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재즈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1969년과 1970년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 인생에서 급격한 방향 전환이 일어난 시기였다.
앨범 < In A Silent Way >와 < Bitches Brew >는
그가 만들어 낸 음악적 전환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다.
이 두 앨범에서 칙 코리아는 단순한 세션 연주자를 넘어,
마일스의 사고방식이 실제 사운드로 구현되는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칙 코리아는 1968년 가을, 허비 행콕의 뒤를 이어 마일스 밴드에 합류했다.
당시 그는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이 높았고,
전자 악기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마일스는 그에게 펜더 로즈를 건네며 선택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았다.
이 사실은 칙 코리아 본인의 인터뷰와 마일스 밴드 관계자들의 회고에서 반복된다.
< In a Silent Way > 세션은 아주 이례적인 세 건반연주자의 역할이 특징적인데,
조 자비눌이 오르간이나 일렉 피아노를 중앙 채널 또는 배경에서
몽환적이고 정적인 패드 사운드와 텍스트를 만들어
앨범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고
허비 행콕은 펜더 로즈를 주로 오른쪽 채널에 배치되어 연주하면서
전체적인 그루브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 반면
칙 코리아가 펜더 로즈 또는 월리쳐 ( Wurlitzer )를 사용하여
보다 공격적이고 타격감 있는 불협화음을 활용한 사운드를 왼쪽 채널에서 연주했다.
재즈 역사에서 매우 드문 편성이다.
각자의 솔로를 경쟁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음색과 공간을 나누는 방식이 요구됐다.
칙 코리아는 이 환경에서 리듬을 명확히 제시하기보다,
짧은 모티브와 불안정한 화음을 배치한다.
결과적으로 앨범 전체의 정적 긴장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 Bitches Brew >에서는 성격이 달라진다.
마일스는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밀도 높은 사운드를 원했다.
칙 코리아는 와와 페달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공격적인 질감을 만들었다.
이 시기의 연주는 훗날 그 스스로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게 된 계기”로 언급된다.
전통적인 재즈 피아노 문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지점이다.
마일스와의 작업에서 칙 코리아가 받은 가장 큰 영향은 연주 기법보다 태도에 가까웠다.
마일스는 구체적인 악보나 지시를 거의 주지 않았다.
“들리는 대로 연주하라”
“비어 있는 것을 채워라” 같은 추상적인 말만 던졌다.
이 방식은 세션 연주자들에게 극도의 긴장과 자유를 동시에 요구했다.
칙 코리아는 이후 인터뷰에서 이 경험을
“작곡과 즉흥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로 설명했다.
1970년, 그는 마일스 밴드를 떠난다.
이후 잠시 결성한 프리 재즈 그룹 ‘Circle’에서 실험을 이어간 뒤,
Return to Forever를 조직한다.
여기서부터 그의 영향력은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한다.
RTF 초기 앨범인 < Return to Forever >와 < Light as a Feather >는
< Bitches Brew >의 사운드와는 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사운드를 추구한다.
브라질 음악에서 차용한 리듬, 명확한 선율, 비교적 투명한 편성.
그러나 이 부드러움은 마일스 시절의 경험을 지운 결과가 아니다.
전자 악기와 리듬 섹션을 구조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이미 그때 체득된 것이었다.
이후 레니 화이트, 알 디 메올라가 합류하면서 RTF의 음악은 급격히 변한다.
고속 템포, 복합 리듬, 정교한 합주가 중심이 된다.
이 시기의 앨범들은 1970년대 퓨전 재즈의 기술적 기준으로 자주 언급된다.
특히 < Hymn of the Seventh Galaxy >와 < Romantic Warrior >는
이후 수많은 연주자들이 참고한 교본처럼 기능했다.
중요한 점은,
칙 코리아가 퓨전을 하나의 스타일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일스에게서 배운 ‘상황에 따라 음악을 다시 정의하는 태도’가 그대로 이어진다.
라틴 퓨전, 재즈 록, 어쿠스틱 프로젝트를 오가며 방향을 바꿨다.
이 유연성은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나 웨더 리포트와 구별되는 지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결국 칙 코리아의 위상은 두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마일스 데이비스 전기 시대의 핵심 내부자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을 기반으로
1970년대 퓨전 재즈가 나아갈 또 다른 외형과 연주 기준을 제시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의 음악은 실험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 실험을 대중과 연주자 모두가 따라갈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냈다.
이 두 역할이 겹치는 지점에서,
칙 코리아는 단순한 ‘마일스의 제자’라는 범주를 넘어선다.
퓨전 재즈가 우연한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지속 가능한 새로운 재즈의 언어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고 퓨전 재즈의 또 다른 지평을 연
새로운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