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hours

익숙한 조화가 불확실한 자유로 바뀌던 시간.

by XandO

재즈가 학교의 제도권으로 들어가게 된 발단은

의외의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1939년, 미국 작곡가, 출판가 협회(ASCAP)와 방송국 간의 저작권료 갈등이 일어났다.

ASCAP은 방송사들에 기존보다 훨씬 높은 저작권료를 요구했고,
이에 반발한 방송국들은

1941년부터 협회 소속 작곡가들의 곡을 일절 방송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곧바로 재즈계 전체에 파문을 일으켰다.

방송국들은 대체할 음악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새로 등장한 저작권 단체인 BMI(Broadcast Music, Inc.)였다.
BMI는 ASCAP에서 배제되었던

흑인, 블루스, 컨트리, 포크, 초기 재즈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이전까지 전파를 타지 못했던 흑인 음악가들의 곡이 처음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ASCAP 독점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언더그라운드로 분류되던 재즈가

공식 매체 속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안착하기도 전에 새로운 위기가 닥쳤다.
1942년,

미국 음악가 조합(AFM)은 레코드 회사에게

실연자들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로열티 지급을 요구하며

모든 상업적 녹음을 중단하는 레코딩 금지령(1942–44)을 내렸다.
이 음악가 조합의 파업은 2년 이상 지속되었고,
대규모 스윙 빅밴드의 녹음과 방송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었다.

이 두 사건, ASCAP 보이콧(1941)과 레코딩 금지령(1942–44)은
스윙 시대의 화려한 전성기에 결정적인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방송을 통한 히트곡의 재생산이 불가능해지자

재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고,
빅밴드를 유지하던 경제적 기반 역시 붕괴되었다.

모든 공식적인 방송과 녹음이 멈춘 그 시기,
재즈는 대중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 침묵의 이면에서 급진적인 몇몇 젊은 재즈 연주자들은
뉴욕 할렘의 심야 클럽, 민턴스 플레이하우스(Minton’s Playhouse), 모나크, 모스코스에서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곳은 무대의 규칙도, 프로듀서의 지시도,

대중의 취향조차도 개입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었다.
정규 영업이 끝난 뒤 시작되는 그들의 밤은 ‘Afterhours Session’,
혹은 ‘Jam Session’이라 불렸다.
당시, 민턴스 플레이하우스의 영업부장이었던 테디 힐(Teddy Hill)은

젊은 급진파 연주자들에게 공간을 내주었고,
경찰의 단속이나 클럽 주인의 불만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했다.

그 밤의 무대에는 취객도, 유흥에 흔들거리는 무도회장의 관객도 없었다.
대신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 색소폰의 찰리 파커, 피아노의 텔로니어스 몽크,
그리고 드럼의 케니 클락 등이 번갈아 무대에 올라 서로의 연주를 겨루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트럼펫은 복잡한 코드 위에서 기관총처럼 내달렸고,
찰리 파커는 그 위로 한 박자 늦게 파고들며 음들을 뒤틀어 놓았다.
델로니우스 몽크의 피아노는 정박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불편한 화음을 습관적으로 눌러댔다.


당시 리듬연주의 형태를 혁신적으로 바꾼 이들은

케니 클락을 중심으로 한 비밥 드러머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드럼을 ‘박자를 유지하는 기계’처럼 연주하지 않았다.
스윙에서 중심이 되던 베이스 드럼 대신 라이드 심벌로 비트를 이끌었고,
스네어와 베이스 드럼은 다른 악기들과 대화하듯 유기적으로 즉흥연주에 개입했다.
이 비밥에서의 드럼 리듬은 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즉흥연주자들이 서로의 생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기적인 펄스를 제시하는 새로운 차원의 리듬 연주로 바뀌었다.


비밥의 화성은

델로니우스 몽크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의 손에 의해

해체되고 새롭게 다시 짜여졌다.
그들은 기존 스탠더드의 코드 진행 위에
대체화음(Substitute Chord)을 겹쳐 쌓아 올리고,
그 위에 9th, 11th, 13th 같은 텐션음을 다시 얹었다.
안정된 화음의 조화보다는 긴장과 불안감에 집중했고

규칙적인 패턴에서 오는 예측 가능함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함이 주는 자극에 열광했다.


Anthropology - Charlie Parker


찰리 파커는

“기존 화음이 아니라, 내가 들리는 대로 음을 쌓았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의 즉흥연주는 대책 없는 감각적 무질서가 아니라,
화성적 논리를 실시간으로 재조립하는 고도의 지적인 음악적 실험이었다.

내뿜는 한 음 한 음으로 재구성된 화성을 다시 써가며,
불협과 해체 사이를 넘나드는 섬세한 감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결국, 1939년의 저작권 분쟁과 1940년대 초의 파업은
단순한 음반업계의 산업적 사건이 아니라,
재즈가 ‘대중의 오락’에서 ‘창작의 실험’으로 이동하는
결정적인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스윙의 거대한 무대가 침묵한 자리를 대신해,
작고 어두운 클럽의 새벽에서 비밥(Bebop)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모던재즈의 시대가 도래하는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Well You Needn't - Thelonious Monk


비밥은 결국 하나의 음악 스타일이라기보다,

급진적인 젊은 세대의 정신적 그리고 음악적 실험이며 탈출이었다.
그들은 녹음이 금지되고, 방송 출연이 제한된 시대에

오히려 “누구도 듣지 않는 공간”에서 가장 혁명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익숙한 화음들의 조화가

불확실한 자유로 바뀌던 그 새벽

Afterhours
그것이 바로,

예술음악 비밥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