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라파로가 쏘아 올린 두번째 공, Jazz Piano Trio.
1961년 7월 6일 새벽,
스콧 라파로는 뉴욕주 플린트 근처의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다섯이었다.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실황 녹음이 끝난 지 열흘 남짓한 시점이었다.
그 녹음은 그렇게 그의 마지막 연주 기록이 되었고
빌 에반스는 이 소식 앞에서
오랫동안 실어증을 겪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빌 에반스, 그에게 스캇 라파로는
재즈 연주자로서 염원처럼 그리던
재즈 앙상블의 이상적인 모습을 실현 가능케 해 준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스캇 라파로는 처음부터 베이스 연주자는 아니었다.
피아노와 클라리넷, 색소폰을 거치며 다양한 음악적 소리를 탐닉하는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더블 베이스를 잡았을 때도,
전통적인 방식에 머무를 생각은 전혀 없었던 듯하다.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섬세한 움직임,
기타의 연주 방식을 떠올리는 다양한 연주 기법,
예측과 고정관념을 가볍게 비껴가는 박자와 타이밍.
이런 그의 연주 요소들은
그가 미리 바라보던 새로운 베이스의 역할과
재즈 앙상블에 대한 새로운 지향점을 암시한다.
당시 주변의 연주자들이
“저건 반주가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말하곤 했던 이유다.
스캇 라파로가 빌 에반스, 폴 모티안과 함께 만든 트리오는
기존에 연주되던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연주 관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었다.
피아노가 앞에서 이끌고, 베이스와 드럼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여
피아노를 받쳐주는 전통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유기적으로 호흡을 시도한다.
피아노가 멜로디를 반복하면
라파로가 곁에서 화성으로 응답했고,
모티앙은 그 흐름 위에 리듬의 색을 입혔다.
1959년 12월 28일에 녹음하여 1960년 발매된 < Portrait In Jazz >,
1961년 2월 2일 녹음하여 1961년에 발매한 < Explorations>,
1961년 6월 25일 녹음하여 1961년에 발매된
<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
그리고 같은 날 녹음되어 1962년에 발매된 < Waltz For Debby >까지 이 네 장의 앨범은
이 세 사람이 어떤 균형 속에서 앙상블을 바라보았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재즈 명반이다.
라파로는 베이스라는 악기의 역할을
‘시간의 경계선’을 만드는 리듬 악기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리듬을 고정시켜 붙잡아 두기보다는
자유로운 흐름 안에서 전체 앙상블의 리듬적인 상호작용에 집중한다.
멜로디 속 사이사이의 공간을 치밀하게 읽어냈고,
화성의 흐름을 미세하게 뒤틀어 또 다른 긴장감을 조장한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뒤를 잇는 유일한 천재 트럼펫 연주자, 부커 리틀이
“내 뒤에서 가장 많은 얘기를 걸어오는 베이시스트는
단연, 스캇 라파로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캇 라파로는 재즈 앙상블 안에서 베이스의 연주 형식과 방향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베이스가 무게중심을 맡아 연주를 이끌어 가되,
그 위치와 역할을 고정관념 안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후배 베이시스트들이 아직까지도
그를 재즈 베이스연주의 기준점으로 삼는 것도
이런 혁신적인 접근 방식 덕분이다.
스캇 라파로의 비극은
그들, 트리오의 음악이 한창 새 국면으로 접어들던 순간 발생했다.
빌 에반스는 한동안 연주 자체를 회피했고,
폴 모티앙, 역시 그 공백에 적응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스캇 라파로가 보여준 재즈에 대한 접근은
그 뒤를 잇는 모든 재즈 트리오 연주자들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베이스가 단순한 타임 키핑과 그루브의 기반이 아니라,
즉흥연주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두장의 빌리지 뱅가드 실황에서 들려준 그의 연주는
끝내 풀어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재즈라는 언어에 감추어진 새로운 화법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물다섯에 생을 마친 스콧 라파로를 떠올리면,
“그가 더 살았더라면…”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이 수도 없이 따라붙는다.
그가 남긴 몇 장의 음반과
“Gloria’s Step”, “Jade Visions” 같은 자작곡만으로는
그의 음악이 어디까지 나아갔을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짧은 기록만 남긴 채 사라졌다는 그 사실이
오히려 그가 품고 떠난 그 가능성을
더욱 아련하고 아득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