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잡 시작했어."
친구에게 처음 말했을 때, 돌아온 건 침묵이었다.
"...미쳤냐?"
그 다음은 걱정 섞인 핀잔이었다.
"너 그러다 진짜 죽는다. 아니, 회사 일도 빡센데 왜 굳이?"
설명하기 귀찮았다. 밀린 월급, 통장 잔고, 고정 지출. 그걸 다 얘기하면 친구가 미안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넘겼다.
"괜찮아, 좀만 버티면 돼."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했다.
정확히는,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예전에 투잡 했었는데... 진짜 지옥이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이 말했다.
"근데 돈은 되더라. 그게 버티는 이유지 뭐."
그 한마디가 위로가 됐다.
적어도 이 사람은 '왜 굳이'라고 묻지 않았다.
의외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지인이었다.
"나도 투잡 해볼까... 너 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단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건데, 부러움의 대상이 된 기분.
마치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냥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 마. 진짜 힘들어."
솔직한 대답이었다.
가족은 걱정했다.
"그렇게 일하면 몸 망가진다. 제발 그만둬."
어머니는 매번 전화할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돈은 나중에 벌어도 돼. 건강 잃으면 끝이야."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중이 언제인지 모르겠고,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문제였다.
"알아, 엄마.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은 대부분 몰랐다.
쓰리잡을 한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어제 회식 왜 안 왔어?"
"아, 급한 일이 있어서요."
그 급한 일이 펍 알바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 이사했는데, 집들이 할래? 다들 온대."
"아, 죄송해요. 선약이 있어서요."
그 선약이 식당 알바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미안했다. 진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은 내가 가장 많이 일하는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인 척했다.
그게 편했다.
하지만 가끔은 들킬 뻔했다.
어느 날, 펍에서 일하다가 손을 베였다. 생각보다 깊게 베여서 밴드를 붙이고 회사에 갔다.
"어? 손 왜 그래?"
동료가 물었다.
"아, 집에서 요리하다가요."
"요새 뭐하면서 그렇게 자주 다쳐? 지난주에도 팔에 멍 들었었잖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난주 멍은 식당에서 무거운 냄비를 옮기다가 생긴 거였다.
"...제가 좀 덜렁대서요, 하하."
겨우 웃으며 넘겼다.
동료들은 그냥 농담처럼 놀렸지만, 나는 식은땀이 났다.
이렇게 자꾸 흔적이 남으면, 언젠가는 들킬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됐다.
알바할 때 다치지 않으려고, 회사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펍에서 쓰러진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그만둬. 진짜로."
친구는 단호했다.
"몸 부서져서 병원비 나가면 그게 더 손해야."
"...알아."
알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다.
어떤 친구는 달랐다.
"그래도 돈은 벌고 있잖아. 조금만 더 버텨."
그 말을 들으니 좀 더 버틸 힘이 났다.
누군가는 내가 쓰러진 게 문제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래도 버티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해받고 싶었다.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왜 선택지가 없는지.
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회사 월급으로 생활하면 안 돼?"
"대출을 좀 받든지."
"부모님한테 좀 도움받으면 되잖아."
그들의 조언은 선의였지만, 내 상황에는 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혼자였다.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세 개의 일을 해야 하는 건 나였고, 세 시간밖에 못 자는 것도 나였고, 펍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것도 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걱정해줘도 고맙고, 부러워해줘도 고맙고, 이해 못 해줘도 괜찮다.
어차피 이 삶은 내가 살아야 하니까.
가끔은 그래도 위로가 됐다.
"힘내."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텨."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게 다음 날을 버티는 힘이 됐다.
완벽한 이해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응원은 있었다.
그리고 그게 때로는 충분했다.
쓰리잡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걱정했고, 어떤 사람은 부러워했고, 어떤 사람은 이해했고,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내가 이 삶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살아내느냐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세 개의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