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루키노 비스콘티

Lo straniero (1967)

by 인문학애호가

이태리의 문제적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이방인"을 보았습니다. 1967년작이고 노벨상 수상작가인 "알베르 까뮈"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겼습니다. 주연인 "아르투르 뫼르소"는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텍스트를 영화화 하려면 텍스트에 나오지 않은 것들, 즉 배우들의 표정, 상황의 전개 속도, 장소, 분위기 등을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가장 중요한데 "비스콘티"감독이 그 모든것을 너무나 설득력있게 표현해냅니다. "알베르 까뮈"는 1960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지 못했겠지만, 봤으면 매우 좋아했을 것입니다.

원작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살인 혐의로 검사에게 조사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변호사는 구했소?",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이 두 대사로 시작하고 양로원에서 사망한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왜 살인혐의인데 변호사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 두 대사에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관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와서 여자친구와 수영하러 가고, 코미디 영화도 같이 봅니다.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고, 서로의 관계도 서먹해져서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레몽"이라는 "포주" 친구의 여자 문제를 해결해주고, 해변에 별장이 있는 "레몽"의 친구에게 같이 갑니다. 여자친구 "마리"와 같이. 그런데 혼쭐을 내준 "레몽"의 여자친구의 형제인 아랍인 둘이 그 해변에 나타나서 칼로 위협을 합니다. "레몽"은 총으로 쏴서 죽이려 하나 "뫼르소"가 말리고, 그 총을 뺏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습니다. 다시 별장으로 돌아가다가 너무나 더워 찬물이 필요했던 "뫼르소"는 혼자서 해변의 물가를 찾아 나섰다가 아까 만났던 그 아랍인 한 명과 다시 마주하게 되고, 칼로 위협하는 아랍인의 칼에 반사된 태양빛에 눈이 부셔 눈을 가리다가 자신이 위협을 받는 다는 생각에 총을 쏘게 됩니다. 그것도 5발을. 그리고 살인혐의로 바로 구속됩니다.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은 여기서 부터 입니다. 원작에서도 여기까지가 1부 이고, 2부에서부터 "까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앞에서 "변호사가 필요없다"고 했기 때문에 법정에서는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자기가 풀어줄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길고 긴 기간동안의 재판이 시작됩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각 1명과 다수의 배심원, 그리고 "뫼르소"의 친구들과 아는 사람이 한 장소에 모입니다. 사실 너무나 명백한 살인인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이므로 살인의 동기가 없습니다. 왜 죽였는지 모릅니다. "그냥 너무 더워서..", "그냥 햇빛이 너무 강해서.." 검사는 다른 곳에서 범행의 동기를 찾습니다. "원래 그러고도 남을 나쁜 놈이다". 이 사실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뫼르소"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을 적극 활용하고,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라는 사실, 친구를 도와 줬는데 그 친구는 "포주", 즉 나쁜 놈이었다 등으로 실제의 살인동기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이렇게 나쁜놈이니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라는 쪽으로 배심원을 유도합니다. 변호사가 설득력있게 변호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이런 이유로 "뫼르소"에게 교수형의 중형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감옥에 갖힌 주인공은 이 모든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난 도대체 뭘 잘못한거지?" 그러면서 신부가 방문해서 기도해주겠다는 것을 계속 거절합니다. 그리고 결국 참다못한 신부가 강제로 들어옵니다. 이제 둘 사이에 논쟁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가. 당신은 죽은 후에 구원받고 싶지 않은가. "뫼르소"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죽으면 끝이다. 헛소리 하지마라." 결국 논쟁이 심해져서 경찰이 투입되고, 신부는 "뫼르소"를 뒤로하고 나가버립니다. 이제 교수형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 시점에서 뫼르소는 마지막 대사를 합니다.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뫼르소"는 이 부조리 가득한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방인"이었던 것입니다.

재판장면을 보면 정말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도 안되는 얘기가 계속 나옵니다.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1942년이고, 지금은 2024년 입니다. 무려 82년 전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까뮈가 살았던 시대나, 비스콘티가 이 영화를 발표했던 시대나, 그리고 우리가 사는 오늘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실을. 다양한 첨단 기술이 나오고, 스마트폰으로 하루종일 새로운 뭔가를 접하는 오늘날에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부조리 가득한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까뮈"가 인간의 이 "부조리"에 "종교"도 끼워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종교"의 타락은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모리스 메를로 퐁티" 등의 세기의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겨우 44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천재 "알베르 까뮈". 그도 분명히 이 영화에 만족하였을 겁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멀홀랜드 드라이브 - 데이빗 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