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유명한 걸로 유명해

by 일조

우리 집에는 배경음악이 있다. 엠넷과 뮤직뱅크다. 나도 아내도 트렌드를 놓치면 안 되는 업인지라 휴일이면 그냥 틀어놓는다. 보다 보면 그분들이 그분들인 것 같고 그룹 이름과 노래 제목이 헛갈릴 때도 많다. 다들 잘 생겼고 한결같이 인형 같다. 노래 가사말도 어쩜 저렇게 통통 튈 수 있는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뭔가 야릇한 저게 요즘 트렌드인가 봐, 나는 틀렸나 봐 먼저 가, 이런 이야기들을 농담 반 진담 반 주고받으며 아이돌 음악을 따라간다. 요즘 접하는 카피나 표현 중에도 아이돌 질감인 것들이 있다. 최근에 들은 말은 "유명한 걸로 유명해"였다. 아내와 산책을 하다 따뜻하고 빨간 국물 맛이 먹고 싶어 찾아간 감자탕 집에서였다. 길게 늘어선 줄 끝에 가 서면서 점심 휴게시간과 내 앞에 대기 줄 길이를 가늠해 보면서 먹을 수 있나 없나 간당간당한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였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젊은이 3명이 뛰듯이 걸어오면서 "이 집이 유명해?" "응! 이 집, 유명한 걸로 유명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저런 류의 말은 아이돌 팬카페 질감이나 웹툰 질감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못 하는 걸 못 해요, 포기를 포기했죠. 쉬워서 쉽게 하는데 왜? 같은 표현이다. 단순한 말의 반복 같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면 위트도 있고 맞는 말이기도 하고 같은 말을 더 재치 있게 한 것 같기도 하다. 말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깊은 뭔가가 있다. 카피의 원천은 어디에나 있다. 특히나 요즘 같은 때에는 고객들이 모여있는 곳이 카피의 샘이 될 때가 있다. 옛날에는 좋은 카피를 쓰려면 문사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었다. 문학, 사학, 철학을 알아야 카피를 잘 쓴다고 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능력, 공감 기술, 팝업 스토어를 찾아다니고자 하는 덕심, 이런 것들을 잘 알아야 카피를 잘 쓴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하는 만큼 행동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여전히 느리다. 그래도 방향은 맞춰서 꾸물꾸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내도 유명한 걸로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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