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s The Time

재즈의 두번째 혁명가 Charlie Parker.

by XandO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는

20세기 음악사에서 재즈를 유흥음악에서

예술음악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재즈의 혁신가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버드(Bird)’라는 그의 별명은

자유와 혼돈, 천재와 파멸의 양끝을 상징하는

단어로 그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가 활짝 열어젖힌 1940년대의 비밥(Bebop) 시대는

재즈의 문법 자체를 근본부터 바꾸어놓은 사건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재즈는

스윙 시대의 산물로,

춤을 추기 위한 리듬과

단순한 코드 진행을 중심으로 한

듣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위주의 음악이었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는 그 익숙한 구조를 해체한다.
그들은 더 이상 무대의 청중을 춤추게 하기 위한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스윙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음악이었다면,

비밥은 논리적인 긴장감과

창조적인 불안감을 즐기기 위한 음악이었다.


찰리 파커는 이 새로운 음악에 새로운 재즈의 어법을 부여한다.
그는 복잡한 화성 위에서 아르페지오와 변형된 스케일을 자유롭게 오가며,
코드와 코드 사이의 빈 공간을
정밀하게 계산된 구조위에 생소한 음들로 채워간다.

코드 톤(target tones)과 패싱 노트(passing tones)를 활용하여,
멜로디가 화성의 골격 안에서 논리적이면서도 감상적으로 움직인다.
그의 솔로는 악보로 옮겨도 완벽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은

아직도 재즈를 교육하는 각급 학교에서

즉흥연주 화성학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Now's The Time - Charlie Parker


찰리 파커의 수많은 연주들 중에서도

[ Now’s The Time ]은 그의 음악적 천재성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비밥의 창시자로 알려진 파커가,

자신의 캔자스 시티 블루스의 뿌리를 결합해 만들어낸 곡으로,
그가 지닌 두 음악적 세계관인,

혁신과 전통이 조화롭게 맞물린 작품의 정점이라 볼 수 있다.


이 곡은 블루스의 단순한 골격 위에 비밥의 언어를 펼쳐놓은 대표적인 예다.
난해하고 빠른 멜로디 라인을 자주 구사하는 파커가
이 곡에서는 이례적으로 단순하고 블루스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기본적인 12마디 블루스(12-Bar Blues)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재즈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로 꼽힌다.
그 덕분에 이 곡은 재즈 초심자들이 블루스 형식을 익히기 위해 가장 자주 추천되는 곡이기도 하다.

메인 테마는 단순한 선율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찰리 파커 특유의 세련된 당김음(syncopation)과

불규칙한 엇박들이 요소요소에 위치하고 있다.
이 미묘한 리듬의 틈새가 곡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비밥 특유의 리듬감과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또한 전반적으로 블루스 스케일이 두드러져,
비밥의 지적인 긴장감보다는

블루스의 원초적 감성과 정체성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 곡은 전통적인 비밥 스타일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친근한 멜로디 라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복잡하고 긴장된 비밥의 세계 속에서도
블루스의 여유와 땅 냄새가 묻어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 Now’s The Time ]은 비밥의 복잡성과 블루스의 단순함을 한데 담아낸 곡으로,
연주자들에게는 두 언어를 연결하는 교본 같은 곡이다.

복잡한 이론 이전에,

즉흥과 감정의 진실을 전하는

찰리 파커의 목소리가 가장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연주 중 하나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Bird(1988)은
파커의 삶을 진심 어린 경의로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현실 속 버드는

영화보다 훨씬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끝없는 폐를 끼쳤고,
자신의 천재성으로 쌓인 명성을

그의 이기적이고 혼란스러운 기행들은

그의 모든 인간관계를 갉아먹기도 하였다.
그의 인간적인 혼란과 불안은 오히려 신화의 일부가 되었다.


재즈의 역사를 혁신으로 나눈다면 세 번의 큰 전환점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은 집단 즉흥의 시대를 넘어,
개인 솔로라는 개념을 정립해 재즈에 ‘자아’를 불어넣었다.
찰리 파커는 그 자아를 지적이고 해체적인 언어로 확장시켰으며,
재즈를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예술 음악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오넷 콜맨은 그 언어마저 벗어나
화성의 구속이 없는 완전한 자유 즉흥의 세계로 나아갔다.


그중에서도 찰리 파커는
예술이 인간의 비극을 통과해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의 음들은 지금도 여전히 새가 되어 하늘 위에 자유롭게 머물러 있다.
불안정하게 날아오르다,

끝내 땅에 닿지 못한 새처럼.

그는 음악으로 자신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음악조차 그를 구제하지 못했다.


1955년,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34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
담당 의사는 “마치 60대 노인의 시신 같았다”라고 기록했다.
삶은 짧고 비참했으나,

그가 남긴 음 하나하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