이리저리 굴리던 머리도
배기도록 앉았던 엉덩이도
쉬자!
볕도 쬐고 바람도 맞고
바라보고 우러르고 느껴보자.
등나무 아래 빈 의자
빗자루처럼 자리잡고 눈을 감는다.
붉은 해가 닫히고
귀에 들어오는 작은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방울벌레 우는 소리
감나무잎 떨어지는 소리
멀리 개 짓는 소리
박주가리 꽃냄새가 지나간다.
몸을 숨으로 가득 채웠다 한껏 비워내며
오로지 숨만 쉬면서 쉼을 누린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자른다.
어느덧 깊은 곳에서부터 무게감 없이 크나큰 뭔가가 둘레에 퍼져나간다.
소리없이 가라앉는 물속같기도 하고
커다란 비눗방울로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높은 하늘까지 퍼진 두께 없는 힘같기도 하고
내가 그것에 스며들어 모든 것과 하나된 것 같기도 하고
밝고 맑은 힘들이 모아지고 다시 곳곳으로 퍼지는 것 같기도 하고
고요하고 평화롭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가볍고 크고
주름이 펴지고 미소가 번지고 더 좋을 수 없는
그 자체로 가득찬 고마움이고 행복이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뜨니 보인다.
내가 문삼아 넘나들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