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eo Jan 24. 2022

#01_내가 모야모야병이라고?

우연히 받은 뇌혈관 MRA로 희귀 난치성 질환 의심환자가 됐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연도 개념이 희미해졌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대충 몇 년 전으로 뭉뚱그려 기억할 뿐, 정말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면 일 년 전인지, 이 년 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2020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근 2년간은 단조롭고 때때로 울적한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보니 작년 한 해가 참 다사다난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4월, 건강검진을 받고 난 뒤 일어났다.


건강검진을 받고 난 뒤, 병원에서 다음날 전화가 왔다


2021 4 29, 건강검진을 받았다. 회사의 복지  하나가 건강검진  가족 1 동반이 가능해 엄마가 서울로 올라왔고 아침부터 검진센터로 함께 갔다. 선택 진료로 있는  개의 검진 목록  나는 뇌혈관 MRA 선택했다. 뇌혈관 MRA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엄마가 건강검진   전부터 몸이  좋았는데 뭔가  생각이 나지 않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기에 명절에 만난 외숙모가 CT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왠지 모르게 나의 선택 검진으로 뇌혈관 쪽을 봐야   같았다. 건강 검진 날 마지막 코스였던 뇌혈관 MRA 대기시간이 너무 길었다. MRA 촬영을 위해 누워서 세팅하는 시간과 사진을 찍는 시간이 다른 진료에 비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길어지니 그냥  하겠다며 취소하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검진이 끝나고 엄마와 바로  블록에 있는 한정식집에 가서 돌솥밥 정식을 먹었다.


그다음 날은 심지어 이삿날. 대체 나도 무슨 패기로 저런 스케줄을 짰는지 모르겠다. 그 전주에는 금토일 제주도를 다녀왔고 메인 일정은 한라산 등반이었다. 그 여파로 일주일 넘게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근육통 탓에 이사는 무슨 정신으로 한 건지, 곡소리를 내며 움직였던 기억만 난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건강검진 전에 날것을 먹었냐고 묻길래 제출한 배변봉투에서 회충이라도 나왔구나 싶었다. 그 전주에 제주도를 갔고 거기서 회를 먹었다고 했더니 빠른 시일 내에 병원에 다시 와달라고 했다. 바로 그다음 주인 어버이날 전날, 5월 7일로 스케줄을 잡았다. 배변봉투에서 회충이 나온 것 때문에 병원에 다시 오라는 건가? 하는 생각에 피식 웃고 별거 아니겠지 했다. 같이 검진을 받은 엄마에게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모야모야가 대체 뭐죠?


5월 7일 아침, 검진센터로 향했다. 다음날이 어버이날이라 검진이 끝나면 고향에 바로 내려가기 위해 짐을 바리바리 싸서. 잠깐의 대기시간이 있었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배변에서 회충이 나왔다며 회충약을 처방해주겠다기에 알겠다고 대답했는데 바로 화제를 돌려 뇌혈관 MRA 검사 결과를 이야기하셨다. 사진상으로 보기에 내 뇌혈관이 상당히 모야모야병에 가깝다는 것이다. 모야모야병...?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모야모야병은 희귀 난치병이고, 일본의 스즈키 교수가 최초로 발견해 이름을 붙였단다. 혈관의 모습이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습과 비슷해서 모락모락의 일본말인 모야모야가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어린 7세 -9세 어린이들 사이의 어린이들이 많이 발병하고 30대에게도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신기한 건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들이 발병할 확률이 10배 이상이라고. 극동 아시아 지역에서 대부분 환자들이 발생하는데 일본, 한국, 중국.. 그다음은 필리핀 등이라 한다.


"뇌혈관 MRA는 왜 받으셨어요? 두통이 심하다거나 특별한 증상이 있었나요?"  


왜 받았냐니! 꼭 이유가 있어야만 받나. 선택 진료 중 딱히 할 게 없었고 그냥 우연히 받은 거라고 했다. 두통은 전혀 없었다.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나 장이 아프지 머리가 아픈 경우는 없는 나였다.


"평소에 운동은 좀 하세요?"

"네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하고, 달리기도 좋아하고 필라테스, 등산... 가끔 하지만 수영... 서핑..."


"운동하실 때 두통이 심각하게 와서 운동을 못할 정도였다 거나.. 그런 적은 없으셨어요?"

"호흡을 잘 못해서 머리 아픈 적은 있었는데 그것도 해당되나요?"


"그건 일반적인 것 같고요. 어릴 때 부모님께 혼나서 울다가 팔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거나, 맵거나 뜨거운 걸 후후 불다가 팔에 힘이 풀린 적도 없으세요?"

"네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어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이모나 삼촌 중에 뇌혈관 질환 있으신 분 계신가요? 가족력일 수도 있어서요"

"아니요 아무도 없으세요. 근데 저 머리도 안 아프고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요. 너무 멀쩡한데 제가 모야모야 병일 수도 있나요?"


"우선 큰 병원 가셔서 정밀 검사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소견서 써서 연결해드릴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원래 내가 어렴풋이 알던 모야모야병의 정보라곤 과거 한 연예인이 앓았던 병이라는 것, 내 친구 중 한 명이 앓는 희귀병이라는 것, 그런데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 이 외에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서야 모야모야병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다. 접수처에서 간호사가 어느 병원으로 접수해주면 될지를 물었다. 모야모야 병 자체를 처음 들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난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보통 그냥.. 큰 대학병원으로 가면 되죠?"

"네 그러시면 되세요"

"집 가까운 데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ㅇㅅ병원으로 연결해주세요"


신경외과 교수님의 일정이 다행히 멀지 않은 날짜에 가능해 10일 뒤로 일정을 잡았다. 별거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검진센터로 오던 아침의 발길과는 다르게 고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모야모야병에 대해 검색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사람마다 다 다르게 증상이 발현됐다. 그리고 그 증상의 강도도 모두 달랐다. 갑자기 찾아온 모야모야로 인생이 망가졌다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글도 있었다. 희귀 난치병이다 보니 평생 조심하며 같이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도 있을까. 고향 가는 버스 안에서 우울감에 젖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도 카톡으로 사실을 알렸다. 원체 대담한 엄마는 괜찮을 거라고, 별일 없을 거라고 밝은 어투의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어쩜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그 카톡을 받자마자 울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우리 딸 아무 일 없게 해 달라고.


작가의 이전글 한 회사에서 9년간 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