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Jazz가 우리에게 남긴것

틀에 갇히지 않은 나만의 진실을 향하여

by XandO

프리재즈는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기존 재즈의 화성적·리듬적 틀을 깨부수며 등장한 혁명이다.


1950년대 말,

상업화된 재즈의 정형화와 클리쉐에서 벋어나고자 출발한

재즈는 모던재즈라는 또 다른 형식의 복잡한 화성적 체계 안에 갇혀 버린다.

이때 등장한 프리재즈는 들리는 것과는 달리

'멋대로 연주하는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구 음악 체계가 강요한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인간 본연의 목소리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오넷 콜맨은 프리재즈의 설계자였다.

그는 1959년 < The Shape of Jazz to Come >을 통해

코드 진행이라는 '지도' 없이도

멜로디의 직관만으로 훌륭한 항해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의 음악은 거칠지만 인간의 울음소리와 닮아 있었으며,

이는 곧 제도권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도

음악적 창작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반면 존 콜트레인은 프리재즈에 '성스러움'을 입혔다.

하드밥의 정점에서 출발한 그는 말년에 이르러 모든 규칙을 내려놓고

소리의 거대한 파도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그에게 프리재즈는 단순한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신에게 닿기 위한 처절한 구도자의 기도였다.

그의 음악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에너지는

청중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동시에 선사하며

프리재즈를 영적인 체험의 영역으로 인도했다.


세실 테일러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정의를 다시 썼다.

그는 건반을 두드리는 타악기로 보았고,

고도의 지적 설계를 바탕으로 음의 파편들을 쏟아냈다.

테일러의 음악은 가장 현대적인 클래식 음악과

가장 원초적인 아프리카의 리듬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적 고집으로

프리재즈가 지닌 지적 깊이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선 라는 이 모든 논의를 '우주'로 확장했다.

그는 스스로를 외계 존재로 규정하며,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미래의 테크놀로지를 결합했다.

선 라의 '아케스트라(Arkestra)'는 프리재즈가 개인의 즉흥연주를 넘어,

공동체가 함께 꿈꾸는 유토피아적 서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자유는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난 우주적 해방이었다.


이들 네 명의 거장은 프리재즈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제각기 다른 자유로운 방식이었다.

콜맨은 직관을,

콜트레인은 영혼을,

테일러는 지성을,

선 라는 상상력을 도구로 삼았다.

이들이 '불협화음의 미학'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 준 것은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용기'였다.


이들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형화된 삶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뜨겁고 자유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Machine Gun - Peter Brotz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