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리

by 일조

햇살이 우리 애기 등을 비추면

비늘이 달린 듯 반짝반짝 빛나던 모습이 생각난다.

실크처럼 부드러웠던 털의 감촉이 생각난다.

옷실 사이사이에 박혀 있던

하얗고 까만 털을 뽑아내면서

후후 불어대며 즐거워했던 내가 생각난다.

우리 야몽이는 모질이 참 좋았다.

가슴팍 털은 몽실몽실했고

등에 나 있는 털은 비단 한복 같았다.

얼굴에 나 있는 털은 뽀송했고

발에 나 있는 털은 폭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애기는 몸단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소파에 올라가 앉아 있다가

거실에서 느닷없이

따끈한 방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워서

자기 침대에서 한참을 정성 들여서

그렇게 그루밍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애기는 깔끔한 것을 좋아했다.

2023년에 접어들어

내가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애기가 털이 좀 섰어???“

말 그대로다.

항상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던 털이

어느 날부턴가

듬성듬성 뾰족하게 서 있는 털이 있었다.

그리고 거친 털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렇다고 그루밍을 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그루밍을 잘하고 있었고

즐겨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질이 달라졌다.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고

폭신함이 떨어졌다.

털이 살이 빠진 느낌이라고 하면

더 정확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질도 하나의 시그널이었다고 느껴진다.

사람으로 치자면

모질이 안색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먹은 것이 제대로 영양섭취로

이어지질 않으니

털이 말라갔던 것 같고

영양소가 빠지면서

푸석푸석해지고

그런 날들이 쌓이다 보니

털이 윤기를 잃고 거칠어지면서

군데군데 섰을 것이다.

마치 뿌리 상한 나무의 가지가

점점 마르고 뾰족해지듯이.

이 글을 보고

다른 집사 님들이 애기를 쓰담쓰담할 때

안색을 살피는 마음으로

한번씩 느껴봐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 털이 여전히 탄력 있고

탐스러운지 한 올 한 올 볼 순 없겠지만

집사 분이라면 누구나

손 끝에서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아깽이에서 소년냥이로 넘어가던 시절. 창문 밖을 바라보며 우릴 마중 나와줬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애기가 좋아했던 선베드. 햇살 좋은 날이면 이 자리에 길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며 동네 눈산책 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우리 애기가 좋아했던 겨울 이불 1. 우리 부부는 출근할 때면 이렇게 저렇게 모아서 이불 동굴을 만들어 주었고 다녀왔을 때 그 자리에 야몽이 자리만 움푹 파여 있는 것을 보고 좋아하곤 했다. >



<우리 애기가 좋아했던 겨울 이불 2. 겨울이면 보일러를 한참 돌려서 따끈해진 방바닥을 두고 침대에 올라가 자는 것이 억울했던 내가 바닥에 이불 깔고 자려고 하면 야몽이는 항상 따라와서 같이 자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따라온 게 아니라 이불 뺏긴 것이 억울했는지도?!>



<이렇게 앉아 있는 야몽이를 보면 나는 항상 상전이라고 놀려 주었다. 야몽임금님이라고 치켜세워 주었다.>



<콧등 털에 비친 햇살이 너무 예쁜 날의 야몽이. 우리 애기 겨드랑이 털은 우리 부부가 밀크셰이크 같다고 늘 탐내던 털이었다. 한번 쓰다듬는 대가는 늘 깨물깨물이었다. 그때의 우리 가족이 너무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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