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결국 그만두게 된 회사

by 무토피아

마지막 급여 명세서


"이번 달 급여는 다음 달 15일 지급 예정입니다."


또다시 밀렸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 월급이 밀렸을 때는 '한 달만 참자'고 생각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건 알고 있었으니까. 스타트업이 원래 그렇지 않나,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두 번째 밀렸을 때는 알바를 하나 더 늘렸다. 밤에 이자카야, 주말에는 식당까지. 본업 월급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도, 일단 당장 들어가는 돈은 메워야 했으니까.


그리고 세 번째.


"다음 달에는 정상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같은 말을 세 번 들으니, 이게 거짓말인지 진심인지조차 구분이 안 됐다.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결과는 똑같았으니까.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고정비가 나간 자리.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먼저 떠났다


팀장이 퇴사한 건 그로부터 3개월 전이었다.


"실적 악화로 인한 인건비 감축 차원에서..."


공식적인 이유는 그랬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월급이 계속 밀리고, 회사 사정이 나빠지니까, 팀장부터 나가라는 압박이 들어온 거였다.


팀장이 퇴사하던 날, 잠깐 복도에서 마주쳤다.


"너도... 빨리 나가.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그 후로 회사는 더 빠르게 무너졌다. 팀장이 떠나고, 다른 팀원들도 하나둘 나갔다. 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몇 명뿐이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펍 알바를 그만둔 건 회사 퇴사 2개월 전이었다.


몸이 한계였다. 새벽 2시까지 펍에서 일하고, 세 시간 자고 회사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은 펍 홀에서 서빙하다가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러다 진짜 쓰러지겠다.'


펍 매니저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몸 상태 안 좋아?"


"네... 좀 힘들어서요."


매니저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펍을 그만두고, 대신 식당 알바를 주 4회로 늘렸다. 두 개 알바를 병행하다가 하나를 줄였으니, 남은 식당 스케줄을 늘려서라도 수입 공백을 메워야 했다.


주말뿐이던 식당 알바가 평일까지 확대됐다. 그나마 새벽까지 일하는 펍보단 나았지만, 여전히 빡빡했다.

하지만 회사 월급은 여전히 밀렸고, 식당 알바비만으로는 부족했다.


재정긴축


퇴사를 결심한 건 전사 회의 때였다.


전 직원이 회의실에 모였다. 대표가 스크린에 띄운 건 재무제표였다.


"보시다시피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렵습니다. 당분간 재정긴축이 필요합니다."


재정긴축.


월급도 제때 못 주면서 무슨 긴축인가 싶었다.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라는 말을 이미 세 달째 듣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이미 팀장도 떠났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다 나갔다. 남은 건 대표의 공허한 약속과 밀린 월급뿐이었다.


통장 입금 내역을 봤다. 회사 월급은 세 달째 밀렸고, 대신 식당 알바비가 꼬박꼬박 들어와 있었다.


어느새 본업보다 부업이 더 믿을 만했다.


본업 대신 식당만 남았다


퇴사서를 제출하던 날, 대표가 물었다.


"이직하는 거야?"


"네. 잠시 쉬면서 이직 준비하려고 합니다."


대표가 잠시 말없이 나를 봤다. 뭔가 말하려다가 참는 표정이었다.


"...그래. 고생 많았어."


고생은 이제부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본업이 사라졌다. 남은 건 주 4회 나가는 식당 알바뿐이었다.


대표에게는 '쉬면서 이직 준비'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밀린 월급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N잡을 시작할 때는 '본업 + 부업 2개' 구조였다. 회사 월급이 밀려도 알바로 버틸 수 있다는 안전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본업이 사라지고, 식당 알바 하나만 남았다.


웃긴 건, 그게 더 안정적이라는 거였다.


아이러니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다음은 뭐 할 건데?"


"이직 준비."


"그럼 알바는?"


"계속 해야지.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까."


친구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 진짜... 이상한 삶 산다."


맞다. 이상했다.


본업이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업이었던 식당 알바를 본업처럼 하고 있었다. 원래는 회사 일이 중심이고 알바는 보조 수단이었는데, 이제는 주 4회 식당 알바가 유일한 수입원이 되었다.


N잡을 시작할 때는 '본업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근데 이제는 본업 대신 식당 알바만 남았다.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반대로 흘러갔다.


그래도


퇴사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마지막 급여가 들어왔다.


세 달치를 합쳐서, 한꺼번에.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가 회사에서 받은 마지막 돈이구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허전하진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됐으니까.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돈을 애타게 확인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주 4회 식당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본업을 잃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식당 알바만 남았다는 게 서글펐지만, 그게 더 안정적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두 발로 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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