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remberg (2025)
이 영화는 2차대전이 끝나고 1945 ~ 1946에 독일 남부의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범의 군사재판을 다룬 영화 입니다. 이 주제를 다른 영화가 처음은 아니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1961년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이 연출한 "뉘른베르크의 재판"과 2000년에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동명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발표된 이 영화는 동일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잭 엘-하이"라는 작가의 "나치와 정신과 의사"라는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 입니다. 따라서 핵심이 재판 자체가 아니라 나치 전범과 그들의 정신상태를 다루는 정신과 의사 "더글라스 켈리(라미 말렉)"사이의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특히 이 영화에도 다수의 나치 전범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치당에서 히틀러 다음으로 2인자이면서 차기 총통이 될 예정이었던 "헤르만 괴링(러셀 크로우)"과 정신과 의사와의 관계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즉, 재판이 핵심이 아닙니다. 따라서 재판 장면은 영화의 후반에 길지 않게 등장합니다. 다른 영화에서는 전범들을 기소하는 "로버트 잭슨(마이클 새넌)"판사가 주인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디까지나 조연입니다.
영화는 1945년 5월 7일, 즉 전쟁의 마지막날에서 시작합니다. 이미 "아돌프 히틀러, 요제프 괴벨스, 하인리히 힘러"는 권총과 청산가리를 이용하여 생을 마감하였고, 나머지 나치 핵심 관계자는 뿔뿔히 흩어졌다가 연합군에 붙잡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면서 가족과 여행을 다녀오던 2인자 "헤르만 괴링"이 붙잡힙니다. 우리는 지금 그를 단순히 나치 2인자로만 이해하지만, 히틀러 다음의 권력자라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이 부각이 되는데, 무엇보다도 그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의 연기가 실로 압도적입니다. 첫 등장 장면부터 독일어로 연기하는 그가 연기하는 "헤르만 괴링"은 그 누구도 - 연합군 조차도 -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절대적 카리즈마 그 자체이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조차도 압도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러셀 크로우"가 내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어 영화는 정신과 의사와 "헤르만 괴링"과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그가 그에게 남겨진 가족(아내와 딸)에게 까지 접근하게 되고, 구치소의 "헤르만 괴링"과 가족간의 편지의 전달자 역할까지 하면서 깊숙히 그에게 관여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때 한 가지 의외는 "더글라스 켈리"는 "헤르만 괴링"이 나치의 2인자이면서 제3제국의 원수라는 사실과 전쟁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도로만 알고있고,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더글라스 켈리"는 결국 재판정에서 틀어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각종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학살이 담긴 비공개 비디오를 보고나서야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헤르만 괴링"이라는 괴물이 인류에게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더글라스 켈리"는 여기자의 미모에 속아 "헤르만 괴링"과의 사적인 대화를 노출한 죄로 해임이 됩니다.
한편, 재판정은 패전국의 전범들을 승전국이 재판을 통하여 처벌한다는 단한번도 없었던 재판에 대하여 과연 어떤 법의 적용이 가능한가로 판단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잘 나와 있습니다.) 결국 "로버트 잭슨"판사는 "헤르만 괴링"과의 첫 대결에서 논리의 부족으로 패하게 되고, 2차 재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로 고민하던차에 퇴출된 "더글라스 켈리"가 "헤르만 괴링"을 이길 묘수를 제공합니다.
영국인 판사 : 여전히 총통, 아들프 히틀러를 따르겠습니까?
"헤르만 괴링" : 예. 따를 겁니다. 하일 히틀러
이 답변으로 "헤르만 괴링"의 모든 논리가 무너지고 동료 전범들과 함께 교수형이 확정됩니다. 물론 교수형 전에 청산가리로 자살합니다. 이 마지막 재판장면은 꽤 공을 들여 긴장감을 잘 살린 명장면입니다.
"더글라스 켈리"는 이후에 "헤르만 괴링"과의 인터뷰를 제재로 하여 책을 쓰지만 성공하지는 못하고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이 부분이 바로 이 영화에서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진행자 : 나치들을 다루셨는데 그들이 독특한 민족이라는 것은 인정하셔야 합니다.
"더글라스 켈리" : 그들은 독특한 민족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에 나치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행자 : 미국에는 없습니다.
"더글라스 켈리" : 아니요. 미국에도 있습니다. 그들의 성격 패턴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저는 미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미국 국민 절반의 시체를 기꺼이 밟고 올라설 사람들 말입니다. 나머지 절반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요.
진행자 : 박사님. 제발
"더글라스 켈리" : 그들은 증오를 부추깁니다. 히틀러와 괴링이 했던 짓이고, 교과서적인 수법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무서운 제복을 입고 있어서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완전 정신 나간 겁니다.
우리는 현재 이 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창 진행중이고, 유럽에서도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우리는 천만다행으로 잠깐 왔다가 지나갔습니다. 인류역사는 반복의 역사이고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58년, 자신의 경고를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에 대하여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더글라스 켈리"는 결국 자살합니다. "헤르만 괴링"처럼 "청산가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