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순간 포착

by 일조

나는 한때 하이쿠를 좋아했었다. 일상의 찰나를 포착하고 그 순간 안에 보였던 우주의 철학을 담아보고자 노력하는 행동이 멋있어 보였다. 그것도 엄격한 창작 가이드를 지켜가며 분재하듯 세밀하게 언어를 다듬는 과정이 남달라 보였다. 어느 순간 추구하는 방향과 달라져 더는 하이쿠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순간을 포착하여 제한된 글로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행동은 여전히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카피를 쓰다 보면 배경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다. 행동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저 심리를 층층이 나눠 놓고 1층에서 할 말, 2층에서 할 말, 루프탑에서 할 말을 차례차례 놓아갈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쓴 카피를 쭈욱 나열해 놓고 보면 깨닫는 것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마디구나! 돌파는 한순간이구나. 이것은 경험 설계 이론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경험을 설계할 때 모든 여정에 공을 들인다. 한 접점에서라도 고객이 실망하면 전체 여정이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이 기억하고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전체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많아야 두 순간이다. 보통은 절정의 순간과 헤어짐의 순간이다. 그 두 순간이 전체 여정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의미 있는 한순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디자인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어떤 순간이 커다란 울림으로 기억될 때 순간의 경험이 기억으로 전환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는 경험 설계할 때와 같은 논리를 카피에 적용하고자 노력한다. 고객에게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카피. 나는 그런 카피를 전체 카피에서 두 문장은 꼭 넣으려고 노력한다. 포착하는 순간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카피를 쓴 내가 너무 좋아 보이는. 나는 오늘도 그런 카피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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