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by 일조

집을 둘러보면서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야몽이가 있는 것에

신기해하고 좋아했었다.

방바닥부터 베란다 창문 창틀 하나하나에

다 야몽이가 있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 애기가 무지개별로 가더라도

우리 부부가 이 집을 떠날 순 없겠구나.

보는 곳마다 우리 애기가 있는 집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보는 곳마다 야몽이가 보이니

무지개별로 떠나도 떠난 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것 같겠구나…

그래서 덜 힘들 줄 알았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보이는 곳마다 야몽이가 있으니

떠나도 떠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더 많이 힘들었다.

우리 부부는 자다가도 몇 번씩

야몽이가 나무 바닥을 자박자박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야몽아?" 하면서 깨곤 했다.

밥을 먹다가 계단을 보면 야몽이가

앉아 네모북어 가져오라고 쳐다보고 있어서

목이 메이곤 했다.

거실에 앉아서 야몽이가 자주 철퍼덕

앉아 있는 자리를 보면서

넋이 나가 있곤 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내가 물고문을 당하는 줄 아는지

욕실 문 앞에서 하염없이 울어댔던

야몽이 소리를 듣곤 했다.


야몽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23년 8월 말

이동장에 들어가기 무서워서 싱크대 선반 밑에

숨어있는 애기를 청소기로 겁을 줘 가며 잡아서

태우고 큰 병원에 갈 때였다.

동네 병원에서는 다른 수치들이 정상인데

애기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큰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했었다.

다행히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상급 병원이 있었고

서둘러 예약을 잡아 출발한 날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애기가 이렇게 집을 나가면

다시 집으로 못 돌아올 것 같았다.

그 이상한 기분을 꾸욱꾸욱 억누르며

병원엘 갔다.

동네 병원에서 옮겨 받은 진료 기록을 보면서

큰 병원에서도 갸우뚱했다.

아픈 원인을 알지 못할 때 나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고 검색해 보면서

우리 애기가 치아우식증 때문에

밥을 잘 못 먹어서 생긴 병이라 생각했었다.

츄르를 받아먹다가 학을 떼면서

치를 떤 적을 몇 번 보았고

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도 몇 번 보았고

밥그릇 주변에 밥을 계속 흘리면서

먹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애기가 치아우식증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서 담당 선생님에게

그런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치과 쪽을 먼저 보시겠어요?

내과 쪽을 먼저 보시겠어요?


나는 치과를 먼저 보겠다고 선택을 했다.

우리 애기는 하루 입원을 했다가

다음날 수술방 스케줄을 잡고 마취를 하고 들어갔다.

나올 때는 이를 두 개 뽑은 상태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 어금니 쪽은 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역시 이게 원인이었던 거야

라고 확신했다.

하루 더 입원을 해서 경과를 지켜보고 난 후

퇴원하고 집으로 다시 데려왔다.

집에 다시 돌아온 애기는 너무 좋아했다.

병원에서는 화장실 한 번을 안 가고

구석에 박혀만 있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세 번을 갔다.

감자를 캐면서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우리 애기는 이른 저녁으로

6분 2초 동안 밥을 먹었다.

몇 달 만에 보는 잘 먹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우리 애기는 혈변을 보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이번에는 애기가 힘이 없어서

실랑이를 하지도 않았고 그냥 들어 안아서 이동장에

넣었다. 수월하게 잡히는 애기가 슬펐다.

품에서 버둥거리지도 못하는 야몽이가 불안했다.

이번에 병원에 갈 때는 기분이 더 이상했다.

같이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차 뒷좌석에 케이지를 놓고 병원으로 달리면서

창문을 열어 주었다. 창문을 열고 달려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창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애기한테 말을 계속 걸었다.

“애몽아 아빠랑 드라이브 가니까 좋지?

병원 후딱 다녀오자 금방 돌아올 거야

괜찮아 우리 애기 우리 애기 많이 안 아파“

병원에서는 이번에도 선택지를 주었다.


조직검사를 해 보시겠어요?

약하고 주사 처방을 하면서 보시겠어요?


생각해 본 적 없던 선택을

앉은자리에서 해야 했다.

그것도 상태가 시시각각으로 안 좋아지니

고민하면서 보낼 시간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조직검사를 하기로

선택을 했다.

조직검사는 개복을 하시겠어요?

개복 안 하고 채취를 시도해 보시겠어요?

개복을 안 하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채취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개복을 선택했고

이틀 만에 야몽이는

또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30분이면 끝난다는 조직검사가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겁이 너무 났다.

한 시간 30분 정도 있다가

수술이 끝났고 수술 선생님과 면담을 하러 갔다.

조직 검사를 위해 개복을 하고 보니

조직검사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장폐색이 심해서 위와 장이 막혀 있었다.

그래서 장을 절제하는 수술로 방향을 바꿔야 했고

우리 애기는

조직검사에서 장 절제술로 치료가 바뀌었다.


수술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이어서 담당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장 절제술을 하면서 떼어낸 세포를 봤는데

림포마가 있고, 장막에까지 다 전이가 됐고

혈액에서도 작은 림포마가 보인다고 했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었다.

그런데 선생님 표정이 많이 어두웠고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또 선택지가 나왔다.


항암을 하시겠어요?

항암 하지 않고 아이랑 시간을 보내시겠어요?


시간을 보낸다는 게 무슨 의미죠?

진통제를 맞으면서 생을 정리하는 거죠.

애기의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질 겁니다...

아내는 이미 너무 울어서

판단을 내릴 상황이 아니었고

그건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야몽이가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이번 선택에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내가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집사님들은 애기가 아플 때

내가 이런 이런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미리 생각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처럼

뒤늦게 우리가 그때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치과 말고 내과를 먼저 봤으면 우리 애기가 살았을까?

하면서 선택을 계속 곱씹으며 울며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싶어서이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애기는 시시각각 상태가 나빠졌다.

선택에 따라 생이 확확 달라지는데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선택에 신중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쫓기듯 내린 선택은 두고두고
정말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있다.


그 이후로 우린 몇 번의 선택을 더 내려야 했다.

항암을 하기로 선택을 했고

조직검사 결과를 받는데로 항암 방향을 잡고

1차 항암을 하기로 했고

빈혈 수치가 올라오지 못하는 애기를 보고

3일 더 입원하는 걸 선택을 했고

3일 후 이제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혈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을 했고

연명 치료에 들어가지 않는 걸 선택을 했고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 애기 임종을 준비하는 곳으로

평생 우리와 같이 잤던 침대로 선택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린 선택은

우리 애기 유골을 마당에 뿌려주자였다.

나중에 나 죽으면 그 옆에다 뿌려줘였다.




<우리 애기는 철퍼덕 누워있는 걸 좋아했다. 따뜻한 방바닥을 좋아했다. 겨울 고양이였다. 그 모습 보는 것을 우리 부부는 좋아했고 "여기 고양이 흘리셨어요"라고 상황극을 하곤 했다.>



<요러고 누워 있다가>



<요렇게>



<요렇게 좌우로 몸을 뒤집으며 지지는 걸 좋아했던 우리 애기. 우리 부부는 이것을 깨뒤집기라고 불렀다.>



<겨울이면 가장 좋아했던 자리. 스티커처럼 붙어 있었다. 요즘엔 내가 퇴근하고 오면 앉아 있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알게 되었다. 저 자리가 우리 집에서 제일 따뜻한 자리였다.>



<자기 침대에 온수매트를 깔아주었을 때 우리 애기는 정말 말 그대로 냥꿀잠을 자 주었다.>



<하얗고 까만 우리 애기와 어울리는 자리였다.>



<아내와 나 사이에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아침에 눈 뜰 때마다 감사했다. 조 배를 조물락 거리고 싶어 만질 때마다 깨물깨물을 당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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