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l Jazz, Chet Baker.

푸르름을 향한 슬픈 충성.

by XandO

남자들의 철없음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던지는 말이 있다.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한다.
"평생 운이 좋다면,

철들지 않은 채, 살다 갈 수도 있다. “고...


물론 바흐처럼 22명의 자녀를 책임지며
가장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진 '생계형 예술가'도 있지만,
우리는 평생을 철들지 않고

영원한 청춘으로 살다 간

퍽이나 운이 좋았던 예술가들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Chet Baker를 사랑한다.


1.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 Chet Baker


인색한 오후의 햇살마저

저녁노을에게 내어 준 늦가을 바람은
귀에 익은 누군가의 트럼펫 소리처럼 야속하다.
쳇 베이커가 내뱉는 그 옅은 한숨은

쓸쓸한 낙엽향을 잔뜩 머금은

스산한 늦가을,

그 야속한 가을바람을 닮았다.


2015년,

쳇 베이커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Born To Be Blue>가 개봉했다.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작품으로,
에던 호크가 쳇 베이커를,

카르멘 에조고가

가상 속의 연인, 제인을 연기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약물 중독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쳇 베이커가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적당한 픽션과 역사적 사실들을 잘 버무려 만든 작품이다.
이 허구는 재능과 명성 뒤에 숨겨진

한 청춘의 철없던 삶과 슬픔을 애틋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OST는 단연코,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이다.
이 곡은 본래 1950년대 인기 뮤지컬

<Guys And Dolls>을 통해 처음 알려진 곡이다.
대부분의 사랑 노래가 거침없는 사랑의 열정을 표현하는 반면,
쳇 베이커의 사랑 노래들은 늘 조심스럽고 수줍다.
한 번의 숨결,

작은 움칫거림에도
그는 늘,

그 수줍음을 감출 수 없다.


"나, 지금 이 마음을 고백해도 되나요?"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소년,
오직 풋내 나는 설렘 하나에 기대어
고백의 용기를 내어본다.


무명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좌절과 생활고,
늘 자신감 없고 우울했던 어린 시절.
타고난 소심함과 부질없던 섬세함,
그리고 즉흥적인 철없음으로
삶의 순간들을 순진하게 살아낸 쳇 베이커.


그의 젊음을 가장 가깝게 닮은 노래는

역시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이다


2. But Not For Me - Chet Baker


1954년에 발매된 앨범 < Chet Baker Sings>는

그의 앨범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그의 어눌한 오클라호마식 사투리가 섞인 영어 발음은

" 멜로디는 있지만 발음이 반쯤 녹아내린다 "라는

비평가들의 질책을 받아야 했고

"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지만, 무서울 정도로 이론에 무지하다"라고

무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며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만 같은

순수한 소년으로 살았다.


그의 동료 연주인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쳇은 어린아이 같은 천재였어요.

때론 사랑스러웠고, 때론 정말 짜증 났죠.

하지만

트럼펫에 그의 숨결이 깃드는 순간

모든 게 다 용서됐어요.”


젊고 반짝이던 시절,

이미 멜랑콜리의 기운이 깃든 그의 음색

“나는 사랑받을 사람이 아닌가 봐요”라는 가사는

소년을 지나 청년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수줍고 소심한 자기 독백처럼 들린다.


사랑은 나를 위한 게 아닌 것 같다고,

[ But Not For Me ]


그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늘 무심하게 노래한다.
마치 사랑의 시련에 수없이 단련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자조적인 농담처럼.


3. My Funny Valentine - Chet Baker

< The Last Great Concert >

1988년 독일에서의 라이브를 담은 앨범
<The Last Great Concert>는
쳇 베이커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실황이다.


그는 이 무대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스테르담의 어느 호텔 2층 창밖으로 몸을 던져

세상밖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이 연주는 그렇게

그가 마지막으로 고백한

푸르렀던 자신의 청춘을 향한

마지막 유언이다.


금이 간 수정 같은 트럼펫 소리,
허물어지기 직전의

이끼 낀 담벼락처럼 위태로운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더 애처롭고 아름답다.


끝내 낡아버린 청춘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그 철없음을 놓지 않으려 애쓰던
푸르름을 향한 그의 슬픈 충성.


그의 숨결은 언제나

첫 음보다 먼저 도착했고,
그 음은 언제나

쉼표 한참 전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사라진다.


세 곡의 사랑 노래는

긴 세월을 두고 각각 떨어져 있지만,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방식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 무심한 독백 같은 고백 속에서

쳇 베이커가 품고 살던

수줍은 사랑과
철없는 청춘에 바친 그의 충성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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