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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The great gatsby (1925)

by 인문학애호가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너무나 유명한 이 문장은 F.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이 소설은 저를 문학에 입문하게 만든 작품 입니다. 오래전에 이 책을 한 번 시도했고, 도무지 재미를 못느껴 중간에 접었다가, 김욱동 교수(민음사)의 번역으로 다시 시작해서 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즈 루어만 감독과 잭 클레이튼 감독의 영화를 보았고, 끝으로 김영하 작가 번역본(문학동네)을 보았습니다. 거의 방랑 입니다. 이게 이 책의 매력 때문입니다. 보통 개츠비가 왜 위대한가에 관심을 두고 시작하지만, 실상 이 작품은 매 구절구절이 문학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번역을 읽으면서 감탄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어스름이 내리면 신나는 거리를 뒤로해야만 하는 아이들처럼 햇빛 한 점이 그녀의 얼굴에서 후회하듯 주저하다가 그녀를 버리고 천천히 떠나가 버렸다.

갑자기 창문과 커다란 문으로부터 공허함이 넘쳐나, 포치에 선 채 정중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집주인의 실루엣에 완벽한 고독을 더했다.

세상에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바쁜 사람과 피곤한 사람 뿐이다.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망각의 포옹으로 갖가지 생생한 장면들 위에 막을 내릴 때까지 그 환상에 다양한 무늬들을 더해갔다.


정말 한 문장 한 문장 주옥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멋진 표현을 생각해내고,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번역을 했을까요. 처음에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이런 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번역이 중요합니다. 김욱동 교수의 번역도 매우 설득력 있었고, 특히 “old sport”라는 단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김영하 작가는 주인공의 나이가 20대 후반이기 때문에 “친구”라고 번역을 했다고 했고, 김욱동 교수는 “형씨”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저는 “형씨”가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소설 끝의 마지막 문장도 김욱동 교수의 번역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역시 김영하 작가의 번역이 훨씬 멋집니다. 일단 시작하면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무엇이 위대하다는 걸까요.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외침에 그 답이 있습니다.


“다들 썩었어.” 내 외침이 잔디밭을 건너갔다. “너(개츠비)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그(개츠비)는 몰랐다. 자신의 꿈이 어느새 자기 등뒤에, 저 뉴욕 너머의 혜량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 너머, 밤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어두운 들판 위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을.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책은 미국이 주인공 입니다. 톰 뷰캐넌, 데이지 뷰캐넌으로 대표되는 구 귀족 세력과 그 세력에 들어가 보려는 테니스 선수 조던 베이커, 자신의 힘으로 신흥 귀족이 되어 과거의 연인 데이지를 데려오려는 제이 개츠비. 멀리 떨어져 이 상황을 보다가 어느덧 친구가 되어버린 개츠비의 몰락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닉 캐러웨이. 몇 번을 보아도 재미있고, 문학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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