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이루는 길 (2)

1-2 '나할머니'를 만나다

by 산바람

1-2 '나할머니'를 만나다


내가 ‘나’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된 것은 우리 동네 어떤 할머니 때문이에요. 내 방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놀이터가 보이는데 그 할머니는 늘 혼자 앉아 계셔요. 그 할머니는 아주 나이가 많으신데 놀이터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셔요. 어떤 때는 놀러 나온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렇게 가만히 앉아 계실 때도 있었어요. 우리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지도 몰라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머리카락보다 더 하얀 은빛이거든요. 마치 할아버지께서 붓글씨 쓰고 나서 깨끗이 빨아놓은 붓 같아요.

나는 이제 엄마가 데려다 주지 않아도 혼자서 유치원에 잘 다녀올 수 있어요. 엄마는 창문을 열고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셔요. 처음에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제는 딱 한 번만 돌아봐요. 엄마가 서운할까 봐요. 유치원은 우리 아파트를 나가서 대여섯 곡의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닿을 수 있어요. 나는 유치원에 다녀올 때 그 할머니를 자주 보아요. 그 할머니는 그냥 앉아 있는데, 때로는 행복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에게 말을 걸 듯 한 눈빛을 하고 계셔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것은 말로 할 수 없어요. 그건 나의 마음이 알아챈 거예요. 나는 날이 갈수록 그 할머니에게 그곳에 앉아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느 날인가 집에 올 때 나는 그 할머니께 슬며시 인사를 했어요. 처음이라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였는데 할머니께서는 듣지 못하셨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또렷이 봤어요. 주글주글 주름진 손으로 하얀 머리털을 쓸어 올리며 희미하게 웃고 계셨어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수많은 날이 지나고, 그러니까 그 날도 할머니께서는 아무도 없는 그네 쪽을 바라보며 앉아계셨어요.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인사도 하지 않고 불쑥 물어보았어요.

“할머니, 매일 이곳에서 무엇을 하세요?”

“그게 궁금해서 아는 척 했냐?”

나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랐어요. “예. 그게 궁금했어요.”라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렸어요. 그러나 그 뿐 할머니께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며칠 동안이나 나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옆에 가만히 앉았다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먼저 일어서면서 말씀 하셨어요.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마치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렸어요.

“난, 나를 돌아보고 있지. 이 말을 알아듣겠어? 원. 너는 너무 어리잖아!”

나는 귀가 번쩍 띄었어요.

“할머니는 ‘나’를 보고 계셔요? ‘나’는 어떻게 생겼나요? 뭐라고 해요?”

나도 모르게 잇따라 물어보았어요. 그 할머니는 또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나는 그 할머니를 ‘나할머니’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나할머니’는 가끔씩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느리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힘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너만큼 어렸을 적 아니 너보다 더 어렸을 적에 뭔가 심통이 나면 떼를 쓰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인가보다. 그러니 네 어미를 그리 힘들게 하지.’라고 하였지. 나는 참말로 우리 어매가 다리 밑에서 주워서 키우는지 알았다니까. 엄마가 나에게 서운하게 할 때마다 더 서럽게 울곤 했지. 요즘은 다리 밑에서 주워다 길러도 귀하게 잘 기르는 시절이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어요. 어떻게 다리 밑에 아기가 있을 수 있고, 사람을 물건도 아닌데 다리 밑에서 주워올 수 있나요? 그나저나 ‘나할머니’가 본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또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처녀 때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 많이 배워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싶었는데…. 집안 살림이 어려워서 그러지 못하였지. 너는 좋겠구나. 학교에 가서 마음껏 공부도 하고 얼마나 좋은 세상이니!”

‘나할머니’는 나를 무척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셨지요. 사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에 다니는 것인데, ‘나할머니’는 그것도 모르시나 봐요. 가방에 ‘동글이 유치원’이라고 써져 있는 데 말예요. 또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손자는 너보다 조금 클까…. 보고도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고…. 그리 멀리 사니 목소리 한 번 들어보기 힘들구나.”

대체 ‘나할머니’는 언제 ‘나’에 대해 말해 주시려는지 늘 딴 이야기만 하셔요. 그것도 가끔씩 불쑥 한 마디씩 하고는 가만히 계셔요.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으셔요. 그러나 내가 옆에서 유치원에서 있던 이야기를 해 드리면 아주 찬찬히 들어주시기는 하셔요. 나도 집에 늦게 가면 엄마가 걱정하시니까 ‘나할머니’께 이야기할 때는 아주 짧게 말해요.

“할머니, 오늘 새로운 노래와 춤을 배웠는데 재미있었어요.”

“할머니, 내가 그린 그림 보실래요. 짠!”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그림을 쫙 펴서 보여드리는 것이 다였어요. 나는 가끔씩 잊지 않고 “할머니, ‘나’는 어떻게 생겼어요?” 라고 물어보았지만, ‘나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셨어요.

하루는 ‘나할머니’ 곁에 앉아 있다가 심심해서 나무의자에 기어오른 개미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모래밭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았어요. ‘나할머니’께서는 깜짝 놀라면서 또렷이 말씀하셨어요.

“아서라! 그 것도 한 목숨 가지고 세상에 났는데. 왜 죽이려 하니?”

나는 내가 한 일을 꾸중한다고 생각되어 얼른 그만 두었어요. 개미는 몸을 이리저리 꼬면서 비틀거렸어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나할머니’가 내가 잘못한 것을 더 크게 꾸짖으실까봐 겁이 났어요.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집 쪽으로 뛰어가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어요.

계절이 바뀔 만큼 시간이 지났어요. 언젠가부터 ‘나할머니’께서 보이지 않았어요.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된 일인데 ‘나할머니’가 돌아가셨대요. 할아버지께서는 노인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해 주셨어요.

“말씀도 적고 사람들과 함부로 어울리지도 않고 늘 생각을 찬찬히 하시던 분이셨는데 돌아가실 때도 집안을 흐트러짐 없이 하고 가셨다는구나. 가족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바람에 장례를 간신히 지냈다는구나.”


그 뒤로, 나는 놀이터를 지나갈 때마다 ‘나할머니’가 떠올랐어요. 그때마다 ‘나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나를 돌아다보고 있단다.’ 라는 말이 귓전에 맴돌곤 했지요. 참으로 ‘나할머니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던 것일까요? 나는 목감기에 걸렸을 때 침이 꼴깍하고 시원하게 넘어가지 않는 것처럼 ‘나’라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있어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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