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자수에 대하여

by 일조

카피 길이에 대해 의견은 분분하다. 짧을수록 좋다. 아니다, 쓸 수 있을 만큼 길게 써야 한다. 사람들은 첫 두세 문장만 읽고 나머지는 읽지 않는다. 읽지 않는 것은 다음 문장을 읽게끔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양측의 의견이 다 일리 있어 보인다. 긴 카피가 좋을까, 짧은 카피가 효과적일까.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때그때 달랐기 때문이다. 잘 쓴 카피는 잘 읽히는 카피다. 그래서 쓰는 기술보다 읽히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뇌리에 박히든, 행동을 하든 카피는 읽혀야 비로소 기능하기 때문이다. 짧은 카피는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고 긴 카피는 경험을 남기는 때가 많았다. 경험을 남긴다는 것은 긴 글을 읽는 과정 속에서 요리조리 생각해 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 보고 그림을 떠 올려 보는 둥 읽는 동안 생기는 경험이 총체적으로 남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긴 카피는 카피 자체보다 카피를 봤을 때의 내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반면 짧은 카피는 문장 자체가 생명이 길다. 오래오래 살아남고 때로 십 년, 이십 년 가기도 한다. 인생 뭐 있어 훌랄라지. 같은 류의 카피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죽어 누워 있다가도 누가 인생 뭐 있어? 하면 벌떡 일어나 훌랄라지! 할 것 같다. 그만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짧은 카피는 무지하게 생명력이 길다. 내 기준에 짧은 카피의 기준은 여덟 글자이다. 예전에는 일곱 글자라 생각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전화번호가 지역 변호 빼고 일곱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010 빼고 여덟 글자이기 때문에 뇌가 가장 빨리 오래 편하게 인식할 수 있는 자수라 생각하여 여덟 글자이다. UX라이팅에서는 영역별로 글자수가 가이드로 제시된다. 그 자수에 맞춰서 카피를 정리하다 보면 어쩐지 말을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UX라이팅이 행동의 지시를 목표하기 때문에 나는 외적 행동은 내면의 발현이라는 행동 심리학을 깊게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나름 결론을 내린 것이 있는데 이것이다. UX라이팅에서는 문장 하나하나보다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것. 자수에 연연하지 말고 연결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영역보다 페이지로 관점을 넓혀보면 카피들 간에 연결성을 어떻게 만들어줘야 할지 보인다. 한눈에 잘 보인다면 천재겠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어서 계속 고민하며 찾는다. 그래서 UX라이팅은 독특한 재미가 있다.

짧아도 좋고 길어도 좋다. 도움이 되는 카피라면 모든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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