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지 않는 삶, 그리고 위로가 되는 아이리쉬 밤

by 무토피아


나는 마셰코를 우승했던 최강록의 모습을 봤고, 흑백요리사 시즌1과 냉장고를 부탁해 등 그가 나오는 예능 영상들을 주기적으로 챙겨봤다. 그런데 그가 왜 좋은지 말로 표현하기는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솔해 보여서?! 그가 하는 요리에 진심이 담겨서?! 이 정도로 설명이 되는 듯했지만, 설명하는 나도 마음 한켠에서는 뭔가 아쉬웠다.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이유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마지막 요리를 내면서 했던 말을 통해, 내가 그를 왜 좋아했는지 알게 됐다.


그는 조림핑, 연쇄조림마 등 조림 요리로 유명했다. 마셰코에서 처음 선보였던 요리도 조림 형태였고, 패자 부활전, 결승전 등 중요한 순간마다 조림 요리로 우승까지 갔었고, 시즌1에서도 조림 요리로 1vs1 대결에서 승리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해 척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요리를 내오고 안성재, 백종원과 함께 요리를 먹으면서 그는 말했다. 자신은 특별한 요리사가 아니고, 많은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티 나지 않게 하고 있던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데 운이 좋아서 조림핑도 돼봤다고. 안성재도 많은 요리사들이 겪고 있는 일이라고 코멘트를 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 자신도 어느 순간 진실된 나의 모습은 감춘 채 누군가가 말하는 나로 위장한 채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지막 요리는 깨두부를 넣은 국물요리로, 국물을 내기 위해 닭뼈를 사용했고 안에 재료 중에는 우니도 있었다. 닭뼈는 버리는 식재료고, 우니는 금방 상하는 재료여서 다 팔리지 않으면 버려야 해서 마진이 남지 않는 재료였다. 깨두부 또한 잘 팔리는 재료는 아니니, 어찌 보면 이전에 식당도 운영하고 반찬가게도 운영하면서 자영업자의 애로사항을 겪었던 최강록의 경험이 묻어난 요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천국에서 트러플, 도미 등 온갖 고급 재료를 다 조렸던 그가 버리는 식재료와 버려지기 쉬운 식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결승전에서는 쓰고 있던 가면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자기 자신을 보여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솔한, 자영업자로서의 고됨과 요리사로서 얻은 칭호를 모두 품은 그 자신을.


그런 그와는 정반대로 요리괴물 본명 이하성은, 자신의 추억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테크닉을 동원해서 최고의 요리를 냈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의 이상향을 쫓기 위해 아직은 내려놓는 것이 아닌 더 많은 것을 쌓으려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고 최고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이하성을 보면서 나를 투영했다. 나 또한 최강록을 좋아하지만, 이하성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 더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퇴근하고 자기개발에 몰두하는 사람이며, 만족할 줄 모르고 지속적으로 나를 채찍질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하성처럼 살아왔다. 계속 쌓고, 더 잘하려 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그러나 내가 좋아한 건 최강록이었다. 그가 내려놓은 가면, 그가 보여준 진솔함, 그가 선택한 버려지는 재료들이 나에게는 위로였다.


그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더 잘할 수 있겠지? 지금 나는 과연 잘하고 있을까? 앞으로도 잘할까라는 불안감. 만족하는 삶을 산다면 나올 수 없는 태도이다.


그런 나와 대조되는 최강록의 요리는 어쩌면 저런 마음을 가끔은 내려놓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요리와 술로 내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온전한 나로 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아이리쉬 밤. 이 술을 처음 알게 된 건 N잡 중 하나였던 펍 알바를 하면서였다. 그때 나는 월급이 지연되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세 번째 일에서, 따르고 서빙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이 "너희도 맛보라"며 건네준 술이 바로 아이리쉬 밤이었다. 위에는 제임슨 반, 아래에는 베일리스 반을 따른 샷잔을 2/3 채운 기네스에 빠뜨려 마시는 일종의 폭탄주 같은 술. 처음 들이마실 때는 기네스와 제임슨의 쓴맛이 먼저 올라오지만 뒷맛은 베일리스의 달콤함이 올라와서 쓴 술을 싫어하는 나도 2-3잔씩 마시게 되는 술이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의 씁쓸한 시기에 처음 맛본 술이었다.


기네스와 위스키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이런 술을 좋아할까 고민해봤는데 답은 하나였다. 내 인생에서도 나 스스로도 나에게 달콤한 순간이 많이 없었고, 그런 보상을 잘 주지 않아서 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재수했던 순간, 가정의 불행, 군대에서의 사고, 그리고 월급 지연으로 인한 강제적인 N잡까지. 인생의 순간순간, 누군가에게는 하나만 찾아와도 낙담하고 포기했을 만한 일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로 인해 능력이 없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채찍질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했던 나.


그런 나에게 최강록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게 필요한 인생이었다. 더 잘하려고, 더 잘나 보이려고 척을 많이 했던 내게, 진솔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요리를 대하는 그의 모습을 내 인생 순간순간에도 담고 싶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위로하지 못하는 내게, 첫맛은 쓰지만 끝에는 달콤함을 남겨주는 이 아이리쉬 밤이 위로가 되었다.


이제는 나도 가끔, 가면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로 쉬어가야겠다. 아이리쉬 밤을 마시듯, 나에게도 달콤함을 허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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