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의 융합
그렇다면, Rock'n Roll은
흑인음악의 일까요?
백인 음악일까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는
백인들은 헤비메탈, 컨트리, 클래식, 스탠더드 팝에 우세하고
흑인들은 힙합, R&B, Soul, 블루스, 재즈에 더 우세할 거라는
암묵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백인 래퍼인 에미넴에 열광하고
검은 악녀라 불리는 흑인 디바 Kathleen Battle의 아리아에 극찬을 보내며
급기야,
2025년, 67회 그래미어워드의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은
흑인 디바 비욘세가 거머쥐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흑인의 음악과 백인의 음악이 나뉘는 시대가 아니고
자연스러운 융합으로 더 발전된 음악들을 추구하는 시도가
이미 Rock'n Roll 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이클 잭슨은 앨범 제작 시,
항상 그 시대 최고의 인기 Rock Guitarist들과 작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타고난 흑인의 감성에 백인의 거칠고 강렬한 Rock 에너지가 합쳐지면
얼마나 엄청난 사운드가 나올지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가만히 뒤돌아보면
흑인과 백인의 감성이 적절히 섞여 유기적으로 한 작품 / 한 장르가 되었을 때
그전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남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노예 출신의 감성과
유럽 백인들의 악기와 음악이 섞여 탄생한 재즈가 그랬고
흑인들 특유의 통속적이며 감각적인 소울이
정교한 백인의 스탠더드 팝과 만난 모타운 스타일이 그랬으며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 스타일이 만난 로큰롤이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초기의 로큰롤 시장은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보 디들리, 제리 리 루이스, 빌 헤일리, 버디 홀리 등
흑인과 백인들이, 각각의 독자적인 사운드로 시장을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Elvis는 당시 시장이 요구하던 가장 완벽한 스타였습니다.
백인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흑인의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의 외모를 가진 스타!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엘비스는
홀어머니와 흑인 노동자들이 많은 멤피스에 거주하며
흑인들의 교회문화와 흑인 지역사회 안에서
그의 음악적 감성을 성장시키며 자랐습니다.
당시, 시대적으로 백인의 외모에 흑인의 감성을 가진 가수를 찾던
선레코드의 샘 필립스를 만난 엘비스의 성공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Rock'n Roll 황제의 탄생!
그의 명성은 팝계에서 이런저런 기록을 언급하는 것이 구차할 정도로
팝 역사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일례로 그의 생전 거주하던 그레이스 랜드는
미국 내 모든 대중음악 관련 관광지중, 압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로큰롤의 성지라는 것이 그의 생전 명성을 말해줍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들이라면 당연히 그의 엄청난 가창력과
천재적인 음악적 상상력에 대하여 모르실리 없지만,
일반 팬들은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무대 매너를 앞세워
한때 반짝 인기 있었던 팝 가수로 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그가 군복무로 활동을 멈추었고
척베리, 제리 리 루이스 등이 지저분한 사건에 연루되어 무대를 떠나야 했으며
리틀 리차트는 목사 안수를 받으며 로큰롤 대신에 종교를 선택했습니다.
급기야, 시대의 로큰롤 영웅, 버디 홀리는 리치 발렌스, 빅 바퍼와 함께
비행기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어
미국의 Rock'n Roll 시장은 침체기로 접어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