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퓨처리즘
선 라(Sun Ra)가 자신의 밴드에 붙인 이름인 '아케스트라(Arkestra)'는
그의 우주적 철학과 고대 신화가 결합된 아주 정교한 언어유희이다.
이 단어는 크게 세 가지 의미의 중의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핵심적인 어원은 '방주(Ark)'이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Noah's Ark)'처럼,
선 라는 자신의 음악과 밴드가 혼돈에 빠진 지구를 구원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배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아케스트라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이들을 태우고
우주를 항해하는 영적인 우주함선을 상징한다.
또, 단어의 끝에 붙은 'Ra'는 이집트 태양신 '라(Ra)'를 상징한다.
선 라(Sun Ra)라는 이름 자체가 태양신에서 온 만큼,
자신의 밴드 이름에도 이집트의 신비주의를 심어 넣은 것이다.
이는 흑인의 뿌리를 고대 이집트 문명과 우주로 연결하는
아프로퓨처리즘의 핵심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선 라는 자신의 밴드가 기존의 서구적이고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라는 단어가 가지는 선입견 안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단어의 철자를 자신만의 방식(Ark + Astra + Orchestra 등)으로 비틂으로써,
기존의 구태의연한 음악이 가진 여러 선입견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차원의 음악적 개념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선 라는 이러한 이름을 가진 밴드의 리더로서
미국 사회에서 살아온 흑인의 고통스러운 역사(과거)를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먼 미래의 우주 과학(미래)과 연결했다.
이것이 바로 아프로퓨처리즘의 시작이었다.
"지구 사람들은 '가능한 것'들만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이제는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할 때다."
이 말은 그가 왜 그토록 난해하고 전위적인 음악에 집착했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다.
선 라(Sun Ra)의 [ Outer Nothingness ]는 그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아프로퓨처리즘의 미학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앨범 < The Heliocentric Worlds of Sun Ra, Vol. 1 >(1965)에 수록되어 있는데
선 라와 아케스트라가 시카고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실험적 성향의 레이블 ESP-Disk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이 앨범은 기존의 빅밴드 스윙이나 하드밥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프리 재즈의 즉흥성과 20세기 현대음악의 음향적 사고가 결합된 문제작이다.
편성 또한 전통적인 빅밴드나 오케스트라와는 거리가 멀다.
선 라가 직접 연주하는
베이스 마림바와 팀파니의 불규칙한 타격은
이 음악의 중심을 이룬다.
이 타악기들은 리듬을 제시하기보다
불안정한 울림과 소음으로 추상적인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그 외의 타악기들은 마치 중력이 사라진 공간에서
파편들이 충돌하는 듯한 혼란을 표현한다.
베이스 클라리넷과 베이스 트롬본은
저음역대에서 깊은 어둠 속의 허무와 불안한 공간을 점유한다.
위협적이면서도 공허한 소리이다.
여기에 피콜로, 알토, 테너 색소폰이 더해진다.
이 악기들은 비명에 가까운 고음을 만들어내며
저음 악기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집단적 웅성거림과 비명에 가까운 소음이
저음 악기들이 만들어 낸 공간 속을 불규칙한 반복으로 떠돈다.
이 소리는 고대 이집트의 의례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의 교신처럼 들리기도 한다.
[ Outer Nothingness ]는
선 라가 음악을 통해 구축한 우주관이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드러난 작품 중 하나다.
형식, 음향, 공간까지 모두가 그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 Outer Nothingness ]는 약 7분 40초 동안 이어진다.
제목 그대로
‘지구 외부의 허무’, ‘끝없는 우주의 공백’을 음향으로 묘사한다.
선 라(Sun Ra)의 앨범 < Space Is the Place >는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예술 운동 중 하나인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의 성전과도 같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와 함께 기획되었으며,
선 라가 평생 추구했던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자"는 철학적 메시지가
그중, 대중적이면서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가장 명확하게 전달된 명반이다.
이 작품은, 이전 시기의 급진적인 프리 재즈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전보다는 꽤 대중 친화적이다.
반복적인 합창,
명확한 리듬 패턴을 전면에 내세운다.
선 라의 그전 음악들에 비해 청취 접근성이 눈에 띄게 높아진 작품이다.
타이틀 곡 [ Space Is the Place ]는 약 21분에 이르는 대곡이지만
단순한 가사와 반복 구조가 중심을 이룬다.
“Space is the place”라는 문장은
곡 전체를 통해 종교적 주문처럼 수없이 되풀이된다.
보컬은
아케스트라의 핵심 멤버였던 준 타이슨(June Tyson)이 맡는다.
그의 목소리는 집단적 합창과 독창을 오가며 곡의 중심을 이끈다.
아프리카 전통적 발성과 전자 악기의 음색이 수없이 겹친다.
중반부에는 격렬한 색소폰 즉흥 연주와
신디사이저의 거친 노이즈가 등장한다.
불안정하고 변칙적인 소리들 아래
의도적으로 고정된 베이스 리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변하지 않는 우주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상징하려는 의도이다.
이 시기 선 라는 지구를 흑인들에게 적대적인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는 “우주가 곧 그 장소”,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는 이상을 실현시켜 줄 " 그곳 "으로 규정했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기존 역사와 문명 질서 바깥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정치적 은유였다.
앨범 커버와 무대 퍼포먼스에서 등장하는
이집트풍 의상과 금색 장식은 고대 아프리카 문명을 상징한다.
여기에 더해진 무그(Moog) 신디사이저의 전자음은
미래 기술과 우주 과학을 암시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호출하는 시각적, 청각적 장치이다.
선 라는 재즈 뮤지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무그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을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자 ‘우주의 언어’로 인식했다.
이 앨범은 1974년 개봉한 영화 < Space Is the Place >와 함께 기획되어
선 라의 음악적 철학을 시각적, 서사적으로 구현한 아프로퓨처리즘의 정점을 보여준다.
선 라(Sun Ra)는 수년간의 우주여행 끝에
음악을 연료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도착한다.
그의 목적은 지구에서 고통받는 흑인들을 정착시킬 새로운 행성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는 흑인의 영혼을 두고 내기를 거는
악마적인 포주 '오버시어(The Overseer)'와
선 라의 우주 기술을 가로채려는 NASA/FBI의 방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 라는 오버시어 와 운명을 건 카드 게임을 벌이며,
동시에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려 노력하다가,
결국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고,
선 라를 믿고 우주선에 올라탄 이들만이 새로운 구원의 장소인 우주로 떠나게 된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내용이지만
이는 당시 흑인 해방 운동을 억압하던
미국의 국가 권력에 대한 풍자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