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OTT 플랫폼에서 보던 SF 시리즈에서
70대의 할아버지와 10대의 손자뻘 아이의 세대차이를 표현한
장면의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다.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헤드폰으로 귀를 덥고 사는 10대 아이.
그것이 마뜩지 않은 할아버지는 어느 날,
" 그래 넌 무슨 음악을 그렇게 듣니?
요즘, 존 콜트레인은 좀 듣고 사니? "
21세기에, 존 콜트레인이라?
고전, 음악, 재즈라는 특정 장르의 지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과 인간의 영적인 체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철학적인 예술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었을까?
그 시절의 음악들은 그랬다.
1960-70년대의 대중문화는
그 안에 시대와 사회의 상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담으려고
고민하고 몸부림치던 시대였다.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은 재즈 역사상
가장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했던 구도자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전통적인 하드밥에서 시작해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는 프리 재즈로 나아가는 과정은
한 예술가의 정신적 해탈 과정으로도 해석하는 이가 많다.
프리 재즈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기 전,
콜트레인은 이미 모던재즈계의 정점에 올라서 있었다.
그는 "Sheets of Sound"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음을 아주 잘게 쪼개어 마치 소리의 벽을 쌓는 듯한
독보적인 속주 기교를 완성했으며
앨범 < Giant Step > (1960)를 통해 복잡한 코드 진행을 완벽하게 정복하여
'더 이상 기존의 화성 체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는 자체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 Kind Of Blue > 앨범 참여를 통해
코드 대신 '선법(Mode)'을 중심으로 한 모달 재즈 연주하면서,
화성의 진행으로부터 벋어 난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즉흥 연주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콜트레인이 본격적으로 프리 재즈의 영역으로 처음 발을 들여놓은 시기는
1960년대 초반(1961~1965년 사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 시기, 존 콜트레인은 기존의 서구 음악이 가진 화성 체계와 구조가
자신의 영적인 갈구와 감정을 표현하기에 너무 좁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인도 음악, 아프리카 리듬 등 비서구적 음악 요소와
동양 철학에 심취하며 '절대적인 자유'를 갈구하기 위한
그만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을 시작한다.
그리고 1965년, 완전한 프리재즈는 아니지만,
프리재즈로 들어서는 문턱으로 성큼 들어선다.
찬송가와 같은 구성을 통해 종교적 황홀경을 표현하려 하였고
정해진 구조 안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식이
프리재즈의 정신과 맞닿을 수 있음을 소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앨범 < A Love Supreme >은 1964년 녹음되어, 1965년에 발매된다.
이 앨범은 존 콜트레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적 전환점'이자,
전통적인 하드밥과 모달 재즈를 넘어
완전한 자유(Free Jazz)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명반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콜트레인은 이 앨범의 녹음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아내인 앨리스 콜트레인에게
"이제야 내가 원하는 음악적 완성에 도달했으며,
신의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냈다"는 취지의 말을 하며
매우 평화로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앨범의 라이너 노트를 통해 직접 이렇게도 고백했다.
"1957년, 신의 은총은,
나의 삶을 풍요로움과 충만함으로 이끄는
영적인 각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신께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음악 안에서 찾게 해달라고 겸허히 기도했습니다.
이 앨범은 신께 드리는 저의 비천한 헌사입니다"
결국 이 앨범은
'인간 콜트레인'이 '구도자 콜트레인'으로 완전히 변화했음을
세상에 알린 기도와도 같은 기록이다.
총 4부작(Acknowledgement, Resolution, Pursuance, Psalm)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음악적 기도문'이다.
특히 마지막 파트인 "Psalm(찬송가)"에서
콜트레인, 자신이 직접 쓴 기도문의 음절과 리듬에 맞춰 색소폰을 연주하는데,
이는 가사 없이 악기로 '말을 하는' 듯한 영적 체험을 선사한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일정한 테마와 모달(선법)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콜트레인의 솔로는
기존의 화성적 질서를 외면한 체 격렬하고 자유롭다.
이러한 '내면의 분출'이 곧 프리 재즈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와 일치한다.
이 앨범의 성공 이후 콜트레인은 더욱 급진적인 실험을 감행하여,
같은 해인 1965년 6월에 완전한 프리 재즈의 선언과도 같은 앨범
< Ascension >을 녹음한다.
1965년 6월 28일 녹음된 이 앨범은
존 콜트레인이 하드밥과 모달 재즈의 세계를 완전히 뒤로하고,
'프리 재즈(Free Jazz)'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갔음을 알리는
일종의 프리재즈 선언문과 같은 작품이다.
기존 쿼텟(4인조) 멤버에
파로아 샌더스, 아치 셰프 등 젊고 급진적인 연주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총 11명의 뮤지션이 이 앨범의 세션에 참여한다.
이들은 정해진 코드나 멜로디 없이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집단 즉흥 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를 이어간다.
약 40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이 곡은
고전적인 재즈의 송 폼(Song Form)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오네트 콜먼의 앨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콜트레인은 이를 훨씬 더 거칠고 영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웠다.
음정이나 박자보다는
소리의 크기, 거친 음색, 악기가 내는 비명과 같은 '질감'
그 자체를 음악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는 당시 재즈 평단과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많은 비평가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재즈가 '감상하는 음악'에서 '체험하는 예술'로 변모했다고 평가한다.
< A Love Supreme >이 신을 향한 정제된 기도였다면,
< Ascension >은 신의 영역에 닿기 위해
자신의 모든 기교와 질서를 불태워버리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