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Chuck (2024)
이 영화는 "스티븐 킹"의 단편을 "마이크 플래너건"감독이 각본에 제작까지 담당한 작품입니다. 즉, 감독이 원작소설을 읽고 자신이 각색을 해서 영화화 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만든 작품입니다. 정말 그만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였을까요? 이 영화는 여러차레 다시 보면서 곱씹어 볼만한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 입니다.
영화는 39세에 뇌종양에 걸려 곧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암환자가 겪게 되는 "죽음이란 무엇이고, 그렇다면 삶이란 또한 무엇인가" 하는 꽤 철학적인 질문을 편안한 이야기로 풀어나갑니다. 영화는 연극처럼 3막의 구조이며, 3막이 먼저 시작되고, 2막을 거쳐, 1막으로 끝이 납니다. 여기서 1막은 주인공인 "찰스 척 크랜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이고, 2막은 죽기 6개월전의 그가 회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길을 걷다가 경험하게 되는 내용이며, 3막은 현실이 아닌 그의 병들어 죽어가는 뇌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즉, 3막이 먼저 시작되므로 관객은 세상이 망하고 있는데 계속 "챨스 크랜츠, 39년의 위대한 인생, 고마워 척"이라는 광고문구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가지게 되고, 2막을 거쳐 1막으로 가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구조입니다. 만약 이걸 1, 2, 3막 순서대로 했으면 재미가 반감 되었을텐데 현명한 배치라고 봅니다.
3막 "고마워 척" :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거의 멸망의 마지막 단계 입니다. 캘리포니아가 바다에 잠기고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주중에 있습니다. 인터넷도 결국 끊기고, TV 도 끊기고, 도로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나타나고, 최종적으로는 전기가 끊어집니다. 그 와중에서 "고마워 척"의 광고는 갑자기 TV에도 나타나고, 현수막에도 있으며, 멸망 직전의 유리창에도 나타납니다. 교사인 "마티 앤더슨"과 그의 전 부인 "펠리시아 고든"도 자신의 직장에서 사람들이 계속 사라지고, 결국 "마티"가 "펠리시아"의 집으로 가서 별들이 사라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끝이 납니다. 마지막 말은 "사랑해" 입니다.
2막 "버스커 포에버" : 줄리어드를 중퇴하고 길거리에서 드럼 연주 버스커를 하고 있는 여성 드러머 "테일러 프랭크"가 그날의 버스킹을 시동을 거는데 죽기 6개월 전의 회계사 "척"이 그 앞을 지나갑니다. 그는 물론 6개월 뒤에 자신이 죽을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재니스 홀리데이"도 마침 그 "버스킹" 현장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척"이 갑자기 멈추더니 드럼 비트에 맞춰 춤을 춥니다. 그러다가 마침 옆을 지나가다가 리듬을 타던 "재니스"를 불러 같이 춤을 춥니다. 이 "댄스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 입니다. 결국 둘의 댄스에 힘입어 그날의 버스킹은 대박이 나고, "테일러"는 기꺼이 그날 모금된 돈을 모두와 나눠 가집니다. 그리고 서로 뿔뿔히 헤어집니다.
1막 "내 안에는 많은것들이 있어" : 이 구절은 "월트 휘트먼"의 시의 한 구절 입니다. 이제 "척"의 성장기 입니다. "척"은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뱃속의 여동생"을 모두 사고로 잃고 조부모와 살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할머니에게 "춤"을 배우면서 그 힘듬을 이겨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늘 어둡습니다. 그리고 3층의 다락방 만큼은 출입금지를 시킵니다. 할아버지는 "회계사" 였습니다. 그래서 수학에 박식하고, "척"에게도 수학을 가르쳐 그 역시 "회계사"가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어느날 "할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뜨고 절망하지만, 학교에서 "댄스팀"에 들어가면서 극복을 합니다. "춤"에 재능이 있는 "척"은 결국 "학교 파티"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물려받게 된 "척"은 드디어 "다락방"을 열어봅니다. 물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 방에서 자신의 죽음을 보았고, "척"도 자신의 죽음을 보게되겠지만,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내 인생이 남아있는 한 살아갈거야..."
길지 않은 줄거리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 입니다. 특히 3막에서 죽음 앞둔 환자의 머리속에서 발생하는 세상의 사라짐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다면 "찰스 크랜츠, 39세의 위대한 삶, 고마워 척"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비록 39세 밖에 살지 못한 찰나의 인생이지만, 그 인생동안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 노력했고, 어려운 시간도 극복해 냈으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에게 그 스스로가 주는 감사의 인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모두 수고했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