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질도 못하던 내가 여친에게 파스타를 해주기까지

by 무토피아


"손님, 죄송합니다만 칼 좀 내려놓아주시겠어요?"


대학교 1학년 MT에서 들었던 말이다. 고기를 썰다가 도마째 들어올릴 뻔한 나를 보고 선배가 정중하게 칼을 회수해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칼질을 할 줄 모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세븐스프링스라는 뷔페 브랜드에 설거지 알바 지원서를 냈다.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지만, 당시엔 꽤 괜찮은 뷔페였다. 시급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설거지'라는 단순 업무가 마음에 들었다.


칼도 안 잡아도 되고, 손님 응대도 안 해도 되니까.


그런데 첫 출근 날, 점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설거지 자리가 마침 어제 찼어요. 대신 주방 보조 하실래요? 시급은 똑같아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급만 같으면 됐으니까. 그렇게 나는 칼질도 못하는 주방 보조가 됐다.


첫 주는 지옥이었다. 양파 써는 것도, 마늘 다지는 것도 서툴렀다. 선배 주방 직원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해도 되니까 손 안 다치게만 해"라고 말했다. 위로인지 포기인지 모를 말투였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었다. 파스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세븐스프링스는 뷔페다 보니 모든 재료가 이미 소분돼 있었다. 면 삶고, 미리 볶아둔 소스에 넣고, 웍으로 몇 번 돌리면 끝. 처음 웍을 잡았을 때는 무겁고 낯설었지만, 며칠 지나니 손목 스냅으로 면을 뒤집는 게 제법 재미있었다. 불 조절만 실수하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였다.


"이거 이렇게 쉬운 거였어?"


점심 피크타임이 끝난 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파스타는 항상 레스토랑에서나 먹는, 뭔가 있어 보이는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들어보니 달랑 면과 소스와 웍만 있으면 됐다.


알바를 그만둔 후, 나는 자취방에서 직접 파스타를 해봤다. 올리브유, 편마늘, 면, 토마토 소스. 재료비는 3천 원도 안 들었다. 웍이 없어서 팬으로 했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꽤 괜찮았다.


마늘은 편마늘로 썰었다. 다지는 것보다 훨씬 쉬웠고, 은근한 향이 올리브유에 배어들면서 집 안 가득 퍼지는 그 냄새가 좋았다. 팬을 흔들어 면을 뒤집을 때마다 '내가 요리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파스타는, 여자친구에게 처음 해준 요리가 됐다.


"요리 할 줄 알아?"


"응, 파스타하고 리조또 정도는."


여자친구는 신기해하며 앉아 있었고, 나는 최대한 여유롭게 편마늘을 볶았다. 팬 돌리는 폼은 세븐스프링스에서 배웠으니까.


"맛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이후로 파스타는 내 자취 생활의 단골 메뉴가 됐다. N잡 하느라 바쁠 때, 저녁 해먹기 귀찮을 때, 그냥 뭔가 해먹고 싶을 때. 면 삶는 10분이면 끝이니까. 배달 시키면 만 원, 직접 하면 3천 원. 한 달이면 최소 20만 원은 아낄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파스타를 할 줄 알게 되니 다른 요리도 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파스타로 시작해서 크림새우를 만들었다. 면 대신 새우를 넣고, 생크림만 추가하면 됐다. 뇨끼도 만들어봤고, 스튜도 끓여봤다. 심지어 마파두부까지. 편마늘 볶는 게 익숙해지니까,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요리가 가능해졌다.


칼질도 못하던 내가 이제는 웬만한 요리는 다 한다. 단순한 파스타 하나로 시작했는데, 그게 스킬이 필요한 복잡한 요리로 가는 문을 열어준 셈이다.


칼질도 못하던 내가 주방에 섰고, 웍을 돌렸고,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줬다. 파스타 하나로 시작된 이 작은 변화가, 지금 생각하면 꽤 의미 있다.


결국 사람은 필요에 의해 배운다. 그리고 배운 건 언젠가 써먹게 된다. 설거지 알바 하려다 주방에 배정된 게,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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