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재즈와 보사노바 사운드의 정석, The Sound!
1950~60년대에 활동하던 재즈 연주자들 가운데,
특히나, 쿨재즈 뮤지션들은 유난히 세련된 외모와 분위기로도 주목을 받았다.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 또는
‘쿨재즈의 왕자’라는 별명의 미소년 이미지로
당시 잡지와 공연 사진에서도 쉽게 확인되듯
젊은 층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제리 멀리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큰 키와 단정한 금발, 깔끔한 셔츠와 재킷 차림은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연상시켜 지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아트 페퍼와 폴 데스몬드 역시 부드러운 표정과 단정한 복장,
과하지 않은 무대 매너로 청량한 쿨재즈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이들의 외모와 스타일은 당대 미국 대중문화가 바라보던
‘깨끗하고 낭만적인 젊은 재즈’의 이미지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The Sound’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스탄 게츠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부드러운 음색과 절제된 프레이즈로 유명했지만,
무대와 홍보 사진 속 단정한 외모와 차분한 태도 역시
쿨재즈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요소로 자주 언급되었다.
이처럼 여러 연주자들이 남긴 음악과 시각적 인상은
쿨재즈가 대중에게 전달된 방식에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재즈라는 장르의 이미지를 너머
하나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게 된다.
스탄 게츠는 테너 색소폰 연주자 가운데에서도
쿨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보사노바를 미국과 유럽에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 공로는 당시 음반 판매와 라디오·TV 출연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그의 음색은 유난히 부드럽고 서정적이었다.
매우 깨끗한 톤과 긴 호흡, 억지로 힘을 주지 않는 자연스러운 프레이즈가 특징이었고,
이러한 특성 때문에 ‘The Sound’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연주는 매끄럽고 따뜻했으며,
특유의 몽환적인 울림까지 지니고 있어
쿨 재즈의 정서에 안성맞춤이었다.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
비밥의 빠르고 격렬한 스타일이 중심이던 시기에도
그는 보다 차분하고 정제된 음향을 추구했다.
이 선택은 당시 서부해안의 쿨 재즈 흐름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후 그의 음악적 정체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쿨재즈의 또 다른 대가인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간과의 협연 앨범인
< Getz Meets Mulligan In Hi-Fi > (1957)에서
쿨 재즈의 두 거장이 만나 펼치는 쿨재즈의 향연은
당시 웨스트 코스트 재즈 사운드의 정수를 들려준다.
스탄 게츠의 음악적 뿌리를 이해하려면 레스터 영을 먼저 떠올릴 필요가 있다.
레스터 영은 1930년대부터 활동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로,
당시 주류였던 콜먼 호킨스의 강하고 육중한 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가볍고 부드러운 음색, 느슨하게 흘러가는 듯한 리듬감을 일찍부터 사용했고,
이런 특징은 이후 쿨 재즈 사운드의 기반으로 평가된다.
색소폰의 대통령이라는 의미의 ‘Prez’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영향력은 동시대 연주자들에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
스탄 게츠는 이 계보에서 가장 뚜렷한 계승자로 거론된다.
그는 레스터 영의 부드럽고 가벼운 톤, 멜로디 중심의 접근 방식을
자신의 연주 안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여기에 본인의 맑고 정제된 음색을 더하며 더욱 세련된 스타일로 발전시켰고,
이런 흐름을 가리켜 평론가들이 ‘레스토리안 모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식 용어라기보다는,
스탄 게츠가 레스터 영의 미학을 얼마나 충실히 이어받았는지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다.
스탄 게츠의 톤은 특히나 두드러졌다.
레스터 영이 부드럽지만 약간 중얼거리는 듯한 질감을 지녔다면,
게츠의 톤은 맑고 깨끗하면서도 서정성이 강했다.
이 때문에 스탄 게츠는 ‘The Sound’라는 별명을 얻었다.
과도한 기교에 의존하지 않고,
명료한 멜로디와 여유 있는 프레이징으로 흐름을 만들어가는 방식 역시
레스터 영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다듬은 결과였다.
리듬감에서도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뚜렷하다.
레스터 영의 특징 중 하나였던 약간 뒤로 밀리는 듯한 프레이징은
스탄 게츠의 연주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느긋한 호흡은 비밥의 거센 리듬과 대비되며,
쿨 재즈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정서적 결도 이어지지만 그 안에서의 차이도 분명했다.
레스터 영이 블루스 기반의 은은한 감성을 갖고 있었다면,
스탄 게츠는 더 밝고 세련된 감수성을 연주 속에 담았다.
이 차이는 스탄 게츠가 쿨 재즈와 보사노바 시대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스탄 게츠의 음악은 레스터 영으로부터 내려오는 ‘쿨한’ 미학을 핵심으로 하되,
이를 더욱 투명하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재정립한 결과였다.
그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완성된 스타일을 만들었고,
이 흐름이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 주었다.
1960년대 초, 스탄 게츠는
브라질에서 시작된 보사노바를 재즈와 결합하며 큰 변화를 맞는다.
이 시기는 그의 경력에서 상업적 성공이 가장 두드러지던 시기였고,
재즈 전체의 흐름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스탄 게츠의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쿨 재즈 톤은
보사노바의 조용한 리듬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보사노바 특유의 나긋한 흐름은 그의 솔로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고,
색소폰은 마치 또 하나의 보컬처럼 들렸다.
이 조합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 1962년의 앨범 < Jazz Samba >다.
스탄 게츠는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와 함께 이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는 미국 재즈계에서 보사노바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대표적 작품으로 기록된다.
특히 [ Desafinado ]는 스탄 게츠에게 첫 그래미를 안긴 곡이며,
보사노바가 미국 재즈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준 곡이기도 하다.
1964년에 발표된 앨범 < Getz/Gilberto >는 이 흐름을 한 단계 더 넓힌 작품이 된다.
주앙 질베르토,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그리고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참여하면서
브라질 보사노바의 핵심이 그대로 미국 재즈 안으로 들어왔다.
[ The Girl From Ipanema ]와 [ Corcovado ]는
미국을 거쳐 전 세계적인 반응을 얻었고,
특히 [ The Girl From Ipanema ]는 당시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은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으며
재즈 음반으로서는 전에 없던 대기록을 세운다.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미국의 쿨재즈가 만난 것은
새로운 스타일을 억지로 붙여 넣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미 공통된 성향이 충분히 존재했다.
두 장르는 모두 절제, 미니멀리즘, 선명한 멜로디 라인을 중시했다.
뜨거운 열정과 화려한 기교보다
차가운 이성과 명료한 멜로디의 질감을 중요하게 다루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스탄 게츠 특유의 테너 사운드는
보사노바의 섬세한 리듬과 정교하게 맞물리며 부드럽게 합쳐진다.
스탄 게츠가 보사노바에 처음 참여했을 때
그는 새로운 스타일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보사노바가 지닌 정제된 구조와 부드러운 정서는
이미 쿨 재즈의 절제된 선율 감각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츠는 그 공통점을 자연스럽게 살려 한층 부드럽고 이성적인 흐름으로 보여줬다.
그의 별명인 ‘The Sound’는 이 만남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부드럽게 흐르는 음색은
두 장르가 공유하던 미니멀리즘을 선명하게 드러냈고,
보사노바의 서정과 쿨 재즈의 절제를 무리 없이 이어주었다.
그 결과 쿨 재즈는 보다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뻗어나갔고,
보사노바는 재즈의 언어로 다시 해석되며 세계 속으로 뻗어나간다.
이는 서로 다른 음악의 결합이 아니라,
이미 닮아 있던 두 흐름이 스탄 게츠라는 연주자를 통해
그 본질을 더욱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의 보사노바 작업이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