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클래식과 프리재즈
세실 테일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둘 있다.
그중 하나가 벨라 버르토크(Béla Bartók, 1881–1945)이다.
세실 테일러가 뉴잉글랜드 음악원 시절 버르토크의 음악을 접하며,
재즈의 틀을 깨뜨릴 수많은 강력한 무기들을
이 벨라 버르토크의 음악으로부터 장착하게 된다.
벨라 버르토크는 서구 음악사에서
피아노의 타악기적 성격을 가장 집요하게 탐구한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 [ Allegro barbaro ]에서 피아노는 더 이상 멜로디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피아노는 선율을 이어가는 도구이기 전에
굉음으로 리듬을 연주하는 타악기이다.
짧은 동기, 강한 악센트, 반복되는 리듬은 북을 두드리는 행위에 가깝다.
세실 테일러가 전율을 느낀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그는 버르토크가 열어놓은 이 타악기적 피아니즘을
흑인 음악의 뿌리인 다층구조로 이루어진 복잡한 리듬 감각과 결합시킨다.
세실 테일러가 자신의 피아노를
“88개의 튜닝된 드럼”이라 표현한 이유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피아노를 화성 악기가 아니라
리듬 악기의 집합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피아노를 화성이나 선율 악기가 아닌 타악기로 정의한 것이다.
손바닥, 팔꿈치, 주먹을 사용하여 건반을 타격하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 기법은 그의 전매특허였고
그러한 접근법에 대해서는 이미 버르토크로부터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받은 이후였다.
버르토크의 또 다른 핵심은 민속 음악에 있다.
그는 헝가리와 동유럽 전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민속 선율과 리듬을 채집했고,
이를 당시의 현대적 화성과 불협화음 속에 결합시켰다.
가공되지 않아 전통적이면서도 원초적인 거친 리듬이
클래식 음악의 정교한 구조 안으로 옮겨진다.
민속음악은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위한 뿌리이자 토대로 존재했다.
이 지점 역시 세실 테일러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그는 1974년 발매한 앨범 < Silent Tongues >에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원초적 리듬,
필드 홀러(Field Hollers), 신체 리듬, 집단적 비트 감각을
현대 추상 음악의 구조 속으로 끌어들인다.
두 사람 모두 ‘뿌리’로 되돌아가면서 동시에 미래를 설계했다.
과거의 복원을 위함이 아닌 다가 올 미래의 소리를 재구성한 것이다.
버르토크의 음악은 겉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대칭 구조와 수학적 비례를 바탕으로 극도로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감정은 자유롭지만, 구조는 엄격하다.
이 또한, 세실 테일러가 지향하는 음악적 관점이다.
세실 테일러가 자신의 음악을 단순히 ‘자유’가 아니라
‘구조’라고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버르토크에게서
음악적 모티프를 건축적으로 축적하는 방법을 배웠다.
세실 테일러의 즉흥 연주는 무질서한 분출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층층이 쌓아 올려지는 소리의 구조물에 가깝다.
결국 세실 테일러는
버르토크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아프리카적 뿌리를 다시 바라보았고,
그 리듬과 감각을 서구 예술 음악의 가장 높은 추상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음악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리듬, 구조, 그리고 원초성이라는 공통의 좌표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세실 테일러를 이해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이다.
스트라빈스키와의 연관성은
단순히 '현대적이다'라는 수준을 넘어,
음악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방식(구조와 리듬)에서 결을 같이한다.
세실 테일러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시절부터 벨라 버르토크와 더불어
스트라빈스키의 악보를 철저히 분석했으며,
이를 통해 비밥(Bebop)의 좁은 틀을 깨고
'에너지의 건축'을 위한 초석을 설계해 간다.
스트라빈스키는 클래식 음악에서
리듬을 가장 혁명적으로 다룬 작곡가중 하나이다.
< 봄의 제전 >에서 그는 일정한 박자 체계를 무너뜨리고,
예기치 않은 곳에 악센트를 넣어 흐름을 뒤흔들거나 박자 기호를 계속 바꾸는
'불규칙한 리듬의 폭발'을 선보였다.
세실 테일러는 여기서 '스윙(Swing)'이라는 고정된 박자(4/4박자 등)를 벗어날 근거를 찾는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처럼 리듬을 구성하는
음의 길이 하나하나를 독립적인 에너지 단위로 보았고,
이를 통해 '내적인 맥박(Internal Pulse)'에 따라 움직이는 프리 재즈의 펄스를 완성한다.
스트라빈스키는 피아노가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는 악기가 아니라,
매우 건조하고 타격감 있는 타악기로 다루었다.
스트라빈스키의 < 결혼(Les Noces) >은
네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만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여기서 피아노는 완벽하게 '타악기 앙상블'의 일원으로 기능한다.
세실 테일러는 이 곡에서 큰 영감을 얻는다.
피아노가 선율을 연주하는 도구가 아니라,
거대한 에너지를 타격하는 '88개의 튜닝된 드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이 곡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세실 테일러의 음악은 우연 속에서 탄생한 방만한 예술이 아니다.
그의 사고에는 벨라 버르토크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라는
분명한 명분과 계보가 깔려있다
두 현대 음악가는 리듬을 중심으로 서구 음악의 질서를 다시 설계했다.
버르토크에게서 테일러는 피아노를 타악기로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민속 리듬을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는 태도도 여기서 온다.
스트라빈스키에게서는 시간과 리듬을 긴장 상태로 유지하는 법을 익혔다.
규칙적인 박이 사라진 자리에 에너지가 남는다는 발상이다.
세실 테일러는 이 두 흐름을 재즈의 즉흥 연주 안으로 이식했다.
형식은 해체되지만,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독주 공연과 후기 퍼포먼스는 이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연주는 신체 전체를 사용하는 행위가 되었고
급기야, 시와 무용, 의식적 몸짓이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이는 즉흥 연주를 감정의 발산이 아니라,
예술가의 집중된 노동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세실 테일러 이후,
프리 재즈는 더 이상 흐트러진 자유를 뜻하지 않게 된다.
소리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에너지를 어떻게 시간 속에 배치할 것인가.
이 질문들을 수없이 묻고 대답한다.
그는 버르토크와 스트라빈스키로부터 전수되어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들을
다시 다음 세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유럽 현대 음악가들, 자유 즉흥 연주자들,
그리고 재즈의 경계를 넓히려 했던 수많은 연주자들은
그의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다.
세실 테일러는
현대 음악과 재즈 사이에 놓인 가능성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한 연주자이며
프리 재즈는 그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음향적 사유의 방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