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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 조셉 러스넥

The 13th floor (1999)

by 인문학애호가

1999년에는 시대를 앞서간 SF영화 2편이 상영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완전 초대박이 나서 최근에 4편까지 나왔고, 다른 한 편은 훌륭한 원작과 대본에도 상대적으로 안타까운 CG 때문에 거의 잊혀졌습니다. 초대박이 터진 영화는 바로 "매트릭스" 입니다. 그리고 "매트릭스"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영화가 바로 "13층" 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대니얼 갤루이 (Daniel Galouye : 1920 - 1976) 라는 작가의 1964년작 "시뮬라크론 3" 입니다. 영화에는 세 연대가 나오는데 하나는 과거로 1937년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이며 (아마도 1990년대), 나머지 하나인 미래는 바로 2024 년, 작년 입니다. 2024년 신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아래의 포스터안에 이 원작과 영화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영화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시작합니다. 1930년대를 살고 있는 한 노신사가 젊은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고급 호텔의 바에 가서 "더글라스 홀"이라는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하며 편지를 바텐더에게 맡기고 (그 바텐더는 전달하지 않고 자기가 읽어봅니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눕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완전히 시대가 바뀌어 컴퓨터 서버가 가득한 자신의 직장에서 자다 일어난 그 노신사는 근처의 바에 한잔하러 갔다가 바의 뒷문에서 아는 사람에게 칼로 수차례 찔리고 사망합니다. 이제 경찰은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회사의 대표인 "더글라스 홀"을 조사합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노신사가 메시지를 1930년대에 맡겨 놓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신사의 딸이라는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서 회사를 노립니다.


그런데 사실 그 노신사가 있었던 1930년대는 "가상 현실" 입니다. 즉, 실존의 시대가 아니라 철저히 컴퓨터가 재구성한 세상 입니다. 노신사가 잠에서 깬 장소도 컴퓨터 서버에 설치된 "의식 다운로드 장치" 입니다. "더글라스 홀"은 노신사의 메시지를 알아내고자 1930년대를 머리속에 다운로드하고 그 시대로 들어갑니다. 정확히는 현재의 "의식"이 1930년대용으로 설게된 가공의 의식과 교체가 됩니다. 몸은 여전히 현재에 누워 있습니다. 1930년대로 간 "더글라스 홀"은 노신사의 의식이 들어있던 같은 외모의 노인의 발자취를 추적합니다. 어디에 살고 있고, 뭘하고 있고 등등.. 그는 결국 노인을 찾아내지만 의식이 1930년대인 노인은 "더글라스 홀"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몇가지 데자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는 노인을 데리고 그 노인이 갔던 고급 호텔의 바에서 바텐더에게 편지를 전달한 것을 기억하게 하고, "더글라스 홀"은 그를 쫒아가다가 폭행을 당하면서 편지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그 바텐더가 읽은 편지 내용은 "현실이 가짜이고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디어디를 찾아가 보면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바텐더는 실제로 그 장소를 찾아가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무엇이냐고 "더글라스 홀"에게 물어보면서 폭력을 휘두르다가 그를 수영장 바닥에 던지게 되고, 바로 그 순간 "더글라스 홀'은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노신사의 딸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를 찾기 위하여 그녀가 탑승했던 택시기사를 통하여 결국 찾아낸 그녀는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여인으로 "더글라스 홀"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결국 그도 1930년대의 바텐더에게 전달하려던 노인의 편지 내용을 자기도 확인해보기 위하여 바텐더가 갔던 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아래의 "포스터"와 같은 광경을 목격합니다. 결국 그가 살고 있는 현재도 역시 또다른 세계에서 만들어낸 "가상 현실"이었던것입니다.


이제 수퍼마켓 여인은 다시 노신사의 딸로 돌아와서 진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진짜 남편을 그대로 닮았으나 성격은 반대로 착한 "더글라스 홀"이 악당이 되어 버린 자신의 남편 대신 자기가 진짜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도 "더글라스 홀"이 아닌 자신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같은 회사의 직원이면서 1930년대의 바텐더의 얼굴을 가진 동료가 호기심에 1930년대로 갑니다. 그런데 하필 수영장에 빠진 "더글라스 홀"을 트렁크에 숨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의식이 바뀌고, 곧바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서 바텐더의 의식이 현재의 몸에 이식이 됩니다. 이제 같은 회사에 1930년대의 바텐더와 "더글라스 홀"이 같이 있게 되나, 하필 그 순간에 "더글라스 홀'의 의식에 동일한 외모의 남편의 의식이 들어오고 바텐더를 총으로 살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아내마저 죽이려는 찰라 경찰에게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이제 남편의 의식은 돌아갈 수 없어 "더글라스 홀"의 의식이 미래의 남편의 의식이 됩니다. 그 미래, 즉 2024년에는 죽었던 노인도 자신의 의식으로 있고, 그의 딸도 자신의 의식이지만, 남편만 "더글라스 홀" 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2024년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바다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TV 전원이 꺼지듯이 영화가 종료됩니다. 그렇다면 그 2024년 조차도 결국 "시뮬레이션"이라는 뜻일까요? 줄거리가 많이 복잡해 보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대본이 좋고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민의 시간입니다. "의식"이란 대체 무엇인가. "육신"이란 무엇인가. 영화 시작을 왜 "르네 데카르트"의 "생각과 존재"의 이야기로 시작하는가. 줄거리를 보면 이미 2010년에 "크리스토퍼 놀란"이 발표한 "인셉션"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13층"의 원작이 1964년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려 46년전에 매우 유사한 이야기의 원작이 있었던 셈입니다. 아마 "매트릭스"도 이 원작을 참조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매트릭스"는 사실 줄거리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워쇼스키 형제"의 둘도 없는 CG가 영화를 메가히트시킨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시대에 제작되었으면서도 그런 CG 없이 조악한 레이저 빛이 특수효과의 전부인 "13층"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2024년 현재는 "일론 머스크"가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심는 "시뮬링크"가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의식"에 대한 연구도 현재 많이 진행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13층"처럼 놀라운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것, 변화를 싫어하는 것, 별것 아닌 사건으로 인생이 바뀌어 버리는 것 등..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그 모든것이 전부 시뮬레이션이다라고 1960년대에 말했다면 헛소리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13층"은 컴퓨터 서버와 의식 다운로드 장치가 설치된 컴퓨터 회사가 있는 건물의 층 수 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곱씹어 생각할때 어떤 의식은 누구의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가 발표되기 1년전인 1998년에도 놀라운 SF 영화가 한 편 있었습니다. 바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다크 시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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