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 Davis, Pt 2

Time, No Change!

by XandO

1960년대 말,

비틀스와 지미 헨드릭스로 대변되는 '록 음악'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전통적인 어쿠스틱 악기에 머물렀던 재즈 뮤지션들은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갈증 그리고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그 당시 대중화 되던 전자 악기와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재즈에 적극 수용하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늘 마일스였다.

당시 록음악이 창궐하던 시대를 향해 마일스는 이야기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한 번 공연에 5만 달러를 버는데,

왜 나는 1만 달러밖에 못 받는가?"라며


1969년 < In a Silent Way >와 1970년 < Bitches Brew >라는

기념비적인 앨범을 통해 퓨전 재즈 시대를 활짝 열어 제킨 것이다.


Bitches Brew - 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 Bitches Brew >는

앨범 명칭부터 녹음 과정까지

재즈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상징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렬한 인상을 너머 불쾌감까지 줄 수 있는 단어인 " Bitches "는

당시 마일스의 주변에 있던 재능 있고 영향력 있는 여성들을 지칭한다.

특히 마일스의 아내였던 베티 데이비스(Betty Davis)는

마일스에게 지미 헨드릭스와 슬라이 스톤의 음악을 소개해 주며

그가 록과 펑크 사운드에 눈을 뜨게 한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 Brew "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끓이거나 혼합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재즈에 일렉트릭 사운드, 록 리듬, 아프리카의 비트 등을

한데 섞어 이전에 없던 기괴하고 강력한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에서

'독한 혼합주' 혹은 '마녀의 가마솥' 같은 뉘앙스로 쓰였다는 해석이 정설이다.


이 앨범의 제작 과정은

코달음악에서 모달음악으로의 혁명인 앨범 < Kind Of Blue > 보다 더,

당시의 재즈 녹음 관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파격적이었다.

마일스는 이번에도 역시 뮤지션들에게 악보를 거의 주지 않거나,

아주 단편적인 스케치만 보여준 채 바로 녹음에 들어갔다.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극도로 집중하며

즉흥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실제 녹음된 테이프는 엄청난 분량이었고,

이를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가 가위로 자르고 이어 붙이는 '에디팅'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곡의 형태로 완성되었는데,

실제 비틀스의 조지 마틴이 [ Strawberry Fields Forever ]에서 시도했던

[ tape Splicing ] 기법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이는 오늘날의 샘플링이나 루프 개념을 앞서간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당시, 녹음실에는 두 명의 베이시스트,

두 명의 드러머, 두세 명의 건반 연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며

소리의 층을 쌓아 올렸다.

연주자들조차 자신이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일스의 손짓 하나에 따라 음악이 변하고 있었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 "이것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비판과

"재즈의 구원"이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또 하나의 앨범이 되었고

퓨전 재즈라는 장르를 세상에 뿌리내리게 한다.


Pharaoh's Dance - 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를 거쳐 간 연주자들은
훗날 각자의 방식으로 1970년대 퓨전 재즈의 개척자들로 활약한다.
그중에서도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가 이끈 웨더 리포트는
마일스 이후 퓨전 재즈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조 자비눌은 마일스의 전기 시기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키보디스트였고,
웨인 쇼터 역시 마일스의 제2차 위대한 퀸텟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와 구조 감각을 동시에 체득한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이 결성한 웨더 리포트는
밴드 초기부터 즉흥성과 구성의 균형을 중요하게 다뤘다.
여기에 천재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합류하면서
밴드의 사운드는 이전의 재즈 밴드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도약한다.


이들의 음악은 재즈가 현대적인 교향 음악처럼 들릴 수 있음을
구체적인 사운드로 보여준 예인데,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No one solos, everyone solos”이다.
전통적인 재즈에서 솔로와 반주의 구분이 분명했다면,
웨더 리포트의 사운드에서는 그 경계가 거의 사라진다.
각 연주자는 동시에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누군가가 앞에 나서면, 다른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공간을 만들어 간다.

이 방식은 프리재즈의 집단 즉흥 개념과 닮아 있지만,
훨씬 정제된 구조 안에서 서로의 소리에 반응한다.

조 자비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그는 신시사이저를 효과음 수준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음색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밴드의 표현 도구로 다뤘다.
사람의 목소리, 민속 악기, 자연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획기적인 음색을 신시사이저라는 장치를 통해 직접 설계해 냈고, 그는 독특한 그 사운드에서
전자 악기 특유의 차가움은 지웠다.
그 결과 웨더 리포트의 음악에는
이국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여기에,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합류는 이 밴드의 상징성을 결정짓는다.
그는 베이스를 리듬 악기라는 차원에 가두지 않고
멜로디와 화성을 동시에 책임지는 중심 악기로 끌어올렸다.
프렛리스 베이스 특유의 흐르는 듯 연결되는 음정과
노래하는 듯한 베이스 라인은
웨더 리포트 사운드의 또 다른 핵심 요소가 된다.
기교적인 연주를 넘어,
베이스가 음악의 서사를 이끌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이다.

이 모든 실험은 앨범 < Heavy Weather >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중에서도 [ Birdland ]는 이 앨범애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곡이다.
명확한 멜로디, 간결한 구조, 세련된 편곡을 갖춘 이 곡은
퓨전 재즈가 대중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고
즉흥성과 도전적인 사운드의 실험이라는 재즈의 핵심도 포기하지 않았다.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적 호응이
같은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음을 사운드로 증명한 사례이다.

웨더 리포트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던졌던 질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 중 하나였다.
자유는 유지하되, 구조를 잃지 않는다.
실험은 계속하되, 대중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 균형 위에서 웨더 리포트의 음악은
퓨전재즈가 더욱더 넓은 스펙트럼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Birdland - Weather Report


그 외에도, 칙 코리아가 주축이 되어 이끌던

리턴 투 포에버 (Return to Forever)는

특유의 라틴 음악과 스페인풍의 화려한 테크닉을 결합하여

월드뮤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Spain - Chick Corea & Return To Forever


존 맥러플린(기타)이 결성한 밴드인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Mahavishnu Orchestra)는

록과 클래식적인 요소에 인도의 음악과 초고속 속주, 변박을 사용하여

가장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였으며


허비 행콕(건반)은 헤드 헌터즈 ( Headhunters )를 이끌었으며,

재즈에 펑크(Funk)와 소울 리듬을 강력하게 결합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Chameleon - Herbie Hancock


프리재즈와 퓨전 재즈는 겉으로 보면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장르처럼 보인다.
하나는 규칙의 무참한 해체를 갈망했고,

다른 하나는 록과 전자악기를 통해 대중성 속으로 파고 들려하였다.
하지만 두 흐름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기존 재즈가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1960년대 초반,

프리재즈가 등장했을 때 마일스 데이비스의 반응은 분명했다.
특히, 그는 오넷 콜맨을 중심으로 한 프리재즈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오넷 콜맨이 기존의 화성 진행을 무시하고,

전통적 기법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감각에만 의존하여 연주하는 태도를 가장 크게 문제 삼았다.
재즈가 축적해 온 전통적 언어를 무시하는 방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마일스에게 재즈는 자유 이전에 구조였고,

감정 이전에 언어여야 했다.

하지만 마일스는 프리재즈를 머리와 입으로는 거부했지만

귀와 심장은 외면하지 못한다.
그는 프리재즈가 지닌 자유로운 에너지와

감각적인 긴장감을 정확히 듣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

그의 제2차 위대한 퀸텟에서 나타난 변화가 이를

두장의 앨범을 통해 사운드로 구체화하여 우리에게 들려준다.

박자는 유지되지만 코드 진행은 극단적으로 단화화 시킨다.
솔로와 반주의 경계가 흐트러졌고,

즉흥 연주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렀다.
이 시기의 음악이 ‘Time, No Changes’로 불리는 이유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남긴 명언 "Time, No Change"는

퓨전 재즈 시대를 넘어 현대 음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철학적인 문장이기도 하다.

이 짧은 문구 안에는 재즈의 구조적 혁명이 담겨 있다.

전통적인 재즈(비밥, 하드밥 등)는

복잡한 코드 진행(Chord Changes)을 따라 즉흥 연주를 하는 방식이었다.

연주자는 정해진 마디마다 변하는 코드의 문법을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마일스는 여기서 '코드 변화(Changes)'를 없애버렸다.

복잡한 화성 대신,

하나의 코드나 단순한 베이스 라인(Ostinato)의 끝없는 반복 위에

자유롭고 무한한 즉흥연주의 세상을 꿈꾼 것이다.

화성의 감옥에서 벗어난 모든 연주자가

훨씬 더 자유롭고 본능적인 멜로디를 창조할 수 있는 세상.


화성의 변화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강력하고 일정한 '리듬(Time)'이었다.

타악기의 활용이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타임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

곡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는 '강력한 비트와 그루브'를 의미한다.

화성이 변하지 않더라도 리듬이 살아있다면

음악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원리이다.

이는 훗날 힙합, 테크노, 펑크(Funk) 음악의 핵심 원리와도 이어진다.


마일스는 연주자들이

"다음 코드가 뭐지?"라고 생각하며 코드진해을 미리 예측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코드는 바뀌지 않으니(No Change),

오직 지금 흐르는 리듬(Time) 위에서

네가 느끼는 소리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이다.

마일스는 앨범 < Bitches Brew > 녹음 당시

연주자들에게 악보를 거의 주지 않고

"Don't play what's there, play what's NOT there

(거기에 있는 걸 치지 말고, 없는 걸 쳐라)" 같은

선문답 같은 지시를 내리며 이 철학을 강요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