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때 그것이 그런 의미였구나.
왜 그랬나 했더니 그래서였구나.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보면서
다시 되살려 보면서
죄책감과 후회, 미안함이 섞이면서
모든 사건과 상황들이
의미심장하게 때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그중 하나는 눈물이었다.
고양이가 왜 울까요?
내가 2022년에서 2023년에 자주 검색하던
질문이었다.
어느 날 우리 애기가 마사지를 받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었다.
처음엔 눈에 뭐가 들어간 줄 알았다.
허피스인 줄 알았다.
그건 아깽이만 걸리는 건 아닌가?!
그루밍을 하다가 털이 눈에 들어갔나?
아니면 마사지 방 공기가 안 좋은가?
먼지가 많은가 싶다가
눈병이 왔나? 싶어서 눈꺼풀을 뒤집어 보기도 했다.
눈은 말짱해 보였고 애기는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이
언제 울었냐는 듯이 꼬리를 팡 흔들며 떠나곤 했다.
우리 부부는 야몽이가 왜 울까 라는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고
큰일 아닐 거야, 별일 아닐 거야로 마무리 짓곤 했다.
그런데 야몽이가 떠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게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 애기는 떠나기 전해부터
종종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었다.
내가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면
내 겨드랑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나를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베란다 실외기 장판에 앉아
햇살을 쬐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내가 그만 들어오라고 나가서 불러 보면
눈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겨울 옷장 속에 들어가 앉아 있는 애기한테
"야몽아 편안해?" 하고 말을 걸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나를 쳐다봤었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애기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크게 대수롭게 않게 여겼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고양이는 눈물을 자주 흘린다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까먹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모든 생명은 아프면 운다는 것.
아픈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꼭꼭 감추지만
그래도 너무 아플 땐 못 참고 눈물이 난다는 걸
야몽이도 생명이고
사람하고 똑같은데
내가 너무 당연한 것을 외면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왜 지금에야 이런 생각이 드냐면
고양이가 너무 아플 땐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운다
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너무 아플 땐
눈물을 흘리며 운다.
사람처럼.
<동네를 굽어살피는 것을 좋아했던 우리 애기. 그래서 종종 얌신령이라고 불러 주었었다. 야몽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 저녁, 내가 저 자리에 서서 야몽아 잘 도착했니라고 물었을 때 구름 안에서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것을 보았다. 내 생전 그런 구름과 번개는 처음 보았다. 나는 그 이후로 아내에게 우리 애기는 구름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하얗고 까만 구름이 되었다고>
<어딘가 딱 맞춰져 있는 것을 좋아했던 야몽이>
<어렸을 때는 요 스크래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책꽂이 한 칸에 꽂혀 있었던 야몽이. 말 못 할 수난 시대였다.>
<커서는 어딘가 꼭 끼어 있는 것보단 넉넉한 품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했던 야몽이>
<어딘가 올라가 앉아있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쩐지 이 날은 쿠션 위에서 상전 노릇 하는 걸 즐겼던 야몽이>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애기 묘생 최고의 아지트는 여기였지 싶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한 누구에게도 잡히질 않을 공간. 앞발 포갠 것 좀 보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