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소주처럼 인생을 달래준 것들

by 무토피아

N잡 시리즈를 여기서 마친다.


13편.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는 '몇 편이나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그저 힘들었던 시절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하나의 에피소드가 또 다른 에피소드를 불러왔고,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순간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월급이 밀리던 회사. 저녁마다 향했던 이자카야. 주말이면 일했던 펍. 그리고 퇴사 후 다시 시작한 구직 활동.

글을 쓰면서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났다. 지쳐가면서도 버텼던 나.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일어섰던 나. 그 시간이 고통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쓴 이유는 단순했다.


기록하고 싶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N잡이 나에게 저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시간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혹시라도 지금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랐다.

13편을 쓰는 동안, 나는 과거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나는 축구.


나는 16년 동안 아스날을 응원해왔다. 2009년, 처음 아스날을 알게 된 이후로. 리그 우승을 기대했던 시절부터, FA컵으로 만족해야 했던 시절까지. 벵거의 마지막 시즌부터, 에메리를 거쳐, 아르테타의 재건까지. 그리고 한때는 당연했지만 꽤 오랜 기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고 유로파를 나갔던 시절까지.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스날과 함께 웃고 울었다. 토트넘에게 지는 북런던 더비의 고통.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의 좌절.


군 생활 중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민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절이 있었다. 2015년 5월 30일 새벽, 병실에서 핸드폰으로 FA컵 결승전을 몰래 봤다. 상대는 애스턴 빌라.


통증이 있었지만 경기를 놓칠 수 없었다. 골이 터질 때마다 소리를 참아야 했다. 4-0 완승.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아스날이 FA컵 12회 우승으로 맨유를 제치고 역사상 최다 우승팀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 몸은 망가져 있었지만, 아스날은 우승했다. 그게 위로였다.


축구팬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N잡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져도 져도 포기할 수 없고, 배신당해도 다시 믿는 것.


또 하나는 음식.


흑백요리사가 끝났다. 요즘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나 역시 음식을 좋아한다. 아니, 까다롭게 좋아한다.


맛집이라고 갔지만, 실망하거나 "그냥 먹을 만하네" 수준으로 평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처음에 내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내가 더 까다로운 사람인 것이었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주는 대로 먹는다고 하지만, 간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여자친구 대신 내가 불만 사항을 얘기하기도 했다. 음식을 먹을 때도, 해줄 때도 괜찮은 포인트보다 아쉬운 포인트를 먼저 찾아내서 "이게 보충되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라고 나도 모르게 평을 내리곤 했다.


그런 까다로운 내게도 까다로움을 내려놓게 하는 음식들이 있었다.


양말을 두 겹으로 신고 아무리 껴입어도 추웠던 야간 근무를 마치고 먹었던 라면 한 사발. 월급이 밀려서 N잡을 뛰면서 마음으로 흘렸던 내 눈물을 닦아주던 만둣국. 낮에는 계절학기를 다니고 저녁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나서 먹었던 어묵 한 꼬치.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이었다. 그건 위로였고, 축하였고, 때로는 도피처였다. 까탈스러운 혓바닥만큼이나 까탈스러웠던 내 인생을 위로해준 음식과, 그 혓바닥을 만족시켜줬던 맛집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둘 다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소주 한잔 같은 것이었다.


흑백요리사 결승전에서 최강록은 자신을 위한 요리에 소주를 함께 내놓았다. 요리와 어울려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힘듦과 고됨을 날리기 위한 술로 소주를 선택했다고 했다.


최강록과 달리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마셨을 때는 감기약 맛이 나서 싫었고, 지금은 달지도 않고 쓰기만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쓰디쓴 순간에 소주를 찾는다. 그 쓰림으로 또 다른 쓰림을 달래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위로가 된다.


축구가 그랬다. 아스날이 지는 걸 보며 괴로워하면서도, 그 괴로움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게 했다. 음식도 그랬다. 힘든 하루 끝에 먹는 한 끼가, 그날의 고단함을 조금은 덜어냈다.


쓰디쓴 내 인생의 순간에서, 그 쓰림을 나만의 소주 한잔처럼 달래준 것들. 그것을 쓰고 싶다.


16년 구너의 인생.


30여 년 한 사람의 입맛.


두 가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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