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Jazz, Ornette Coleman.

열린 대공간의 발견.

by XandO

오넷 콜맨은 1930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14세 때 어머니가 사준 알토 색소폰을 독학으로 익힌다.

초기에 그는 리듬 앤 블루스(R&B) 밴드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지만,

악보를 정석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직관적인 방식으로 연주하는 경향이 강해,

동료 연주자들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화성학적 규칙보다는 감정과 선율의 흐름을 중시했는데,

이는 훗날 그가 '프리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시발점이 된다.


오넷 콜맨이 처음부터 전위적인 음악만 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그의 음악은 정통 비밥(Bebop)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며,

멜로디 감각이 매우 뛰어난 연주자였다.

1958년 그의 데뷔작인 < Something Eles!!!! >는

비교적 정통적인 비밥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이때부터

기존의 코드 진행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조짐을 보인다.


Invisible - Ornette Coleman


오넷 콜맨의 데뷔 앨범 < Something Else!!!! >는

( 캐논볼 애덜리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 Something Eles >와는 다른 앨범이다 )

그가 비밥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첫 앨범이다.

특히,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콜맨의 작곡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인 [ Invisible ]은

매우 빠르고 복잡한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비밥 스타일처럼 들리면서도

화성적으로는 기존의 틀을 묘하게 비틀고 있다.

오넷 콜맨과 트럼펫터 돈 체리의 환상적인 호흡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Tomorrow Is The Question! - Ornette Coleman


1959년 발표된 그의 두 번째 앨범이다.

앨범 타이틀이 이야기하듯,

현대 재즈의 방향성을 예고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앨범이다.

첫 트랙인 [ Tomorrow Is The Question ]은 제목처럼

앨범의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곡으로

피아노가 없기 때문에

색소폰과 트럼펫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화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선율을 통해

"미래의 재즈"를 예견하는 듯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앨범부터 오넷 콜맨은 피아노(화성 악기)를 과감히 제거한다.

피아노가 정해주는 코드의 제약 없이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위에서

색소폰과 트럼펫이 더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데뷔작보다 훨씬 정교하며, 멜로디와 리듬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했다.

앨범 제목처럼 "내일의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문제작이기도 하다.

당시 평론가들은 그의 독특한 톤과 음정을 보며

"기교가 부족하다"라고 비난하거나

"천재적인 독창성이다"라고 극찬하며

극명하게 갈린 반응을 보인다.


Peace - Ornette Coleman


제목처럼 평화롭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긴장감이 서려 있는 곡이기도 하다.

오넷 콜맨과 돈 체리의 유기적인 호흡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연주로

정해진 코드가 없어도 두 연주자가 서로의 선율에 반응하며

얼마나 조화로운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가 프리재즈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코드(Chord)의 제약'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화성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다.

그는 화성(Harmony), 선율(Melody), 리듬(Rhythm)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연주자가 순간의 직관에 따라 이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철학이 구체화되면서 그는 장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콜맨은 재즈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앨범들을 쏟아낸다.

(1959) 발매한 앨범 < The Shape Of Jazz To Come > 이 그 첫 번째 앨범이다.

피아노(화성 악기)를 제외한 쿼텟 구성으로,

재즈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예견한 명반이다.

이미 앞에서 감상한 [ Lonely Woman ] 같은 명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다음 해인 1960년,

< Free Jazz : A Collective Improvisation >을 발매한다.

8명의 연주자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동시에 즉흥 연주를 펼치는

기상천외하면서도 파격적인 시도를 담았다.

이 앨범 제목 자체가 프리재즈라는 장르의 명칭이 된다.


Free Jazz : A Collective Improvisation

- Ornette Coleman Double Quartet ( Full Album )


오넷 콜맨의 < Free Jazz: A Collective Improvisation >은

사실 일반적인 앨범들처럼 여러 곡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단 하나의 거대한 즉흥 연주로 이루어진 파격적인 작품이다.

LP 시절에는 앞면(Part 1)과 뒷면(Part 2)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중단 없이 이어지는 약 37분간의 집단 즉흥 연주이다.


시작 부분에서부터 8명의 연주자(더블 쿼텟)가

한꺼번에 소리를 내지르며 시작하는 강렬한 서막을 알린다.

기존 재즈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유의 시대가 열림을 선포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연출한다.

초반부의 혼돈 속에서 오넷 콜맨의 색소폰이 중심을 잡으며 솔로를 시작하고

집단 즉흥 연주 속에서도 그가 가진 특유의 멜로디 감각이 빛을 발한다.


이 앨범의 가장 혁신적인 점 중 하나는

두 명의 베이시스트가 동시에 연주한다는 점이다.

한 명은 리듬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그 위에서 자유롭게 선율을 쌓아가는 입체적인 저음을 연주한다.

젊은 시절의 찰리 헤이든과 빌 에반스 트리오의 스캇 라파로이다.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또 다른 프리 재즈의 장인 에릭 돌피의 연주는

이 음악에 그 만이 가진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색채를 더한다.

다른 관악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의 소리가

전체적인 앙상블과 교묘하게 충돌하면서도 함께 녹아있다.


이 앨범은 솔직히 한 번에 끝까지 듣기가 다소 난해하다.

하지만 특정 악기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 보거나,

8명의 연주자가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의 흐름' 그 자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며 상상해 본다면

프리재즈의 진정한 매력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오넷 콜맨은 찰리 파커 이후 재즈계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음악에서 '정답'이라는 것을 없앤다.

연주자가 화성학적 지식보다

자신의 내면 소리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재즈를 예술적 자유의 극한으로 몰고 갔다.


마치 인류가 지구에서 우주 밖으로 나아간 것과 같이

기존 음악의 틀 밖에서 또 다른 열린 대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락, 아방가르드, 클래식 현대 음악에까지 영감을 주었다.


그는 2006년, 75세의 나이에

독일 루드비히스하펜 공연 실황을 담은

마지막 공식 앨범 < Sound Grammer >을 발매한다.

그리고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퓰리처상(음악 부문)을 수상하여 그 공로를 인정받는다.


Jordan - Ornette Coleman

이전 01화어서 와, 재즈는 처음이지? 202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