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유쾌 상쾌 명쾌

by 일조

1번. 주소만 한국이다.

2번. 귀여운 게 최고야.


두 개의 문장 중에 어느 쪽이 더 카피스러운가?


예전의 나는 당연히 첫 번째 문장이었다. '와 정말 멋지다! 주소만 한국이라니! 한국에 있는 글로벌 대학의 웅대한 비전과 해외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만 돈이 없거나 언어가 딸려서 포기했던 사람들의 인사이트를 7자의 글자로 담아내다니! 정말 너무 멋진 걸' 하며 감탄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귀여운 게 최고다. 좋다고 느껴지는 카피의 기준이 왜, 어떻게 바뀐 걸까?

요즘은 생각의 여지가 필요 없는 문장이 더 좋은 카피로 느껴진다. 나를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내 마음에 와닿는 카피. 그런 카피를 나는 '거울 카피'라고 부른다. 정확히 내 마음과 일치하는 거울 카피들 앞에는 항상 괄호 열고 괄호 닫고 (그렇지)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그렇지가 붙느냐 안 붙느냐의 차이다. “(그렇지) 귀여운 게 최고지” 말이 된다. 내 마음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 주소만 한국이지. 응? 왜?? 무슨 말이지???”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문장은 어렵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는 맞고 왜 지금은 틀릴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목적 지향적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찾고자 하는 정보가 명확하고, 알고자 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 기승전결로 말하는 것보다 핵심을 먼저 얘기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스마트폰 덕분(?)인 것 같긴 하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보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외 다른 콘텐츠들은 마치 블라인드가 처진 것처럼 내 눈에는 안 들어온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다 보니 조급증이 생겼다. 왜 빨리 안 알려주는 거야, 뭐라는 거야, 혓바닥이 너무 긴 걸, 안 되겠다, 갑자기 광고 뭐야! 스킵, 구간 점프! 나만 겪는 현상인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패러다임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거다. 문장을 곱씹어보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면서 숨은 의미를 발견했을 때 좋아했던 사람에서 생각할 여지없는 명쾌함을 조금 더 선호하게 된 나. 이런 내가 쓰는 카피라도 괜찮은 걸까. 나의 이런 성향이 카피에 반영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고민이 많이 되는 요즘이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카피를 쓰는 내 마음에 들어야 하기에 요즘의 나는 내가 쓴 카피 앞에 “그렇지” 가 자연스럽게 붙는지를 검수해 본다. 그렇지, 신발은 귀한 몸이지. 그렇지, 고양이는 사랑이지. 그렇지, 명쾌한 게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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