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다시 시작된 이직 준비

by 무토피아


퇴사를 하고 나니 공백기가 주는 불안감이 생각보다 컸다. 무엇보다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내게 남긴 건 명확했다.


"이번엔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찾자."


월급이 밀리고, 팀장마저 잘리는 걸 옆에서 지켜본 경험은 단순히 '나쁜 회사를 피하자'는 수준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곳,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하게 됐다.


낮과 밤


낮에는 구직자였고, 밤에는 알바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채용 공고를 검색하고, 자소서를 수정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회사마다 요구하는 항목이 조금씩 달라서 매번 새로 작성해야 했다.


저녁이 되면 식당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물 한 잔만 더 주세요."


손님들을 응대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낮에 넣었던 서류 생각뿐이었다. 연락이 올까? 서류는 통과했을까?

50군데를 넣고 나서야 면접 제안을 받았다.


50군데다. 하루에 3~4곳씩 넣어도 2주가 넘게 걸린 숫자였다. 불합격 메일은 빨리도 왔는데, 합격 연락은 왜 이렇게 안 오는지. 주 4일에서 5일, 필요할 땐 주말까지 일하면서 틈틈이 서류를 쓰는 생활이 반복됐다.


구직자인지 알바생인지 모르겠던 그 시기.


면접 전날 밤


"내일 면접이에요."


사장님에게 말했지만, 그날도 서빙을 해야 했다. 당장 내일 생활비가 필요했고, 면접 한 번으로 취업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여기 계산이요!"


손님들을 응대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면접 예상 질문들을 되뇌었다.


'지원 동기가 뭔가요?' '이전 회사를 왜 퇴사하셨나요?' '우리 회사에 대해 아는 대로 말씀해보세요.'


피곤해서 면접을 망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알바를 빠질 수도 없었다. 새벽 2시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 면접복을 다렸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면접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이번엔 꼭 좋은 결과 있기를."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합격 통보


면접을 본 지 열흘 뒤, 드디어 연락이 왔다.


"합격하셨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다. 50군데 넣어서 면접 한 번 보고, 그 면접에서 합격했다는 게.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면접 때 인사팀 담당자가 말했다. "1주일 뒤에 연락드릴게요."


그런데 연락이 온 건 10일 뒤 저녁 6시였다.


게다가 잡플래닛을 확인해보니 심상치 않았다. 매달 팀원과 팀장이 바뀐다는 리뷰들, 장기근속자가 거의 없다는 후기들, "3개월 버티기도 힘들다"는 평가들. 그리고 눈에 띄는 리뷰 하나.


"인사팀 파워가 지나칠 정도로 세다."


저녁 6시에 온 합격 연락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이 회사의 업무 방식이구나.'


경험이 가르쳐준 것


예전의 나였다면 무조건 갔을 것이다.


합격 통보만으로도 감지덕지, 일단 들어가서 버텨보자는 마음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나를 바꿔놓았다.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을 때의 불안함, 팀장이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이 계속 바뀌는 회사에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나?'


인사팀이 약속한 일정도 지키지 못하는 회사라면, 다른 업무에서도 일정 관리 개념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매달 인원이 교체된다는 건 조직이 불안정하다는 뜻이고, 장기근속자가 없다는 건 사람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여기 가면 또 다시 이직 준비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


힘들게 50군데 넣어서 얻은 면접 기회였지만, 이제는 아는 만큼 보였다.


전화 한 통


합격 문자를 받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합격 통보 받았는데요. 죄송하지만 입사를 사양하겠습니다."


인사팀 담당자는 당황한 듯했다.


"혹시 다른 곳에 합격하셨나요? 아니면 연봉 조건이 안 맞으신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면접 때 1주일 뒤에 연락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열흘 뒤에 연락을 주신 건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그게... 내부 사정이 있어서..."


"보통 연락이 늦어지면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나요?"


또 침묵. 사과는 없었다.


그 순간 잡플래닛에서 봤던 리뷰가 떠올랐다. '인사팀 파워가 지나칠 정도로 세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늦어진 것에 대한 사과도 없는 인사팀.


"죄송하지만, 입사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거절 전화를 하고 나니 불안했다. 과연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올까? 또 50군데를 넣어야 하나? 하지만 동시에 확신도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구직자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걸, 이번엔 제대로 배웠다. 합격했다고 무조건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인지 판단하는 것. 그게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조금 더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곳을 찾자.


그날 밤에도 나는 식당 유니폼을 입고 서빙을 시작했다. N잡러의 이직 준비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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