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Jazz, Sun Ra. Pt 1

전통 위에 뿌리내린 혁신이어야 진정한 혁신이다.

by XandO

재즈 역사상 가장 기묘하면서도 위대한 거장,

선 라(Sun Ra)는 프리재즈 음악가를 넘어

철학자이자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우주, 토성, 이집트, 신화, 기괴한 의상, 파격적인 퍼포먼스.

이 모든 요소는 선 라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그의 음악적 출발점을 크게 왜곡하는 역할도 해왔다.


선 라는 처음부터 실험가가 아니었다.
그는 전통적인 재즈 어법 위에서 성장한 정통 재즈 음악가이자
블루스와 스윙, 빅밴드 편곡의 구조를 몸으로 익힌 연주자였다.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그의 음악세계를 진지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선 라는 1914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허먼 풀 블라운트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인종차별이 일상적이던 남부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악보 독해력과 기억력으로 알려졌다.
피아노 연주는 물론 작곡과 편곡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앨라배마 주립대학에서 음악 교육을 전공했다.
비록 1년 만에 학교를 떠났지만,
이 시기의 경험은 그의 경력에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선 라는 당시로서 체계적인 음악 이론 교육을 받은 몇 안 되는 재즈 연주자 중 하나였다.
당시 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귀로만 음악을 익힌 것과는 달리
음악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악보로 음악을 분석하며 사고할 줄 아는 음악가였다.


1940년대 중반, 그는 시카고로 이주한다.
이 시기, 선 라의 경력에서 결정적인 경험이 이어진다.
그는 플레처 헨더슨의 밴드에서 피아니스트이자 편곡자로 활동한다.

플레처 헨더슨은 스윙 빅밴드 편곡을 정립한 인물 중 하나이자,

한때 King Of Swing으로 이름을 날린 베니 굿맨 밴드의 편곡자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시기의 경험을 통해, 선 라는 빅밴드 내부에서

섹션 간 역할이 어떻게 분담되고, 보이싱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며,

리듬의 흐름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실제 현장에서 체득했다.

이러한 음악적 언어가 축적되면서

정교한 빅밴드 사운드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는 이 과정 속에서 빅밴드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이 경험은 단순한 경력 한 줄을 넘어 후일 선 라의 아케스트라가 유지한
엄격한 앙상블 운용, 집단 즉흥의 질서, 복잡한 화성 배치의 근간등이
이 시기에 형성된다.


1950년대 중반, 그는 본격적으로 리더 활동을 시작한다.
1956년에 발표된 < Sound Of Joy >는
선 라의 초기 음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음반이다.

이 앨범에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코드 진행,
명확한 헤드 - 솔로 - 헤드 구조, 탄력적인 스윙감이 강하게 존재한다.
여기에는 그가 늘 추구하던 파괴도, 급진성도 없다.
대신 재즈의 언어를 정확히 구사하려는 전통적인 연주가 있다.


Two Tone - Sun Ra


같은 해 발표된 앨범 < Jazz By Sun Ra >에서는 결이 다르지만 방향성은 마찬가지였다.
이 음반은, 이후 < Sun Song >이라는 앨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두 음반은 내용상 동일하다.
제목과 발매 레이블만 다르다.


이 음반은 시카고의 신생 독립 레이블,
Transition Records를 통해 1957년에 발매되었다.

이 레이블이 흥미로운 점은,
Transition Records는 당시 재즈의 과도기에 놓인 음악가들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둔 레이블로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기의 선 라, 세실 테일러, 존 콜트레인의 중요한 초기 화동의 기록을 남겼으나 2년 만에 폐업한다.

그 후, Delmark Records라는 레이블에서 1967년에 < Sun Song >이라는 앨범 제목으로 재발매된다.


Sun Song _ Sun Ra


선 라의 [ Two Tones ]와 [ Sun Song ]을 들어보면
두 곡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그 다름 안에서도 그의 음악적 방향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Two Tones ]는 블루스의 반복 구조를 유지한다.
그러나 화성의 배치는 전통적인 기능화성에서 미묘하게 벗어난다.
즉흥은 자유롭지만 구조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모든 연주는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 Sun Song ]에서는 전자 악기와 다양한 타악기들이 등장한다.
이 점 때문에 종종 이 곡이 급진적인 실험으로만 해석된다.
그러나 리듬과 앙상블 운용은 매우 정교하다.
전자 악기의 사용은 파괴가 아니라 음색의 확장에 가깝다.

이 시기, 선 라는 기존 재즈 어법을 버리지 않았다.
그 위에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던 사운드의 가능성을 얹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

그는 드디어 자신의 밴드 ‘아케스트라(Arkestra)’를 결성한다.

이 팀은 단순히 선 라의 음악을 소리로 구현해 주는 연주 집단이라는 개념을 넘어

음악적 신념을 공유하는 공동체였다.

그들은 함께 생활했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통해 리허설을 진행했다.
악보를 암기했고
개인의 즉흥보다 앙상블의 질서를 우선시했다.

음악적으로 아케스트라는
당시 재즈 씬에서 가장 규율이 강한 빅밴드 중 하나였다.


1959년에 발표된 < Jazz In Silhouette >는
이러한 아케스트라의 성과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음반이다.
이 앨범은 평단의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선 라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Enlightenment - Sun Ra


이 음반에 수록된 [ Enlightenment ]는
선 라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점이다.
작곡은 트럼펫 연주자 호바트 닷슨이 맡았지만,
편곡과 해석은 아케스트라의 집단 작업이었다.

이 곡은 블루스에 기반한 진행, 워킹 베이스,
그리고 정통적인 스윙감으로 연주된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후반부로 갈수록 풍성해지는 브라스 섹션의 화음은

청각적으로 '빛이 번지는 듯한' 시각적인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개별 솔로보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음향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는, 후기 선 라 음악에서 보이는 중요한 개념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연주자의 기교보다 앙상블의 전체의 흐름과 진동에 집중하는 편곡 방식이다

이 시점에서 선 라의 우주 서사는

과장된 콘셉트이나 무작정 전통을 부정한 결과가 아니다.

그는 재즈의 구조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그 구조를 변형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아케스트라는 콘셉트만을 과장하는 밴드가 아니다.
어설픈 음악적 훈련으로 만들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기 집단도 아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재즈 어법 위에 반듯하게 세워져,
극도로 완벽하게 단련된 정교한 빅밴드였다.

이 사실을 인식할 때에만

이후의 급진적으로 변한 선 라의 음악 세계가
비로소 설득력을 갖게 된다.


<Enlightenment>는 선 라의 음악 중

가장 '아름답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곡이다.

복잡한 실험 음악에 지친 귀를 정화해 주면서도,

그가 꿈꿨던 우주의 평화로운 질서를 가장 조화로운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