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내가 첫 문장을 쓰는 법

by 일조

첫 문장에 반하게 하라. 내가 신입 카피라이터이던 십수 년 전, 외국 책의 제목만 보고 사서는 제주도 여행 중에 탐독하던 책이었다. 저자가 죠셉 슈가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문장에 반하게 하라는 책을 시작으로 해서 외국 카피라이터 대가들이 쓴 책들을 여러 권 주문해서 봤다. 당시에는 영어 번역을 해 주는 툴이 지금처럼 좋지 않아서 웹스터 영한사전을 옆에 끼고 단어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봤었다. 이제 막 카피라이터를 시작했던 당시의 나는 문장과 문장을 잇는 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는 방법을 정말이지 하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설득의 글쓰기는커녕 일기 쓰기조차 국민학교 이후로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는 너무너무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첫 문장을 잘못 쓰면 나머지 모든 카피들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서 이틀 삼일 내내 시작도 못한 적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첫 문장을 완벽하게 쓰고 싶었다. 첫 문장을 보고서 누구나 와~ 하고 감탄할 수 있기를 욕심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용감함. 혹은 무지에서 오는 오만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막 써야 했다. 아무 글이라도 좋으니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모니터를 마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려 써야 했다. 이건 이래서 안 될 것 같아, 이건 너무 평범해, 이건 혼날 것 같아, 이건 많이 봤잖아, 여기선 눈길 가는 단어 하나도 없잖아... 이런 상상을 하면서 혼자 머릿속에서 검열할 시간에 뭐가 되었든 일단 막 써 봐야 했다. 그렇게 쓰고 나서 쓴 말들을 훑어보면서 '이 말을 제일 먼저 하면 좋겠는데' 하고 건져 올리는 것이 첫 문장을 쓰기엔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며칠을 카피를 못 쓰고 끙끙 대는 나에게 당시 회사 대표님이 혀를 끌끌 차시면서 하신 말이 있다. "그냥 네가 쓰고 싶은 말을 가득 써서 나한테 가져와라. 되지도 않는 폼 잡지 말고" 다음 날 나는 아무 말로 가득 채워진 A4지 한 장을 공손히 내밀었고 A4지 바닥 쪽에 있는 한 줄에 검은색 플러스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왔다. "헤드라인으로 쓸 만은 하겠네"라는 평가 함께. 나는 그렇게 시작해야 했다. 지면 매체에서는 첫 문장을 쓰고, 영상에서는 첫 씬에 대한 묘사를 쓰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히어로 배너든, 영상 카피든, 유튜브 스크립트든, 캠페인 시나리오든, 국내용이든 글로벌이든 첫 문장을 그렇게 쓴다. 일단. 막. 아무 말 특대잔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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