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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백 1집 18화

승부,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승부>

by 그린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요하고도 소란스러운

스승과 제자의 마주 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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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을 삼키다

이병헌 배우는 조훈현 기사를, 유아인 배우는 이창호 기사를 연기했다. 아니 그 자체였다. 그 시절의 본인이 직접 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타일부터 말투, 표정까지 완벽했다. 묘사를 넘어 복사, 붙여넣기를 한 거 같았다. 양단수와 촉촉수를 제외하고는 바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데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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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승리

이창호는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굳게 버티던 그 조훈현을 이겨버렸다. 승리 직후의 투 샷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승리에 환호할 수도, 그렇다고 눈물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이창호는 잘못된 바둑을 해서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독백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는 방 침대에 앉아 정말 이기고 싶었다며 눈물짓는다.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승리지만, 동시에 가장 원했던 승리이기도 했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바둑 스타일은 정반대다. 조훈현은 날카로운 칼로 상대를 찔러댄다. 그러나 이창호는 무딘 칼조차 피한다. 스승 조훈현은 자신이 정답이라며, 이창호의 바둑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창호의 바둑은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잘못된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이창호는 자기 자신만의 바둑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승을 꺾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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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제자에게 내리 패배를 당하며 조훈현은 무너진다.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지만, 그는 바둑판을 떠난다. 자신의 제자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주리라 생각한 적 없었다. 바둑의 신과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져본 적 없기에 패배의 맛은 더욱 쓰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돌아온다. 이창호를 제자가 아닌, 자신의 적수로 인정한 것이다. 예선부터 시작하여 이창호와 다시 마주 앉는다. 둘은 더 이상 스승과 제자가 아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최고가 되기 위해 이겨야만 하는 숙명의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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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화의 두 대목이 인상 깊었다. 이창호가 자신의 바둑으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조훈현이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을 때. 스승에게 구박과 질타를 받았지만, 이창호는 자신의 바둑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바둑으로 스승을 이긴다. 조훈현은 제자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 잠시 바둑판을 떠났지만, 자신의 무기를 다듬어 다시 돌아온다. 스승의 인정 없이도 자신만의 길을 간 이창호, 패배를 딛고 다시 돌아온 조훈현. 두 전설의 서사는 정답보다는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이며, 결국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영화의 진짜 승부는 관계와 고뇌, 그리고 성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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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승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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