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Jazz, John McLaughlin 1

퓨전재즈와 월드뮤직의 시작

by XandO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은 마일스 밴드 출신으로

재즈와 록, 인도 음악의 경계를 허문 혁명적인 기타리스트이자,

퓨전 재즈의 기틀을 닦은 또 다른 거장 중 한 명이다.


1942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난 존 맥러플린은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했으며,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고

초기에는 블루스와 플라멩코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1960년대 런던에서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 등과 협연했고

당시 그는 이미 비밥(Bebop)의 복잡한 화성과

폭발적인 록의 에너지를 결합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었다.

존 맥러플린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은 1969년 미국 진출이었다.

토니 윌리엄스(드럼)의 초대로 미국에 온 그는

뉴욕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마일스 데이비스의 녹음실에 불려 갔는데

그의 연주를 들은 마일스는 즉석에서 그를 고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마일스의 역사적인 앨범인

< In a Silent Way >와 < Bitches Brew >의 사운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마일스는 맥러플린의 거칠면서도 정교한 연주를 사랑했으며,

심지어 앨범 수록곡 제목을 그의 이름을 딴 [ John McLaughlin ]으로 짓기도 한다.

마일스 밴드에서의 활동은 존 맥러플린에게

'전기 악기를 통한 즉흥 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John Mclaughlin - Miles Davis


“이제 네 밴드를 시작할 때가 됐다”라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권유는

존 맥러플린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마일스의 이 권유 이후,

존 맥러플린은 자신의 첫 밴드를 구상한다.
그 결과가 1971년 결성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이다.

존 맥러플린은 당시 인도의 명상가이자 시인, 예술가였던

스리 친모이(Sri Chinmoy, 1931–2007)의 영적인 제자였다.
‘마하비슈누’라는 이름 역시 스리 친모이가 그에게 부여한 영적 법명이다.
‘위대한 비슈누’라는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맥러플린이 그 후까지도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향을 상징한다.

1970년대 초, 존 맥러플린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활동하며

음악적 성취의 정점에 있었지만,
약물과 방탕이 일상화된 음악계 분위기에는 점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정신적인 균형과 내적 질서를 찾기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스리 친모이를 만난다.
스리 친모이는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명상, 스포츠, 예술을 통해 평화를 실천하던 인물이었다.

존 맥러플린의 생활은 크게 바뀐다.
술과 담배, 육식을 끊고, 매일 새벽 명상을 수행했다.
이러한 절제는 단순한 생활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연주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인 집중력과 에너지는

그 이후에도 이 시기와 분명히 연결된다.

스리 친모이는 음악을 하나의 수행으로 보았다.
“음악은 명상의 한 형태이며, 신에게 다가가는 통로”라는 가르침은

존 맥러플린의 음악적 세계관에 깊이 스며든다.
그의 초고속 속주는 기교 과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자아를 밀어내고 몰입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사유와 명상에 가깝다.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의 작품들 역시 이러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 The Inner Mounting Flame >, < Birds of Fire > 같은 앨범 제목은
내면의 각성, 정신적 에너지, 초월적 상태를 암시한다.


Birds Of Fire - Mahavishunu Orchestra


한편, 존 맥러플린은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를 스리 친모이에게 소개했고,

산타나는 ‘데바딥’이라는 영적 이름을 받는다.
두 사람은 1973년 < Love Devotion Surrender >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존 콜트레인의 후기 작품에 담긴 영적 지향을

기타 중심의 언어로 풀어낸 시도로 평가된다.

존 맥러플린은 약 5년간 스리 친모이의 제자로 활동한 뒤 공동체를 떠난다.
가르침이 점차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약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시기를 부정하지 않았다.
명상을 통한 정신적 수련이

자신의 음악과 연주 태도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는 점을

여러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 왔다.

존 맥러플린의 음악 전반을 떠 받치고 있는 구도자적 세계관은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는 그의 영적인 명상으로 인한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첫 집단적 사운드의 실험이었다.

초기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의 멤버 구성은

이 밴드의 사운드를 결정지은 핵심 요소였는데,
빌리 코브햄의 드러밍은 폭발적인 파워와 정교한 기교를 동시에 갖췄고,
릭 레어드의 베이스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리듬의 중심을 단단히 붙들었다.
얀 해머는 기타와 대등한 존재감을 지닌 신시사이저로 전면에 나섰고,
제리 굿맨의 바이올린은

클래식적 정확성과 록의 공격성을 결합해 독특한 색채를 더했다.

또한 그러한 연주자들의 사운드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이들은 인도 음악에서 비롯된 복잡한 홀수 박자, 록의 강렬한 디스토션,
그리고 재즈 특유의 고난도 즉흥 연주를 한 테두리 안에 묶었다.
그 결과는 당시 어떤 범주로도 묶기 어려운 독특한 사운드였다.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흔히 재즈-록 퓨전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음악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다국적 문화가 융합된 음악적 언어였다.
이 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이후 ‘월드 뮤직’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기 이전,
그 가능성을 음악적으로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 후, 70년대 중반, 어쿠스틱 기타와 인도 전통 악기(타블라 등)로 구성된

'Shakti'를 결성하여 동서양 음악 융합의 정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Joy - Shakti


존 맥러플린의 행보 중 8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중에서

' The Guitar Trio'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존 맥러플린, 알 디 메올라, 그리고 파코 드 루시아가 결성한 'The Guitar Trio'는

1979년에 존 맥러플린, 파코 드 루시아,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로 시작했으나,

1980년 초 래리 코리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면서

알 디 메올라가 합류했고, 이 라인업이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전설의 트리오'이다.


재즈의 즉흥 연주, 플라멩코의 강렬한 리듬, 클래식의 정교함이 결합되어

세 명 모두 각기 다른 스타일의 피킹(Picking) 기술을 가졌음에도

극한의 기교와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보통 알 디 메올라는 오베이션(Ovation) 스틸 스트링,

존 맥러플린은 나일론 스트링(피크 사용),

파코 드 루시아는 전통적인 플라멩코 기타를 사용하여

각 채널별로 확연히 다른 음색의 재미를 준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때 아래 세장의 앨범이 대표적인데,

<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 (1981)에서는

이들의 정점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어쿠스틱 기타 라이브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기타에 불이 붙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치열한 솔로 대결과 협연이 압권이며

전작의 성공을 이어 발표한

< Passion, Grace and Fire > (1983)은 스튜디오 앨범으로,

라이브의 열광적인 분위기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치밀하게 짜인 구성미를 보여준다.

그 후 13년 만에 발표되어 다시 화제를 모았던

< The Guitar Trio > (1996)에서는

세 거장이 한층 성숙해진 조화를 보여주며 다시 한번 찬사를 이끌어 낸다.


Mediterranean Sundance / Rio Ancho - The Guitar T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