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그룹 언어

by 일조

어느 그룹에 가든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 있다. 해당 그룹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를 빨리 배우는 것이다. 사용하는 어휘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순간과 어울리는 어조에 대한 습득 능력은 조직 친화력과 비례한다. 광고주들을 만나다 보면 큰 산업군별로도 통용되는 언어가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전문 기술 용어를 쓰냐 안 쓰냐의 차이보다도 뭐랄까... 같은 말의 다른 뉘앙스에 가깝다. IT 분야 분들을 만나 보면 언어가 체계적이다. 말에 군더더기가 없고 의미가 몹시 명료하다. 투명도가 높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분들과 브리프를 주고받고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몹시 담백하다. 통곡물 빵을 올리브오일만 찍어 먹은 느낌이다. 제조업 분야 분들을 만나 보면 말에 온도가 높다. 사용하는 단어는 화려하지 않고 꾹꾹 눌러 말하는 듯한 우직함이 있다. 이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중간중간 고구마 먹는 듯한 느낌이 올 때도 있다. 소비재 분야 분들을 만나 보면 중간에 스마트폰을 놓고 손으로 대화하는 느낌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왠지 듣고 있는 사람은 본인 머릿속에서 해석, 분석, 결론을 엄청 빠르게 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리고 소비재 분야 분들은 솔직하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몹시 분명하다.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도 직설적이다. 그래서 대화가 산으로 간 채 끝나는 사태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1)내가 지금 어느 그룹에 계신 분을 만나러 가는가를 생각해 보고 2)언어를 먼저 패치한다. 3)모르면서 아는 체하려 하지 않고 4)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구사해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지를 생각하고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경험상 언어 주파수를 먼저 맞춰 놓으면 면대면 비즈니스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사회성 떨어지는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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