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만 앎
후배 카피라이터가 물었다. 나와 20살 차이였다. "선배님, 카피를 세련되게 써 달라고 하는 건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요?" 가슴 한편이 뜨끔했다. 클라이언트 메일에 쓰여있던 요구 사항을 보고 흐린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세련되게라는 요청을 개인 취향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후배님은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나도 잘 모르겠어. 세련됨이라는 것이 개취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말을 못 해 주겠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선배님이 모르시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해 주었다. 네가 요즘 봐서 좋다고 느낀 카피의 결과 보이스를 흉내 내 봐. 여러 결을 봐야 뭐가 세련되었다고 느끼는지 감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이 되었고 후배는 등이 처진 채 돌아섰다. 계단을 올라가는 뒤 모양새가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보였다. 그 이후로 나도 계속 고민이 되었다. 세련되게 써 달라를 과연 어떻게 해석했었어야 했을까. 내가 느끼는 세련된 카피는 1)여덟 글자 안에 2)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면서 3)할말 다 하면서 4)말맛이 들어가 있고 5)잔상이 깊게 남아 6)반복되어 떠올려지면서 7)각인이 되는 카피다. 예를 들어 "예쁘면 DA야" 나는 이런 카피가 정말 세련된 카피 같다. 이걸 이렇게 이야기해 줬어야 했을까? 클라이언트는 분명 세련됨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것을 내가 모른다는 것뿐이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는데 그것이 온종일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 줄 나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