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재즈의 혁명가
사건은 1987년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주최한
백악관 만찬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 음악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빈 자격으로 초대받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백인 상류층 인사들 중 일부는
마일스가 누구인지, 그가 음악계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찬 도중,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백인 여성(당시 어떤 정치인의 부인으로 알려짐)이
마일스에게 다소 무례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보세요, 당신은 대체 무엇을 했길래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은 거죠?"
평소 인종차별에 민감했고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던 마일스는
특유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맞받아쳤다.
"글쎄요,
나는 음악의 역사를 너댓 번 정도 바꿨습니다.
그쪽은 피부색이 하얗게 태어난 것 말고
이 세상에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
마일스가 음악사에 남긴 족적은 현대 재즈의 역사 그 자체이다.
쿨 재즈, 하드 밥, 모달 재즈, 퓨전 재즈를 거치며
실제로 그는, 재즈의 패러다임을 최소 5번 이상은 뒤엎은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단순한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음악의 새로운 문법을 창조하는 '혁명가'로 정의했기 때문에
그런 당당한 답변이 가능했던 것이다.
마일스는 이후 자신의 자서전에서도 위 사건을 언급하며,
당시 백인들의 무지와 편견에 대해 전혀 기죽지 않았음을 회고한다.
이 일화 외에도 마일스는 인종차별에 대항해 경찰과 맞서 싸우거나,
앨범 커버에 흑인 여성 모델을 고집하는 등
사회적 혁신가로서의 면모도 강한 인물이었다.
전설적인 찰리 파커의 밴드에서 트럼펫 주자로 활동하며 재즈의 중심부로 들어선다.
당시 유행하던, 현란하고 극단적으로 빠르면서 복잡한 음악(비밥)들 사이에서,
마일스는 본인만의 절제된 음 선택과 여백의 미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뜨겁고 거친 비밥과는 다른 성향의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앨범 < Birth Of The Cool >을 통해
재즈에 클래식적 편곡과 정제된 분위기를 도입한 '쿨 재즈' 시대를 연다.
그 후, 그는 다시 흑인 음악 특유의 블루지함과 리듬감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 자신과
색소폰에 죤 콜트레인, 피아노에 레드 갈란드, 베이스에 폴 챔버스
그리고 드럼에 필리 조 존스라는 당대 최고의 라인업으로
마일스의 The First Great Quintet을 결성하여
1957년에서 1959년까지 활동한다.
이 시기 그들이 내놓은 단 이틀간의 마라톤 녹음세션을 통해 남긴 명반이
프리스티지 4부작 마라톤 세션으로 알려진 " - Ing 4부작"이다.
< Cookin' > < Relaxin' > < Workin' > < Steamin'>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를 통해
마일스의 1차 위대한 퀸텟은 하드 밥 사운드의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꼽히는
< Kind Of Blue >를 통해 다시 한번 더, 재즈의 혁명을 이룩한다.
비밥과 하드밥등을 통해 복잡해 질대로 복잡해진 코드 진행 대신
'모드(선법)'라는 단순한 구조를 도입해
연주자에게 무한한 즉흥 연주의 자유를 부여한다.
이는 현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새로운 음악적 혁신이었다.
이 앨범 <Kind of Blue> (1959) 녹음 세션을 마친 뒤에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는
이 앨범을 '일본의 수묵화(Suibokuga)'에 비유했다.
"일본에는 수묵화라는 예술이 있는데,
얇은 종이에 단번에 그려내야 하며 수정이 불가능하다.
지우거나 덧칠하면 종이가 상해버리기 때문이다."
에반스는 이 앨범의 녹음이 바로 이 수묵화와 같았다고 설명했다.
즉, 한 번의 호흡으로 완성되는 찰나의 예술임을 강조한 것이다.
에반스는 녹음 당일의 당혹스럽고도 마법 같은 상황을 자주 회상했다.
마일스는 녹음실에 도착할 때까지 멤버들에게
어떤 곡을 연주할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에반스에 따르면,
마일스는 스튜디오에서 아주 간단한 스케치 정도의 코드 진행이나
선법(Mode)이 적힌 종이 조각 정도만 건네주었다고 한다.
멤버들은 리허설도 거의 없이 바로 녹음에 들어갔는데,
에반스는 이를 두고
"완벽한 백지상태에서 서로의 소리에만 집중해야 했던
극한의 긴장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빌 에반스는 이 세션에서 단순히 연주만 한 것이 아니라
음악적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Blue in Green ]과 [ Flamenco Sketches ]는
빌 에반스의 서정적이고 인상주의적인 화성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곡인데,
훗날 에반스는 [ Blue in Green ]의 작곡 지분에 대해
마일스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마일스가 에반스에게 수표 한 장을 건네며
"이게 네 몫이다"라고 하며,
작품애 대한 저작권을 쿨하게(혹은 냉정하게) 정리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가 빌 에반스에게 건넨 그 유명한 수표 한 장의 금액은
단돈 25달러($25)였다고 한다.
앨범 < Kind of Blue >가 발매된 후,
수록곡인 [ Blue in Green ]의 작곡가 크레딧에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름만 올라가 있었다.
사실 이 곡은 빌 에반스가 화성과 멜로디의 핵심을 만든 곡이었기에,
빌 에반스는 마일스에게 자신의 권리(작곡 지분)를 정중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일스는 특유의 거침없는 성격으로 대응했고
그는 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에반스에게 건네며
"자, 여기 25달러 있네. 이제 됐지?"
당시에도 25달러는 곡의 저작권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현재로 따진다면 30-40만 원 정도인데
이는 마일스가
"이 밴드의 리더는 나고, 모든 아이디어의 최종 결정권자도 나다."
라는 점을 분명히 한 권위적인 행동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결국 빌 에반스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마일스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하지만 훗날 자신의 개인 앨범에서 이 곡을 다시 녹음할 때는
본인의 이름을 작곡가로 명시하며 명예를 회복하려 했다.
세월이 흐른 뒤, 재즈계와 평단은 [ Blue in Green ]이
빌 에반스의 인상주의적 화법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며
현재 많은 음원 사이트나 악보집에는
마일스와 에반스가 공동 작곡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