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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Holiday - Lady In Satin

세상을 짝사랑했던 여인의 마지막 고백

by XandO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기교나 기량의 과시가 없다.


그녀는 스스로 말했다.

“나는 노래하지 않아. 나는 느낄 뿐"

" I don’t sing, I feel "


그녀의 노래는

항상 반박자만큼 뒤쳐지고,

어딘가 흐트러진 듯

불안하게 흔들린다.


혹자는

그녀만의 감성적 자유라고 말한다.

너무 상투적이지 않은가?


그것은 한 여인이

세상을 짝사랑하며

홀로 쌓아 올린

감정의 진실들이다.


1. Strange Fruit - Billie Holiday 1939


많이 불편한 음악이다.


21세기의 세련된 음향 기술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소리의 상태가 불편한 음악이고

1939년, 당시를 살던 이들에게는

음악이 담은 진실이 더없이 불편했을 음악이다.


단 한순간도 삶에서 불편함을 떠나보낸 적이 없는

Billie Holiday를 세상에 알린 노래로 남아있는

[ Strange Fruit ].

그런 그녀가 삶을 통해 추구하던

미학의 시작이자

예술 혼의 정점이다.


누구보다 아팠던 사람이

누구보다 아픈 이들의 고통을

가장 직설적인 방법으로 증언하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예술을 택했다.


[ Strange Fruit ]는

유대계 작가이자 교사였던 아벨 미로폴(Abel Meeropol)이

1937년에 쓴 시를 가사로 사용하여 직접 곡을 붙인다.

그는 미국 남부에서 벌어졌던 린치 사건을 목격한 후,

그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이 시를 썼고,

이후 곡으로 만들어졌다.


빌리 홀리데이는 이 곡을 1939년

뉴욕의 카페 소사이어티(Café Society)에서 처음으로 불렀다.

이 무대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출입할 수 있는

최초의 통합 재즈클럽이었다.


그녀의 음울하고 절제된 보컬은

곡이 가진 고발적 메시지를 극대화하기에 최적이었고

그날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이 곡은 즉시 화제를 모았으며

빌리 홀리데이의 이름은 널리 퍼졌다.

그녀는 단순한 재즈 가수를 넘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예술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 Strange Fruit ]는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로

미국의 암울했던 역사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이 되었다.


"남부의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매달려 있다"라는 구절은

단순히 노랫말을 넘어,

흑인 인권운동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증언으로 남았다.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거의 탄식에 가깝도록 절제된 분노와 슬픔을 담아 노래한다.

재즈는 종종 자유와 즉흥의 언어로 정의되지만,

그녀의 재즈는

언제나 현실의 무게와 그 고통을 짊어진

생존의 언어였다.


그녀에게 자유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연방마약국(FBN)의 국장이었던 해리 앤슬링거(Harry Anslinger)는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을 내보였고,

그런 그는 늘, 의식 있는 흑인 재즈 뮤지션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그는 [ Strange Fruit ]을 매우 위험한 노래로 몰아세웠다.

빌리 홀리데이에게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녀가 이를 무시하고 공연을 이어가자

앤슬링거는 그녀를 마약 중독자로 몰아 수사하고 감옥에 보낸다.

공연장에서의 감시와 방해, 공연 금지, 생계 박탈, 병상 감시까지

이 모든 탄압은 단지 그녀가 진실을 노래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결국, 1947년 그녀는 마약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이후에도 뉴욕에서의 공연을 금지당하며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한 말년까지도

그녀는 FBI의 감시와 방해를 받았다.

끝내,

1959년 7월 17일

간경화와 심장질환으로 병상에서 생을 마감한다.


2021년 개봉하여,

주연을 맡은 앤드라 데이 ( Andra Day )가

골든 그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에서는

[ Strange Fruit ]를 구실 삼아

Billie Holiday를 마약문제로 억압했던 사건과

그 과정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재즈 뮤지션에 대한 검열을 넘어서,

예술과 저항, 표현의 자유와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 충돌했던

예술가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오늘날에도 이 이야기는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 진실을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뼈아픈 증거로 기억된다.


2. Glad To Be Unhappy - Billie Holiday


Billie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 Lady In Satin >은

재즈 마니아들이 아닌 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그녀를 대표하는 앨범이다.

녹음 당시, 그녀는 43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경제적인 문제, 인간관계 거기에 술과 마약들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도 나약해진 상태였다.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앨범 < Lady In Satin >(1958)은

총 4회의 녹음 세션으로

1958년 2월 19일, 20일, 21일, 25일에

뉴욕의 CBS 30번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이것이, 그녀의 생애 마지막 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걸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앨범에서 홀리데이는

선불로 세션당 150달러를 받았고

현재 한국 돈으로 200만 원 정도로 환산되는 금액이다.

당시로도,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힘든 경제 상황을

해결해 줄 만큼 큰 금액도 아니었다.


이 앨범에서는

당시 유능했던 레이 엘리스(Ray Ellis)의 지휘 아래

그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했다.

레이 엘리스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빌리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지만

모든 세션이 끝나고는

목소리는 쇠약했지만,

감정의 깊이는 오히려 더욱 강렬해졌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앨범에서 [ Glad To Be Unhappy ]은

짝사랑의 슬픔 속에서도

그 감정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모순된 감정을 정교하게 드러낸다.


특히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단어 하나하나가 깊은 체념과

아픈 짝사랑의 잔향을 담고

공기 중으로 퍼져나간다.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익숙해져 버린,

혹은

스스로 그 상태에 안주해 버린 이의 독백.


그녀는 목소리는

굳이 슬픔을 과장할 필요가 없다.

그저 지난 상처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로 인해 곡은 더욱 처절하게 아름답다.


Lady In Satin


공단으로 된

화려하고 부드러운 현악 반주를 입은

그녀의 낡디 낡은 목소리는

벽에 부딪혀 되돌아올 때마다

거듭 외롭다.


그녀의 마지막 앨범은

세상을 온 마음으로 짝사랑했던

한 여인의 불편했던 삶을 향한

마지막 고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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