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무너지는 순간

by 무토피아

오전 6시, 알람


그날도 알람은 6시에 울렸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속이 미묘하게 안 좋았다. 어제 먹은 게 덜 내려간 것 같은 느낌. 뱃속이 묵직하고 불편했다.


'소화가 안 됐나...'


평소에도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부족으로 속이 자주 안 좋긴 했다. 오늘도 그냥 그런 날이겠거니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전 7시, 출근


샤워를 하면서도 속이 계속 불편했다.


아침은? 먹고 싶지 않았다.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안 먹으면 더 힘들다는 걸 알았다.


집 앞 떡집에서 가래떡을 샀지만, 몇 입 먹다가 그만뒀다. 억지로 넘기는 느낌이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오전 8시 ~ 오후 5시, 회사


회사에 도착해서 커피를 뽑았다.


하지만 평소처럼 벌컥벌컥 마실 수가 없었다. 한 모금 마셨는데 속이 더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탄산이라도 마셔볼까...'


편의점에서 탄산음료를 샀다. 한 캔을 다 마셨다. 그래도 속이 더부룩해서 한 캔 더 마셔버렸다.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속을 풀어야 했다.


탄산음료 2캔. 그래도 속은 여전히 불편했다.


일은 해야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를 보지만, 집중이 안 됐다. 자꾸 속이 신경 쓰였다.


점심시간.


속이 안 좋을 때 나만의 방법이 있었다. 매운 걸 먹는 것.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 매운 걸 먹으면 속이 풀릴 때가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매운 음식집으로 갔다.


떡볶이를 시켰다. 매운 국물을 한 입 먹었다.


'이제 좀 나아지겠지...'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더 불편해졌다. 더 먹을 수가 없었다.


"별로 안 매운데 왜 그래?"


"아... 오늘 속이 좀 안 좋아서요."


결국 떡볶이를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동료에게 줬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항상 통하던 방법인데...'


오늘은 아니었다.


오후 내내 속은 계속 불편했다. 커피도, 탄산도, 매운 음식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참을 만했다.


'저녁만 대충 먹고, 알바만 버티면 돼.'


오후 5시, 퇴근


5시가 됐다.


다른 날 같으면 곧바로 강남역으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잠깐 고민했다.


'알바 빠질까...'


하지만 빠질 수 없었다. 갑자기 빠지면 점장한테 미움받고, 다음 달 스케줄 줄어들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오늘 수입이 없었다.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돼.'


강남역으로 향했다.


오후 6시, 저녁 식사


강남역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분식집에서 떡볶이나 김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죽집으로 향했다.


'죽이라면... 괜찮겠지.'


야채죽을 시켰다. 뜨겁지 않게 식혀서, 천천히 먹었다.


다행히 목 넘김이 괜찮았다. 점심에 먹은 떡볶이보다 훨씬 나았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속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아, 이제 좀 괜찮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펍으로 향했다.


오후 7시, 펍 도착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준비를 시작했다.


테이블 세팅을 하는데, 허리를 굽힐 때마다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죽 먹길 잘했네.'


속이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내일 퇴근하고 병원 들러야지. 오늘만 버티면 돼.'


7시 30분, 문이 열렸다.


오후 7시 30분 ~ 10시, 버티기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문 받고, 음식 나르고, 테이블 정리하고. 평소처럼 움직였다.


다행히 속은 괜찮았다. 죽을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죽이 답이었네.'


8시, 9시가 지나갔다.


일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오늘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0시쯤.


갑자기 속이 확 뒤틀렸다.


'어?'


음식 냄새가 갑자기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름진 냄새, 술 냄새, 담배 냄새.


메스꺼움이 몰려왔다.


식은땀이 났다.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나르는데, 손이 떨렸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하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오후 10시, 화장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요!"


화장실로 뛰어갔다.


칸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변기에 엎드렸다.


"으으윽—"


토했다.


야채죽. 죽이 소화도 안 됐나보다. 조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다 나왔다.


토하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숨을 몰아쉬며 잠깐 앉아 있었다.


'조금 나아졌나...'


물로 입을 헹구고, 거울을 봤다.


창백한 얼굴. 축 처진 눈.


하지만 나가야 했다. 아직 3시간이나 더 남았으니까.


오후 10시 30분, 다시 무너지다


나갔다.


20분 정도 버텼다.


'아까 토했으니까 이제 괜찮겠지...'


하지만 다시 올라왔다. 메스꺼움이.


주문을 받는데, 손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시겠어요?"


"...괜찮아요?"


손님도 알아챘다. 내 얼굴색이 이상하다는 걸.


"네, 괜찮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지 않았다.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또 토했다.


이번엔 위액만 나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몸은 계속 무언가를 토해내려고 했다.


"으윽... 으윽..."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났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후 10시 40분, 매니저


화장실에서 나왔다.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이리 와봐."


매니저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 사이를 세게 눌렀다.


"아..."


아팠다. 그런데 너무 딱딱했다.


"너 체했나보다."


매니저가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안색을 확인하는 듯했다.


"얼굴이 완전히 하얗네. 오늘은 그냥 가."


"괜찮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됐어. 이 상태로 일하면 더 큰일 나. 그냥 집에 가서 쉬어."


미안했다. 시간을 다 못 채워서. 동료들에게 짐이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 조심히 들어가."


오후 11시, 포기


유니폼을 벗고, 가방을 챙겼다.


11시였다. 원래는 새벽 1시까지 일해야 했는데.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원래 일했어야 할 시간은 6시간.


'2시간치 날렸네...'


시급으로 받는 알바였다. 일한 만큼만 받는다. 오늘 못 채운 2시간은 그대로 손해였다.


오후 11시, 택시


버스를 탈 수 없었다.


2번 환승하는 동안 또 토할 것 같았다. 지하철 막차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택시를 탔다.


"어디 가세요?"


주소를 말했다.


택시 기사님이 백미러로 나를 힐끗 봤다. 아마 내 얼굴색이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괜찮으세요?"


"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찬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택시비. 얼마나 나올까.


평소 같으면 2,000원이면 충분한 거리를, 지금은 15,000원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시급 12,000원.


오늘 못 채운 2시간치가 24,000원.


택시비로 또 15,000원이 나가면...


'택시비까지 해서 얼추 3시간치를 날렸구나.'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6시간 일했어야 하는데 4시간만 일하고, 그나마 벌은 돈에서 택시비 빠지면...


'결국 1시간치밖에 안 남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허무해졌다.


밤 11시 30분, 집


집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13,000원이 나왔다.


현금으로 15,000원을 내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내렸다.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상인가.'


회사 일만 해도 충분히 힘든데, 저녁마다 알바를 하고, 하루에 3시간도 못 자고, 제대로 밥도 못 먹고.


몸이 무너지는 게 당연했다.


아니,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냥 오늘이 가장 심했을 뿐.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생각은,


'그래도 내일 또 일해야 하는데.'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6시.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속은 조금 나아진 것 같았지만, 완전히 괜찮지는 않았다.


원래라면 쉬어야 할 하루였다.


병원에 가야 했고, 집에서 푹 쉬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통장은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밀린 회사 월급.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 어제 날린 3시간치.


쉬면 돈이 안 들어온다. 돈이 안 들어오면 다음 달을 버틸 수 없다.


그래서 일어나야 했다.


회사에 가야 했고, 저녁에는 또 알바가 있었으니까.


어제처럼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오늘은 퇴근하고 병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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